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리로 인한 감염 우려, 경제적 손실, 낙인,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 불면증, 감정적 소진, 분노.’
영국 킹스칼리지런던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서맨사 브룩스 박사 연구팀은 지난 2월말 의학저널 <랜싯>에 발표한 논문에서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유행에서 격리자들이 위와 같은 정신건강 문제에 맞닥뜨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연구팀은 “감염병 예방을 위해 격리조치를 할 수밖에 없겠지만 섬세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격리자의 정신건강을 돌보는 데 실패해 문제가 발생한다면 장기적으로 국가 전체 보건의료 시스템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봉쇄지역 주민과 격리자의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브뤼셀 대학의 엘커 판호프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지난 9일 <월드 이코노믹 포럼>에 기고한 글에서 “현재 많은 국가들이 시행하고 있는 봉쇄·격리 정책이 정신건강에 미칠 영향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에서도 지난 8일 자가격리 중이던 20대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벌어졌다. 앞서 4일 유럽에서 한국으로 입국해 자가격리를 하던 중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경찰이 정확한 사망원인을 파악 중이지만, 전문가들은 정신건강 문제를 조심스럽게 거론하고 있다. “격리된 상황이 자살 충동을 일으키는 데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격리는 정신건강에 큰 부담을 주기 때문에 서울시와 세종시 등 지자체는 자가격리자를 위한 심리지원 시스템을 마련하고 있다.
최근 정부의 ‘전자팔찌’(안심밴드) 착용 방침을 놓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전체 자가격리자 5만6856명 중 106명(10일 기준) 남짓한 격리지침 위반자를 감시하기 위해 안심밴드 착용 방침을 밝혔다가 시민사회의 거센 반발을 샀다. 전자팔찌 착용으로 인한 사회적 낙인의 경험은 격리로 인한 정신건강의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 당국은 홍콩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는 조처라고 설명했지만 홍콩에서도 국외 입국 교민에게만 2주간 착용하도록 한 것이다. 외부에서 오는 교민을 막을 수 없기 때문에 보완책으로 마련한 조처다.
정부는 격리지침 위반자에 한해 도입하기로 방침을 바꿨지만, 이마저도 전자팔찌를 채울 법적 근거가 없어 실효성 논란이 제기됐다. 격리자의 마음까지 배려하는 ‘섬세한 방역’은 무리한 주문일까.
이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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