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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절름발이 정책’ ‘눈 뜬 장님’…무심한 말이 누구에겐 상처

등록 2021-08-16 16:46수정 2021-08-17 02:34

차별 표현은 이제 그만!

일상 속 무심하게 사용하는 차별·혐오 표현에 대해 알아보고 대안 언어를 제시함으로써 각종 미디어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혐오 표현에 일상적으로 노출된 청소년들에게 언어감수성을 높여주는 기획기사를 마련했습니다. 8월17일자 기준으로 4주에 한 번 연재합니다.

“국·영·수 위주의 ‘절름발이 교육’ 문제를 지적하고 싶었어요.”

몇년 전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이라는 주제로 글을 쓴 청소년과 이야기를 나누다 듣게 된 말이다. 그가 쓴 글은 논리가 탄탄했다. 분명 잘 쓴 글이었다. 다만, 그의 말과 글에서 거슬리는 표현이 하나 있었다. ‘절름발이 교육’이라는 말이다. 평소 뉴스를 많이 본다고 했는데 아마도 미디어 채널에서 이 표현을 자주 보아왔던 게 아닐까 싶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절름발이’는 “한쪽 다리가 짧거나 다치거나 하여 걷거나 뛸 때에 몸이 한쪽으로 자꾸 거볍게 기우뚱거리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을 뜻한다. 이 말에 비하의 의미가 담겨 있다는 걸 모르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말에 다른 어휘가 더해지면 우리 감각은 의외로 둔해지는 듯하다. ‘절름발이 정책’ ‘절름발이 국회’ ‘절름발이 행정’…. 많은 이들이 ‘균형·조화를 이루지 못한 상태’ 등을 표현하고자 이 단어를 써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장애인의 날인 2016년 4월2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420 장애인차별철폐 투쟁결의대회’에 참석한 이한열씨가 입에 문 막대기를 이용해 스마트폰 문자를 입력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장애인의 날인 2016년 4월2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420 장애인차별철폐 투쟁결의대회’에 참석한 이한열씨가 입에 문 막대기를 이용해 스마트폰 문자를 입력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장애인에 대한 직접적인 비하 의도가 없는데 문제 되나요?”라는 반응도 나올 수 있다. 그렇다면 불균형·부조화 상태를 말하려 할 때 장애인 비하 표현을 가져온 이유는 뭘까? 이 표현이 ‘장애=불균형·부조화’라는 편견과 고정관념을 고착화한다는 생각은 왜 못 하는 걸까?

우리 속담에는 장애 비하 표현이 많이 등장한다. 뭔가를 보고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킬 때 ‘눈 뜬 장님’이라 한다. 속에 있는 생각을 남에게 말하지 못하는 사람을 두고 ‘꿀 먹은 벙어리'라 표현한다. 이런 속담에 등장한 ‘장님’ ‘벙어리’ 등은 모두 장애인 비하 표현인데다 하나같이 부정적인 상황에 장애를 연관 짓고 있다.

어떤 상황이나 상태를 비유적으로 쉽게 표현하는 데 속담만의 효용이 분명히 있다. 한데 그것이 누군가에 대한 차별과 비하의 의미를 담고 있고, 고정관념을 심화시키거나 재생산한다면 굳이 써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우리도 모르게 장애를 ‘틀림’ ‘비정상’으로 바라보도록 유도하는 표현 또한 많다. “지체장애인도 정상인들 못지않게 일할 수 있다”는 문장은 어떨까? ‘장애인’과 ‘정상인’을 대비시켜 장애인을 ‘비정상인’으로 보는 시선이 깔려 있다. ‘기형아 검사’라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기형’(畸形)은 ‘사물의 구조, 생김새 따위가 정상과는 다른 모양’을 뜻한다. 즉 장애를 ‘정상이 아닌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최근엔 우리가 차별 표현임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써온 표현에 대해 대체어를 발굴해 알리려는 노력도 일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공공영역의 차별 표현 및 대체어 목록>을 통해 장애인에 대비하여 ‘정상인’이 아닌 ‘비장애인’을, ‘기형’의 대체어로 ‘이형’(異形)을 제시하기도 한다.

어떤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는 상황을 두고 ‘결정장애’라는 말을 많이 쓴다. 농담하듯 가볍게 쓰는 이 표현에도 ‘장애인은 부족하고 열등한 존재’라는 시각이 내재해 있다. 물론 장애인을 비하하려고 일부러 이런 표현을 쓰진 않을 것이다. ‘관습적으로 쓰다 보니’ ‘나도 모르게’ ‘남들도 쓰니까’ 차별 표현을 쓰는 이유에 대해 많은 이들이 이렇게 얘기한다.

잘못된 습관을 고치기 위해선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아보려는 노력이 필수다. 일상에서 습관처럼 쓰는 차별과 비하의 표현을 바꿔 쓰려면 일상 언어를 예민하고 낯설게 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김청연 기자 carax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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