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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5.13 05:00 수정 : 2019.05.14 09:51

지난 2월24일 오후 3시께 경기 부천 ㅇ요양원 노인들이 2층 거실에 나와 있다. 요양원 노인들의 유일한 외출(?)이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은 요양보호사의 도움 없이는 방에서 나올 수 없다. 노인들은 일주일에 두세번 오후 3시부터 30분 정도 거실에 나와 있다 다시 침대로 돌아간다.

[창간기획] 대한민국 요양보고서 1부 돌봄orz ①요양원에 갇힌 노인들
‘요양보호사 취업’ 한겨레 기자 한달간 직접 일하며 현장 기록
매일 똑같은 일정에 인권 뒷전…식사는 빨리 대변 묻어도 방치

한국의 65살 이상 노인 인구는 739만명이다. 노인 인구는 2025년 1000만명을 넘고, 2035년에는 15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추정 치매 환자 수는 75만명 정도다. 한국은 빠른 속도로 늙어가고 있다.

정부는 2008년 장기요양보험제도를 도입해 노인 돌봄을 공공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스스로 자신의 몸을 돌보기 어렵고, 자녀들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는 노인들이 국가의 보조를 받아 요양원에 들어가거나, 집에서 재가요양보호사들에게 방문 요양 서비스를 받는다. 2019년 3월 현재 15만6435명이 요양원을, 41만930명이 방문 요양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요양원은 이름처럼 노인들이 편하게 생을 정리할 수 있는 공간일까? 국가가 자격증을 주는 요양보호사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이 의문을 풀기 위해 <한겨레> 기자가 직접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고 요양원 현장에 뛰어들었다. 재가요양보호사 14명을 만나 심층 인터뷰를 하고 200여명을 설문했다. 요양원 현지조사 결과 800건, 정부가 고발한 장기요양기관 중 확정 판결이 난 30여건의 판결문도 최초로 분석했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3부 8회에 걸쳐 ‘대한민국 노인요양 보고서’를 펼친다. 1부는 권지담 기자의 요양원에서의 한달 기록, 그리고 재가요양의 그림자다.

2월12일 새벽 6시 경기 부천의 ㅇ요양원 204호. 102살 정순실(가명) 할머니는 5년 동안 되풀이했던 똑같은 하루를 더는 시작하지 못했다. 요양원 최고령자는 눈을 뜨지 않았다. 그렇게 ‘퇴소’가 결정됐다. 기자가 요양보호사로 일한 지 15일째 되는 날이었다.

2014년 딸의 손을 잡고 요양원에 온 순실 할머니는 서서히 입을 닫았다고 한다. 말이 주는가 싶더니, 식사 때도 입을 열지 않는 일이 잦아졌다. 침대에 파묻힌 할머니를 힘겹게 앉히고 밥상을 올리면, 할머니는 ‘픽’ 하고 옆으로 쓰러졌다. 기자가 힘을 쓰면 양옆에 베개를 끼워 겨우 앉히는 것까지는 가능했다. 그러나 입을 억지로 열 수는 없었다. 얼굴을 잡고 눈을 맞춰도, 귀에 입을 대고 큰 소리를 내도, 껴안고 꼬집어도 할머니는 응답하지 않았다. 끈질기게 식사를 권하면, 할머니는 애처로운 눈빛을 보내곤 했다. ‘제발 날 좀 내버려둬.’ 할머니의 몸은 점점 쪼그라들더니 침대의 절반도 채우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숨지기 며칠 전, 한 숟갈이라도 입에 넣어보겠다고 막내딸이 찾아왔다. 할머니는 입을 벌리지 않았다. 콧줄도 거부했다. “식사를 거부하는 건 죽고 싶다는 뜻이지. 저렇게 밥을 안 먹어서 살겠어? 콧줄 안 끼면 죽는 거지.” 막내딸을 보며 요양보호사들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죽을 거야.’ 할머니는 소리 없이 아우성치고 있었다.

할머니가 달라졌다 싶은 순간도 있었다. 이틀 전, 같은 방 95살 박혜자(가명) 할머니의 식사를 지켜보던 순실 할머니가 갑자기 손으로 당면을 집어 먹기 시작한 것이다. 다른 음식은 거부한 채 오직 고기반찬 속 당면만 입속으로 넣었다. 이때다 싶어 식판에 남은 당면을 서둘러 입에 갖다 댔다. 그게 마지막 식사였다.

순실 할머니가 5년 동안 누웠던 침대는 금세 깨끗이 치워졌다. 작은 체구 탓에 살았을 적에도 할머니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던 침대다. 지난 한달 동안 목욕시간을 제외하고 할머니는 한번도 침대를 벗어난 적이 없다. 기저귀를 차고 누워 전등이 켜지면 눈을 떴고, 전등이 꺼지면 눈을 감았다. 가끔 머리맡의 손바닥만한 은색 거울을 들여다보는 게 할머니가 하루 중 유일하게 자신의 의지를 담아 하는 행동이었다. 그런 할머니에게 식사 거부는 요양원을 향해 마음을 내보이는 유일한 행위이기도 했다.

“그동안 감사했어요.” 5일이 지난 17일, 순실 할머니의 장례를 치른 네 딸이 요양원에 찾아왔다. 손에는 큰 사과 상자가 들려 있었다. 한동안 할머니 침대를 지켜보던 딸들은 30분 뒤 요양원을 떠났다. 머리맡에 놓였던 은색 거울과 할머니가 좋아했던 꽃 모양 진주알 팔찌는 가져가지 않았다. 할머니의 유품은 검은 봉지에 담겨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204호에 남은 할머니들은 누구도 순실 할머니에 관해 묻지 않았다. 우는 사람도, 호들갑 떠는 사람도 없었다. 거실 칠판의 ‘정순실’ 이름 옆에 적힌 ‘퇴소’라는 빨간 글씨만이 할머니의 죽음을 기록했다. 2014년 요양원에 입소한 정순실 할머니는 그렇게 죽음으로써 요양원에서 퇴소했다.

인천 ㅊ요양원에 설치된 시시티브이(CCTV)를 한눈에 모아 볼 수 있는 화면. 요양원 곳곳에 설치된 시시티브이는 24시간 돌아간다. 낙상하거나 배회하는 노인을 확인하기 위해 요양보호사들은 쉬는 중에도 눈을 시시티브이에 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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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원 근무 시작…이곳이 ‘요양’원입니까?

기자는 1월29일부터 한달간 인천과 부천의 요양원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했다. 요양보호사로 노인의료복지시설 등에서 일하려면, 노인복지법에 따라 전문교육기관에서 이론·실기·실습과정 240시간을 이수하고 국가시험에 합격해야 했다. 2018년 9월부터 교육을 받은 기자는 12월 시험에 합격해, 1월24일 요양원 취업에 성공했다. “2월부터 근무하세요.” 평균나이가 50대 중반인 요양보호사 세계에서 ‘이방인’ 같은 29살 기자를, ㅇ요양원 원장은 흔쾌히 받아줬다. “갑작스럽게 미안한데, 혹시 1월29일부터 출근할 수 있겠어요? ㅊ요양원에 갑자기 요양보호사 한 사람이 비어서 며칠만 딴 데서 근무해줘요. 지담씨도 빨리 시작하는 게 좋잖아?” 원장의 갑작스러운 요청에 근무지가 변경됐다. 알고 보니 원장은 인천과 부천에서 요양원 3곳을 운영하고 있었다. ㅇ요양원의 3호점인 ㅊ요양원에서 3일 동안 근무한 뒤에야, 기자는 원래 계획대로 ㅇ요양원으로 출근할 수 있었다.

‘아침 6시 기상 및 세수, 7시20분 아침 식사, 오전 9시 기저귀 케어, 9시30분 목욕, 낮 12시 점심 식사, 오후 2시20분 기저귀 케어, 3시 간식, 5시10분 저녁 식사, 6시 소등, 저녁 7시30분 기저귀 교체, 밤 11시20분 기저귀 교체.’

요양원의 하루는 1분도 흐트러짐 없이 정해진 대로 흘러갔다. 세상이 칠흑같이 어두워도 새벽 6시엔 불이 켜졌고, 해가 길어진 한여름에도 오후 6시면 불이 꺼졌다. 식사 시간도 융통성이 없었다. 가령 오후 4시30분에 저녁으로 환자영양식 ‘케어웰’ 400㎖를 먹은 노인은 다음날 아침 7시20분까지 15시간 가까이 허기를 참아야 한다. 환자영양식은 먹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 저녁 식사 시간보다 40분 일찍 배식한다. 목욕도 일주일에 한번 정해진 요일에만 가능하다.

“윽! 이게 무슨 냄새예요?” 요양원 출근 9일째인 2월6일, 95살 김선주(가명) 할머니가 사는 206호에 똥냄새가 진동했다. 기저귀를 차고 용변을 본 선주 할머니가 베개와 이불에 똥을 바르고 있었다. 할머니의 똥칠은 처음이 아니었다. 요양원은 할머니의 ‘사고’를 막기 위해 우주복을 입히고, 우주복을 벗을 수 없도록 발목 지퍼 부위를 끈으로 단단하게 조여 놓았다. 그런데도 이날 선주 할머니는 끈 풀기에 성공했고, 사건은 터졌다. “할머니, 괜찮아요 괜찮아. 어차피 내일 목욕하는 날이니까 오늘만 참으면 깨끗해질 거야. 지담 쌤, 일단 대충 닦아놔요.” 최고참 요양보호사 황승희(가명) 선생님이 차분히 말했다.

치매 노인이 온몸에 대변을 발라도 목욕 일정은 당겨지지 않았다. 결국 선주 할머니와 같은 방을 쓰는 2명의 노인은 하루를 꼬박 똥냄새를 견뎌야 했다. 3~4명의 요양보호사가 입소자 27명을 돌봐야 하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요양원 입소자의 59%(16명)가 요양보호사의 도움이 없으면 침대에만 갇혀 있어야 한다. 요양보호사가 한 사람에게 오래 머물 수 없는 까닭이다. 심지어 이 가운데 7명은 혼자서 옆으로 돌아눕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기자는 한달 동안 요양보호사로 일했지만 ‘돌봄’을 제공하진 않았다. 그저 딱 필요한 만큼의 ‘처치’만 이뤄졌다.

“아이고, 그렇게 해서 내일까지 하려고 그래요?” 요양원 근무 첫날 점심시간. 83살 박경자(가명) 할머니 숟가락에 반찬을 올리고 있는데 뒤통수에서 사회복지사의 꾸지람이 날아들었다. 낮 시간에 출근한 요양보호사는 4명. 다른 층에서 근무하는 요양보호사와 부엌에서 식사 준비를 해야 하는 요양보호사를 빼면, 2명이 18명의 식사를 챙겨야 했다. 18명을 일으켜 세워 앉히고 앞치마를 두르고 틀니를 끼워주는 등 식사 준비부터 식사 도움, 투약, 양치질, 양치 컵 씻기, 앞치마 빨래, 오전 중 나온 빨래 널기까지 80분 안에 끝내야 한다. 사회복지사의 말이 백번 맞다. 한 숟갈씩 정성을 담아줄 시간 같은 건 있을 수 없다.

식사를 몇번 챙기고 나자 요령이 생겼다. 우선 플라스틱 통에 환자영양식을 넣고 빨대를 꽂은 뒤 노인들의 입에 물린다. 혹여 흘리진 않는지, 먹고는 있는지 3개의 방을 뛰어다니며 점검했다. 손은 한명의 플라스틱 통에 둔 채 시선은 다른 노인들을 향해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빨대를 빨 힘이 없는 노인들은 뚜껑을 열어 직접 먹여야 했다. 시간이 없어 입속에 있는 영양식이 채 식도로 넘어가기도 전에 또 한 숟갈을 밀어 넣었다. 근무 15일차를 넘기자 기자는 10분 안에 2명의 식사를 ‘처리하는’ 기술까지 생겼다. 위생 장갑을 끼고 밥과 반찬을 주먹밥처럼 뭉쳐 입에 넣거나, 국에 밥을 말아 후루룩 먹이는 식이었다. 알약을 가루처럼 만든 뒤 밥이나 국에 뿌려 한번에 먹이기도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어떻게 잘 돌볼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다 처리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다. 개인 속옷과 겉옷이 있지만 대부분 남녀 구분 없는 공동옷을 돌려 입었고, 머리도 모두 짧은 커트 머리로 잘랐다. 관리가 편하다는 이유 하나 때문이었다. 손이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요양원에서 ‘요양’은 사라지고 효율만 남았다. 식사 시간 10분 전, 똑같은 앞치마를 둘러매고 반쯤 올린 침대에 앉아 초점 없는 눈으로 밥을 기다리는 노인들의 모습은 소름 끼칠 만큼 일률적이었다.

‘많은 사람들을 집단적으로 한곳에 가두거나 모아 넣는 곳.’ 기자가 한달 동안 지켜본 요양원은 사실상 수용소였다. 오직 죽어야만 ‘퇴소’할 수 있는 수용소. ‘노인 수용소’의 공동생활은 한 사람, 한 사람을 소멸시켜 ‘대변 색깔’마저 같은 집단으로 만들었다. 환자영양식을 먹는 노인들의 대변은 양·색깔·묽기까지 정확히 일치했다.

경기 부천 ㅇ요양원 입소자인 김은희(가명·79) 할머니는 벽지에 있는 꽃그림을 ‘하느님’이라고 여겼다. 치매 환자인 할머니는 벽지가 해질 정도로 ‘하느님’을 어루만졌다. 종일 누워 지내는 할머니에게 ‘하느님’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대상이었다. 할머니는 퇴근하는 기자를 붙잡고 “혼자 두고 가지 말라”며 울부짖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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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변조차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곳

“너무 시원하다. 고맙다. 정말 고맙다. 내가 화장실에서 똥 싸는 게 마지막 소원이었는데, 우리 딸도 안 해주는데, 아이고 고맙다.”

출근 2일째 날, 기자는 화장실에 제발 데려가 달라는 95살 박혜자(가명) 할머니의 손을 잡고 화장실로 향했다. 보행기 없이 걷기 힘든 혜자 할머니는 평소 화장실에 가지 못하고 기저귀를 통해 용변을 해결했다. 혜자 할머니는 화장실에 데려가 똥을 닦아주는 기자에게 몇번이나 고맙다고 했다. 손등에 뽀뽀까지 해줬다. 그러나 할머니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준 결과는 처참했다.

변기 옆 난간을 잡고 서게 한 뒤 엉덩이를 닦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똥은 닦아도 닦아도 계속 나왔다. 화장실에 오기 전 이미 기저귀에 조금 똥을 싸놓았던지라, 엉덩이 전체에 똥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휴지로 해결되지 않아 물티슈를 가져왔다. 변기는 물론 항문과 엉덩이, 기저귀에 묻은 똥을 치우고 나니 겨울인데도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10분가량의 ‘닦기’를 끝낸 뒤 물을 내리려는데 변기까지 막혔다. 급한 대로 휴지와 물티슈를 변기에 넣다 보니 생긴 일이었다.

“선생님 어딨어! 바빠 죽겠는데 어디 간 거야? 지담 쌤!” 변기를 뚫고 있는데, 같이 일하는 요양보호사가 기자를 급히 찾았다. 이날은 요양원 2층 노인 18명을 2명의 요양보호사가 돌봐야 하는 날이었다. 당장 뛰어가야 했지만, 혜자 할머니를 버려두고 떠날 순 없는 노릇이었다. 혜자 할머니를 방에 모셔와 기저귀를 교체하는 데까지 30분가량 소요됐다. 미안한 마음에 동료 요양보호사에게 구구절절 변명을 늘어놨지만 돌아오는 건 꾸중이었다. “그러게 기저귀를 차는 어르신을 왜 화장실에 모시고 갔어?”

요양원 입소자 27명 가운데 기저귀를 찬 노인은 16명(59%)이었다.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 요양보호사의 도움 없이 움직일 수 없거나, 치매가 심해 혼자서 대소변을 가릴 수 없는 노인들이었다.

변기에 앉아 시원하게 대변을 본다는 건 혜자 할머니처럼 기저귀를 찬 노인들에겐 소원이자 꿈같은 일이었다. 남녀 모두 한번에 3개의 기저귀를 찼다. 겉에 팬티 모양의 대기저귀를 깔고, 그 안에 일자형 기저귀를 댄 뒤 기저귀를 돌돌 말아 성기 부분에 하나 더 대는 식이다. 소변을 볼 경우 성기를 감싼 기저귀만 교체된다. 일자형 기저귀는 대변을 봤을 때만 교체된다. 변비 탓에 노인들 대부분이 최소 3일 동안 같은 기저귀를 차고, 가장 바깥쪽 대기저귀는 2주가량 교체되지 않는다. 오래 교체되지 않다 보니 기저귀가 찢어져 흡수제인 ‘고흡수성수지’ 알갱이가 몸에 자주 묻어 있었다.

더 끔찍한 건 대소변을 봐도 기저귀가 곧장 교체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기저귀 케어는 △새벽 6시 △오전 10시 △오후 2시20분 △저녁 7시30분 △밤 11시20분으로 하루 5번 이뤄졌다. 오전 10시를 넘겨 대변을 본 노인은 오후 2시20분까지 4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그 탓인지 노인들은 꼬리뼈에 욕창을 달고 살았다. 기저귀를 교체할 때면 노인들은 사타구니를 손으로 벅벅 긁어댔다.

그나마 기저귀에라도 변을 볼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 79살 최교실(가명) 할머니는 괄약근에 힘이 없어 스스로 변을 보지 못한다. “똥 나온다, 똥 나와… 계속 나와. 선생님, 이것 좀 버려주세요.” 목욕 나간 교실 할머니의 침구를 정리하고 있던 기자를 동료 요양보호사가 급히 찾았다. 구멍이 뻥 뚫린 목욕 변기 아래로 초록색 똥이 툭툭 떨어지고 있었다. 요양보호사가 아랫배를 누르자 5분 동안 대변이 쉬지 않고 나왔다. 포도 3송이보다 크고 묵직한 변은 2㎏ 아령보다 무거웠다. 목욕 때면 요양보호사들은 할머니의 배를 눌러보곤 했다. 이날 할머니가 본 대변은 자그마치 10일치였다.

교실 할머니는 요양원에서 유일하게 콧줄로 물과 음식을 섭취하는 입소자다. 언제 콧줄을 잡아 뺄지 모르는 탓에 할머니는 항상 오른손이 침대에 묶여 있다.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지내는 교실 할머니는 콧줄로 경관식이 들어갈 때만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 할머니가 10일 동안 변을 보지 못한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교실 할머니는 스스로 먹지도, 스스로 변을 보지도, 스스로 곡기를 끊지도 못한 채 하루하루 버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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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없으면 되니까” 요양원을 택한 이유

“친구 아들 손잡고 들어왔지. 애들이 못 가게 하니까.” 87살 박옥순(가명) 할머니는 지난해 7월 자발적으로 요양원에 들어왔다. 할머니는 대소변을 직접 해결했고, 식사도 문제가 없었다. 보행기만 있으면 어디든 혼자 힘으로 다닐 수 있었다. 옥순 할머니는 요양원에서 기자와 대화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노인 가운데 한명이었다.

“여기서 2년, 여기서 3년, 여긴 2년, 2년, 2년 살았지.” 아들 다섯, 딸 하나 육남매를 둔 옥순 할머니는 11년 동안 자식들의 집을 이동해 다녔다. 아들 5명이 2~3년씩 돌아가며 옥순 할머니를 모시는 과정은 순탄했다. 딸까지 여섯이 할머니의 생활비를 공평하게 부담했고, 불화는 없었다. 할머니는 그저 함께 나이 들어가는 며느리들이 눈에 밟혔다고 했다. “내 밥, 나물 3가지, 찌개 이렇게 5가지를 매일 두번씩 차렸어. 내 밥 하려면 며느리들이 땀을 비 오듯이 흘려. 나 하나만 없어지면 자기들(며느리)이 숨 쉬니까.”

“엄마가 우리를 어떻게 키웠는데…. 자식이 여섯이나 되는데 엄마를 요양원에 보낸다고?” 옥순 할머니의 ‘독립 선언’에 자식들은 ‘자신들을 불효자로 만들지 말라’며 길길이 뛰었다. 첫째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 남편을 잃은 할머니는 충청도 시골에서 과일 장사를 하며 육남매를 키웠다. 자식들의 반발에도 할머니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요양원 한달에 60만원이니까 여섯명이 10만원씩 내면 되는 거지. 이렇게 있다가 위(하늘)에서 부르면 가려고.” 옥순 할머니는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옥순 할머니를 제외한 노인들에게 요양원 입소는 자발적이 아니었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거동이 불편해졌거나, 치매가 심해져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노인들이 가족의 손에 이끌려 요양원에 왔다. 노인장기요양보호법에 따라 보건복지부 산하 국민건강보험공단은 65살 이상 또는 65살 미만 노인성 질환 대상자 중 52개 항목을 방문 조사해, 1~5등급까지 장기요양 등급을 부여한다. 등급을 받은 노인이 요양원에 입소하면, 정부는 소득과 등급에 따라 장기요양급여의 80~100%를 지원한다. 기자가 일했던 ㅇ요양원의 한달 본인부담금을 보면, 1등급은 42만1820원, 3~5등급은 36만940원을 내야 했다. 여기에 27만1450원의 식대를 더 낸다. 입소자 27명 가운데 △1등급은 1명 △2등급은 8명 △3~5등급은 17명 △등급을 받지 않은 사람은 1명이었다.

75살 한현주(가명) 할머니는 사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요양원에 입소한 경우다. 현주 할머니는 15년 전만 해도 아들 부부, 손자 2명과 함께 살았다. 하지만 손자들이 성장하면서 방 두칸짜리 59㎡(18평) 집에 할머니가 설 곳은 없었다. 2004년 현주 할머니는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재작년 8월 사고만 아니었다면 이곳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화장실에 다녀왔는데도 소변이 많이 마려웠던 건지 전기장판에 오줌을 지렸어. 그걸 모르고 이불 위에 누우려다 미끄러져서 정신을 잃었어. 혼자 방에 쓰러져 있던 걸 근처 목사가 발견해 병원에 갔는데, 목사님이 안 왔더라면 큰일 날 뻔했지.” 현주 할머니는 그 뒤로 트라우마가 생겼다. 병원 입원 한달이 지날 무렵, 아들이 요양원을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내 생각에도 넘어져서 온몸에 피멍이 드는 것보단 요양원이 안전하겠더라고.”

요양원에 입소한 각자의 사연은 달랐지만, 요양원에 들어오는 순간 바깥 세계와 단절되는 건 모두가 같았다. 면회와 외출엔 아무런 제한이 없었지만, 찾아오는 이도 나가는 이도 거의 없었다. 노인 27명 가운데 1~2명만이 가족이 일주일에 1~2번 찾아와 10분 남짓 머물다 갔다. 나머지 노인들은 명절에만 겨우 가족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요양원에 자발적으로 입소한 옥순 할머니 역시 마찬가지다. 기자가 근무하는 한달 동안 여섯 남매 중 아무도 요양원을 찾지 않았다. 자신의 모습이 초라해 스스로 세상과 단절하기도 했다. “나는 보행기가 없으면 못 서. 친구들은 이런 굽 신고 또각또각 다니는데 난 보행기 끌고 가라고? 그런 모습 안 보이려고….” 요양원에 오기 전 교회 권사였던 옥순 할머니는 2박3일로 놀러 가자는 교회 친구들에게 ‘요양원장이 외박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거짓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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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고 고통스러운 병 ‘치매’

요양원 입소자의 90%는 치매를 앓고 있었다. “내 방이 어디지?” 이틀에 한번꼴로 자신의 방을 묻거나, 식사 직후 “우리 밥 먹을 때 됐나?” 묻는 건 ‘귀여운 치매’였다. 폭력성을 띠는 치매 노인은 요양보호사들도 꺼리는 기피 대상이었다.

81살 황복수(가명) 할아버지가 그런 경우다. 키 180㎝ 건장한 체격의 복수 할아버지는 폭력·욕·침뱉기 ‘3종 세트’를 갖추고 있어, 요양보호사들조차 두려움에 떨었다. 불안정한 정신과 달리 힘은 20대 청년만큼이나 셌다. 고관절 수술로 전신이 딱딱하게 굳은 복수 할아버지는 답답함을 폭력으로 분출했다.

“야이 썩어질 ×들. ××년, ×발.” 요양원 근무 11일째인 2월8일. 면도를 위해 복수 할아버지에게 다가가자 어김없이 욕설이 날아들었다. 힘겹게 양손을 움직여 요양사의 팔과 옆구리를 꼬집기 시작했다. 아랑곳없이 면도를 시도하자 침을 뱉었다. 침은 그대로 기자의 얼굴에 날아왔다. 결국 동료 요양보호사가 할아버지의 얼굴을 잡고 입을 막았다. 기자는 그 틈에 재빨리 면도를 끝내야 했다. 당연히 면도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피가 날까 턱 아랫부분은 면도를 포기했다. 베테랑이 아니면 혼자 기저귀를 교체할 수도 없었다. 양치해줄 때도 칫솔을 물거나 양칫물을 너무 세게 뱉다 보니 양치를 시키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식판을 엎을까봐 별도의 서랍장을 가져와 그 위에 식판을 놓고 멀찌감치 떨어져 먹일 정도였다. 치매 환자들의 과민 반응과 폭력성은 일몰이 다가올수록 심해졌다. ‘석양증후군’ ‘일몰증후군’이라고 했다. 하루의 끝이 생의 끝으로 여겨지는 걸까.

폭력은 쉽게 전염됐다. 복수 할아버지 옆 침대인 82살 허태식(가명) 할아버지의 치매도 나날이 폭력적으로 바뀌었다. “밥 빨리 줘.” 식사 시간 10분 전 복수 할아버지가 침대 난간을 흔들기 시작하자 태식 할아버지도 밥상을 두드리며 소리를 질러댔다. 두 사람의 언쟁이 싸움으로 번질 뻔한 적도 있었다. 복수 할아버지가 소리를 지르자 태식 할아버지가 살기 띤 눈으로 복수 할아버지를 노려봤다. “뭐라고 이 새끼야? 죽여 버릴 거야.” 다리가 마비되지 않았다면, 손에 뾰족한 흉기라도 들려 있었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치매가 심할수록 가족의 방문은 적었다. 요양원 근무가 끝나갈 무렵인 2월24일. 태식 할아버지의 부인과 딸이 처음 요양원을 방문했다. 할아버지는 아내를 알아보지 못한 채, 가족을 안내하는 기자의 멱살을 잡으려고 발버둥쳤다. “원래 저래요? 치매 약을 먹어서 이럴 리가 없는데….” 남처럼 몰라보게 변해버린 모습에 충격을 받은 아내는 10분도 머물지 않고 떠났다.

치매는 그렇게 자신을 죽이고, 주변 사람들까지 병들게 했다. 오죽하면 대통령이 국가가 돌봐야 한다며 ‘치매국가책임제’를 시작했을까. 문제는 치매 노인이 갈수록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치매센터의 ‘대한민국 치매 현황 2018’을 보면, 우리나라 치매 환자 수는 70만명을 넘어섰다. 65살 이상 노인 인구가 706만여명인 것을 고려하면, 노인 10명 가운데 1명이 치매 환자다. 치매 환자는 2024년엔 100만명이 넘고, 2060년엔 330만명을 넘어설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인천 ㅊ요양원에서 식사를 거부하는 노인에게 기자가 환자 영양식과 약을 함께 먹이려고 하고 있다. 요양원에서 노인들이 자신의 의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식사를 거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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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제정신이 아닌 게 낫지”

2월16일 요양원 근무 19일째. 3층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는 기자를 현주 할머니가 조용히 불렀다. “선생님, 나 오늘 밤부터 기저귀 채워줘.” 현주 할머니는 치매 증상도 없고 대소변도 가릴 수 있는, 요양원에서 가장 건강한 노인이었다. 수십년 전 교통사고와 최근 미끄러짐 사고로 장애 2등급 판정을 받아 요양원 신세를 지고 있지만, 기저귀를 찰 정도는 아니다.

“옆에 할머니가 새벽에 오줌 싸는 거 냄새난다고 하루 종일 중얼거리잖아. 그냥 내가 기저귀를 차는 게 낫겠어.” 2월8일 다른 요양원에서 옮겨온 79살 박순이(가명) 할머니 이야기였다. 순이 할머니는 예민했다. 301호에 온 첫날부터 ‘텔레비전 소리가 너무 크다’는 이유로 같은 방에 사는 81살 조선중(가명) 할머니와 언쟁했다. 결국 303호로 옮겼다가 며칠 전 그 방은 ‘어둡고 냄새가 난다’며 301호로 돌아왔다. 돌아와서는 현주 할머니의 소변기를 문제 삼았다. 수면제를 먹고 잠드는 현주 할머니가 캄캄한 새벽에 혼자 화장실에 가는 건 위험했다. 요양원은 침대 옆 이동변기에 소변을 보게 했는데, 순이 할머니가 며칠째 현주 할머니에게 타박을 준 것이다. 결국 현주 할머니는 밤에만 기저귀를 차기로 결정했다.

이런 문제 때문에 전문가들은 치매 환자와 치매가 없는 환자의 돌봄이 따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경기 안성에서 14년 동안 요양원을 운영했던 전직 원장 김영주씨는 “치매 환자와 일반 환자를 같은 방에 둘 경우, 일반 환자의 인권과 권리가 훼손되고 치매 환자는 치매 환자대로 집중 케어가 어렵다”며 “치매·일반 환자 사이 칸막이를 두고 싶어도 소방법에 위배돼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실제 순이 할머니와 현주 할머니의 밤소변 문제에서 가장 좋은 해결책은 ‘분리’였다. 하지만 ㅇ요양원엔 남는 방이 없었고, 현주 할머니가 1인실로 이동하려면 매달 10만원을 추가로 내야 했다.

“차라리 제정신이 아닌 게 나아.” 요양보호사들은 인지가 또렷할수록 버티기 힘든 곳이 요양원이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나 한방에 있다는 건 서로의 알몸을 공유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정신이 온전할수록 수치심이 클 수밖에 없다. 같은 방의 노인들은 ‘한 세트’로 같은 날 목욕을 했다. 방에서 옷을 다 벗은 채 가로세로 0.5~1m짜리 네모난 욕창 매트를 목에 걸고 복도를 지나 목욕실로 이동해야 한다. 조그만 욕창 매트는 몸을 다 가리기엔 턱없이 작았다. 목욕이 끝난 뒤에도 방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옷을 입을 수 있었다. 목욕 중 면회자가 있어도 예외는 없다. 요양원 근무 마지막 날인 2월28일. 86살 명희숙(가명) 할머니의 아들이 찾아왔지만, 아무도 목욕을 위해 발가벗은 89살 신이숙(가명) 할머니의 몸을 가려주지 않았다. 희숙 할머니의 아들이 이숙 할머니 옆 침대에 앉아 ‘알아서’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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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러 오는 곳…요양원은 현대판 고려장

평균 나이 87살. 이곳 노인들은 70대부터 100대까지 나이와 상태는 달랐지만, 하루하루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점에선 모두가 같았다. 노인들은 요양원에 오래 있을수록, 나이가 많을수록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

“박혜자만 예뻐하고, 나는 밥도 안 주고…. 내가 언제까지 살아야 하나 싶어 자꾸 서러워 눈물이 나요. 엄마 생각에 눈물이 나요.”

2월25일 최고령자 방인 204호에 사는 97살 최미자(가명) 할머니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미자 할머니 손에는 보라색에 흰 무늬 수면양말이 씌워져 있었다. 치매 환자인 미자 할머니가 기저귀를 풀어 ‘똥칠’을 하는 걸 막기 위해 요양원은 1년 365일 할머니 손에 수면양말을 씌워놨다. 노란 테이프가 손목에 칭칭 감긴 수면양말 위로 환자영양식이 담긴 플라스틱 컵을 들고 있던 미자 할머니는, 기자가 떠주는 죽을 받아먹는 혜자 할머니를 보자 갑자기 서러워졌다고 했다. “죽고 싶어. 나는 언제까지 살아야 해요?” 외로움과 설움이 복받친 미자 할머니는 절규했다.

2월12일 정순실 할머니가 떠나고, 2주가 채 안 된 2월24일 89살 박원식(가명) 할아버지도 세상을 떠났다. 순실 할머니가 숨진 다음 날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해 병원으로 옮겨진 원식 할아버지는 건강을 회복하지 못했다. 기자가 요양사로 일한 한달 동안 2명의 노인이 죽음으로써 요양원을 퇴소했다. 가족과 함께 살게 됐다거나, 건강이 나아졌거나 등 다른 이유로 요양원을 벗어나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가족들은 전문적인 돌봄을 받으며 사시라고 노인들을 요양원으로 보낸다. 하지만 요양원에 들어온 노인들은 하루만이라도 더 빨리 죽여달라고 애원한다. “사실 요양원에 데려다 놓는 거, 자식들 욕심이지 효도가 아니야. 말도 못 하고 누워 있는 어르신들 영양제 맞히고 수면제 먹이고, 얼마나 고통스럽겠어? 요양원이 살려고 오는 곳이야? 죽으려고 오는 곳이지.” 요양보호사들은 요양원을 ‘고려장’이라고 불렀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세요.” 장수 기원이 ‘덕담’이 아닌 ‘욕’이 되는 이곳. 요양원은 ‘현대판 고려장’이다.

글·사진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

▶ 관련기사 바로가기 : 노인요양원 체험르포(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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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창간기획] 대한민국 요양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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