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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이명박 시장, 노숙인들에게 호통은 쳤지만…

등록 2006-02-01 18:30수정 2006-02-01 19:02

지난해 9월 20일. 서울시청으로 한나라당 의원들을 초청해 청계천 복원사업을 설명하고 있는 이명박 서울시장.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지난해 9월 20일. 서울시청으로 한나라당 의원들을 초청해 청계천 복원사업을 설명하고 있는 이명박 서울시장.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노숙인들의 삶이 단순히 그들만의 탓일까?
언젠가 서울시 출입기자 몇 명이 모여 가상의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만약 이명박 서울시장이 성형수술을 한다면 어디를 가장 고치고 싶을까’라는 물음이었다. ‘쌍꺼풀’이라는 의견도 있었으나 모두가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인 것은 ‘성대’였다.

하루에 잠을 네시간 밖에 안 잔다는 이 시장은 체력이 아주 강하지만 목을 포함한 호흡기는 약한 편이다. 마이크를 잡아도 목이 잠겨 제대로 말이 안 나올 때가 많다. 코막힘 증세도 있다. 명연사가 되기에는 한참 떨어지는 조건이다.

그럼에도 1일 서울 용산구민회관에서 열린 ‘노숙인 특강’은 이 시장의 연설이 이제는 경지에 이르렀음을 느끼게 했다. 이날 특강은 서울시가 ‘노숙인 일자리 갖기’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뉴타운 건설 현장에 투입될 신청자 1072명을 대상으로 한 연설이었다. 이 시장이 젊은 시절 사회 밑바닥에서 인생 역정을 맛보았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기에 이날 특강 역시 체험 고백이 뼈대를 이룰 것으로 예상됐다. 그런데 이날 연설은 단순히 체험을 늘어놓으며 정서를 자극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기·승·전·결의 구조를 갖춰 강·약을 적절히 조절하며 진행됐다.

기(起) = 연단에 오른 이 시장은 마이크를 잡자마자 ‘호통’부터 쳤다. “어이, 모자 좀 눌러쓰지 마세요. 모자를 좀 올리세요. 얼굴 좀 보게요.” 이어 그는 옆 사람끼리 앞뒤 사람끼리 서로 인사하며 낯을 익히라고 권했다. “나 또한 예전에 용산구에서 환경미화원으로 4년 동안 일했다”며 운을 뗀 그는 “마음의 부담을 털어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데, 계속 모자를 눌러쓰려는 사람들은 아직도 정신을 안 차린 것”이라고 말했다.

승(承) = 이 대목에선 사업에 실패한 뒤 부산 앞 바다에 빠져 죽으러 가다가 요양보호시설인 ‘꽃동네’에 들러 다시 살기로 맘 먹은 한 소상공인의 사례가 소개됐다. 죽으려고 하던 그 남자에게 희망을 준 ‘꽃동네 사람’은 목과 얼굴을 제외한 전신이 마비돼 침대에만 누워 살아가는 여자였다고 한다. 죽음을 앞두고도 감사해 하며 살아가는 그녀를 보고, 남자는 자신의 처지가 사치스럽다고 생각하고 일터로 돌아갔다고 한다. 여기에서 이 시장은 죽으러 가던 남자가 ‘정신을 덜 차렸던 것’이라고 표현했다. “부인한테 창피하고, 아들·딸한테 창피하고, 세상의 싸늘한 시선이 창피하고…. 그런데 사실 세상이 싸늘한지 아닌지 알 수 없지. 그냥 그렇게 생각됐던 거지. 정신을 덜 차렸던 거지요.”

전(轉) = 이 시장은 어린 시절 자신의 옆집에 살던 ‘거지 친구’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집 옆방에 거지 식구가 살았어요. 우리집은 온 식구가 하루종일 열심히 일해도 굶기가 태반이었어요. 그런데 이 거지네 식구들은 매일 아침 밥을 먹었어요. 거지 부모가 아침에 동네를 돌면서 밥을 얻어 오니까. 나랑 나이가 같은 거지 친구는 나한테 자랑하면서 밥을 먹었어요. 그때는 참 이상했지. 우리는 열심히 일해도 밥을 못 먹는데 매일 노는 거지는 어떻게 밥을 먹을 수 있을까? 근데 나중에 보니, 우리는 다 부자가 됐는데 거지네 식구는 계속 거지로 살았어요.”

이 시장은 1996년 미국에 갔을 때, 그 거지 친구가 미국에 이민 와 살면서 자신을 만나러 왔다는 얘기를 전했다. “친구가 울면서 하는 말이 거지로 살 때가 편했다는 거예요. 지금은 벌어먹고 사는 게 너무 힘들다면서. 거지가 편하죠. 늦잠 자고, 밤에 소주 먹으면 깨어날 때까지 자고. 거지들은 정보도 빠르니까 부잣집 잔치가 어디어디에서 있는지도 잘 알고…. 그래서 우리 속담에도 있습니다. ‘거지 3일만 하면 못 버린다’고요.”

결(結) = “여러분한테 희망을 주고 싶습니다. 이제는 줄서서 밥을 기다리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번 돈으로 밥 사먹는 겁니다. 2년 동안 노숙생활 한 사람 있으시죠? 이제 변화가 몹시 힘들 겁니다. 일어나서 출근해야 하고, 출근해서도 옆 사람보다 더 잘해야 합니다. 서울시는 계속 일자리를 줄 겁니다. 뉴타운 건설 현장뿐 아니라, 의욕을 가지면 더 많은 일자리도 생깁니다. 일 없어 실실 놀 때 한강시민공원 가 봤죠? 몇십명 뭉쳐서 한강시민공원을 구간별로 청소 용역을 맡을 수도 있어요. 나는 이제 새 출발하는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나중에 몇푼 안되더라도 통장 들고 나한테 오길 바랍니다. 다만, 정신 바짝 차리고 사고 나지 않게 주의하세요. 그리고 술·담배 하지 마세요! 돈 번 다음에 술도 먹고 담배도 피세요. 여러분 화이팅!”

노숙인 관련 시민단체 등에서 취합한 바로는, 서울시의 노숙인은 약 1만5천여명 가량 된다고 한다. 이 중에 7% 가량이 오늘 서울시에서 지급한 푸른 유니폼을 입고 시장의 ‘간증’을 들었다. 반응은 엇갈렸다. “세상이 그렇게 절망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며 씩씩하게 말하는 이도 있었지만 대부분 말을 건네면 꾹 눌러 쓴 모자 아래 입술을 앙 다물었다.

시장은 이들을 위로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그쳤다. 남 탓이 아닌 자기 탓으로 알고 시작하라고 했다. 시장의 말처럼 이들이 ‘결단’하지 못해 자신이 바라는 삶을 살지 못했던 것이었을까. 그랬다면 차라리 좋겠다. 몇달 뒤에도 ‘거리의 사람’들이 계속 ‘일하는 사람들’로 살아가면 좋겠다.

<한겨레> 사회부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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