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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교사 자존심은 깨지고, 교육 본질은 얻었다

등록 2021-07-05 18:10수정 2021-07-06 02:33

‘선생님들의 수다’ 펴낸 태봉고 교사들

기숙형 공립 대안학교 태봉고 10주년
교사들이 깨지며 깨달은 것들 정리해
“인간 대 인간으로 기다리는 것 배워”
수업 종을 치지 않는 학교, 눈물바다가 되는 졸업식,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드는 교장실….

국내 최초 기숙형 공립 대안학교 태봉고등학교가 지난해에 개교 10주년을 맞은 가운데, 10년간의 실천교육을 돌아본 책이 최근 나왔다. <선생님들의 수다>(여름언덕 펴냄)는 태봉고에 재직하고 있거나 재직했던 교사 6명이 1년 이상 매달 만나서 태봉고에서의 경험과 배움, 성장에 대해 나눈 대화를 묶은 것이다.

일반 공립학교에서 근무하다 태봉고를 자원해 온 이들 교사들은 대안교육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 선생님들이었다. “공립학교에 재직할 때 강제 야자, 강제 보충수업, 고교 비평준화, 수준별 반 편성 등 제가 학창시절 겪은 학교와 달라지지 않은 현실 속에서 무너지는 아이들을 보면서 많이 힘들어서”(이인진 교사), “교육 본질에 대한 사유와 밀접한 현장 경험을 갈구해서”(류주욱 교사), “대안학교가 한국 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풀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해서”(백명기 교사) 등이 태봉고에 온 이유다.

하지만 처음 왔을 때 경험한 것은 교사로서의 자신감과 자존심이 ‘와장창’ 깨어지는 좌절이었다. 간디학교, 메트스쿨 등 국내외 유명 대안학교들을 모델로 세워진 태봉고는 자유주의 교육 철학을 바탕으로 아이들에게 최대한의 주도성과 자율성을 허락한다. 가출·음주·흡연 등의 문제를 겪으며 치유가 필요한 학생부터 탈입시 대안적 가치를 추구하는 학생까지 꽤 넓은 스펙트럼의 아이들을 품고 있는 학교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수업 시간에 “배울 게 없다”며 교실을 박차고 나가기도 하고, 교사에게 “그렇게 가르치면 안 된다”고 지적하기도 하고, “도대체 이런 걸 왜 배우냐”며 따지기도 한다. 힘들다고 찾아온 학생을 헌신적으로 상담해줬는데 “선생님과 저는 안 맞는 거 같아요. 다른 선생님한테 갈래요”라며 가버리기도 한다. 뜨거운 열정으로 왔다가 상처받고 떠나는 교사들이 있는 이유다.

“도대체 어디까지 아이들을 배려하고 어디서부터 야단을 쳐야 할까, 어디까지 감내하고 어디부터 통제해야 할까” 하는 혼란이 들고 “내가 이러려고 태봉에 왔나” 하는 자괴감도 들고 “내가 교사로서 적합한 사람인가 하는 회의감”까지 드는 건 당연지사. 백명기 교사는 “모든 아이들을 다 품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 품이 그렇게 넓지 않았다는 걸 깨달아 힘들었다”고 말했고, 류주욱 교사는 “내 안의 권위의식과의 싸움이 가장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하태종 교사는 “학교 설립 당시 간디학교에서 오신 여태전 교장 선생님을 제외하곤 모두 일반 공립학교 교사들이어서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었다”며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우리가 가는 방향이 맞는지에 대한 많은 갈등과 혼란이 있었다”고 말했다.

국내 최초 기숙형 공립 대안학교 태봉고등학교 교사 6명이 개교 10주년을 맞아 태봉고가 걸어온 길을 정리한 &lt;선생님들의 수다&gt;를 펴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백명기, 이인진, 하태종, 오도화, 손옥금, 류주욱 교사. 오도화 교사 제공
국내 최초 기숙형 공립 대안학교 태봉고등학교 교사 6명이 개교 10주년을 맞아 태봉고가 걸어온 길을 정리한 <선생님들의 수다>를 펴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백명기, 이인진, 하태종, 오도화, 손옥금, 류주욱 교사. 오도화 교사 제공

이런 좌절과 혼란 끝에 교사들은 무엇을 배우고 얻었을까? 오도화 교사는 “아이들이 ‘이런 거 왜 배워요?’라는 질문을 많이 하니까 왜 배우고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 등 교육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을 많이 하게 됐다”고 말한다.

이들이 교육의 본질에 대해 내린 결론이나, 이들이 배우고 성장했다고 말하는 부분은 다르지 않다. “아이들이 언젠가는 자기 길을 찾아가고 성장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아이들을 기다려주는 것”(오도화 교사), “아이들과 교사가 인간 대 인간으로 주고받는 합창이자 예술”(백명기 교사), “아이들 곁에서 같이 살아가면서 때로는 도와주고 같이 기뻐하고 같이 슬퍼하는 것”(하태종 교사), “나의 가치관과 달라도 무엇이든 들어주고 공감하며 지지할 수 있는 마음”(류주욱 교사), “교사라는 권위를 내려놓고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는 것”(손옥금 교사)은 교사들이 배운 것이자 동시에 학생들에게 주고 싶은 것들이었다. 실제로 책의 마지막 부분에 실린 ‘태봉고 졸업생들의 수다’ 편을 보면, 학생들이 이곳에서 무얼 배우고 어떻게 성장해 졸업했는지 그래서 그것이 20대 삶에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일반학교 교사가 대안학교를 지원하게 될 때 어떤 마음으로 오면 좋을지 물었다. 오도화 교사는 “자신이 많이 배우고 성장하겠다는 마음이 있으면 많이 배우고 성장해서 나가는 것 같다”며 “이른바 ‘꼰대’가 아니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백명기 교사는 “씨앗 속에는 무엇으로 자랄지가 다 들어 있어서 물과 거름만 적당히 주면 잘 자라듯이, 어른들이 가로막지만 않으면 아이들이 충분히 잘 자랄 수 있다는 믿음이 있는 분이면 좋을 것 같다”고 조언했다. 하태종 교사는 “새롭게 배우고 성찰하면서 같이 학교를 만들어가고 싶은 교사라면 좋겠다”고 말했고, 류주욱 교사는 “학생과 동등한 존재로 서로 깨우치며 알아가고 성찰하며 살고 싶은 누구라도 좋을 거 같다”고 말했다. 손옥금 교사는 “나의 편견과 생각은 내려놓고 유연함과 열린 마음은 가지고 오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6명의 공동 저자 가운데 2명은 아직도 태봉고에 재직 중이고, 다른 3명은 다른 공립 대안학교에 전근을 갔으며, 나머지 1명은 다시 일반 공립학교로 돌아갔다. 이인진 교사에게 왜 다시 일반학교로 돌아갔냐고 물었다. 그는 “대안교육을 꼭 대안학교에서만 해야 하는 것일까 하는 고민도 있고, 일반학교 아이들도 외면할 수 없는 교사로서의 사명도 있어서 돌아왔는데, 아직은 이 길이 맞는지 저 길이 맞는지 고민 중”이라고 답했다. 태봉고가 교사들에게 뿌린 ‘교육의 본질’에 대한 고민의 씨앗은 계속 자라고 있었다.

김아리 객원기자 a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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