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호 서울 유석초 교사
아침 독서 시간마다 천천히 지나가면서 학생들의 머리를 한 번씩 쓰다듬어 준다. 20명이 넘는 아이들 중에 하루에 단 한 번이라도 자신의 이름이 불리지 않고 지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이름이 불리고 시선을 받는 것만으로도, 머리 쓰다듬을 받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자아 존재감’을 느낀다. 일상의 작은 존재감을 느끼게 해주는 그 순간 영철(가명)이가 읽던 책을 내려놓고 말했다.
“선생님 전 바본가 봐요.” 깜짝 놀랐다. 주변의 아이들이 그 말을 듣고 행여 웃거나 놀리지 않을까 염려했지만, 다른 아이들은 읽고 있는 책에 몰두하고 있었다.
“영철이 요즘 힘든 일 있었구나. 잠깐 얘기 좀 할까?” 독서 시간 책을 읽고 있는 아이들을 놔두고, 영철이와 잠시 복도로 나왔다.
“찬찬히 말해볼래? 바보처럼 느껴졌다니….” 찬찬히 말해달라는 요청에, 말없이 주르륵 소리 없는 눈물만 하염없이 흘렸다. 영철이는 심각한 ‘자기효능감 부재’에 시달리고 있었다. 자기효능감은 ‘그래도 나는 그럭저럭 쓸모있는 사람’이라는 자기 인식이다.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라고 느껴질 때 자기효능감은 상실되고, 이는 곧 낮은 자존감의 깊은 원인이 된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자주 이런 말을 한다. “도전해봐! 실패해도 괜찮으니까 일단 도전하는 거야.”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는 어느 정도 자기효능감이 있는 아이들에게 해당된다. 영철이같이 자기효능감이 매우 낮은 아이들에게 ‘도전’이라는 말은 두려움 또는 공포의 대상이 된다. 자신의 쓸모없음을 다시 확인하고, 주변에 알리는 그런 일일 뿐이다.
자기효능감이 생기는 기본 원칙은, 내 의지로 나의 욕구를 ‘조절’하는 경험에서 시작된다. 기저귀가 없으면 안 되던 아이들이 어느 순간 기저귀를 떼게 된다. 내 의지로 나의 배변 욕구를 ‘조절’할 수 있게 되면서 가능해진다. 이런 순간들이 ‘자기효능감’을 높여준다. 보통 아이들이 어떤 것을 만들고 완성했을 때 성취감을 느끼고 효능감이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을 살펴보면, 그 완성을 이루기 위해 자기 욕구를 조절하고 성실하게 노력하고, 기다린 그 ‘조절력’의 순간을 느낄 때 자기효능감이 생긴다. 다음에 비슷한 상황이 왔을 때 스스로를 조절해서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는 인식이 가능해진다.
아이들이 무언가 스스로 ‘조절’하려는 모습을 보일 때, 아주 작고 사소한 일이라도 지지와 격려가 필요하다. 멋진 성공을 이루었을 때가 아니어도 좋다. 자신의 차례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조절력, 스마트폰 게임을 30분 하기로 약속하고 그 약속을 지키는 조절력, 화가 나서 친구를 때리고 싶었지만 참았던 순간의 조절력, 더 놀고 싶었지만 밥 먹으라는 말에 식탁에 와서 자리에 앉는 조절력, 그 순간들이 우리 아이의 자기효능감을 높여주는 시간들이다. 네가 자신을 조절해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 무척 자랑스럽다는 눈길을 주는 것, 우리 아이 자기효능감 생성의 촉매제가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