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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중립적 수업’이 나쁜 이유

등록 2021-10-04 17:59수정 2021-10-05 02:34

청소년 마당ㅣ나도 쓴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내가 역사 선생님께 언론사의 친일 문제를, 사회 선생님께는 기후위기 문제에 대해 자세히 가르쳐달라고 한 적이 있다. 역사 선생님께선 일부는 가르쳐주셨고, 나머지는 정치적 중립을 이유로 거부하셨다. 사회 선생님께서는 객관적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이유로 거절하셨다.

평소에도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 두 번의 거절을 겪어보니 ‘중립적 수업’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비판적 역사의식과 생태주의적 사고를 갖춘 성숙한 시민을 키워내는 교육을 할 수 없다고 생각돼 이렇게 글로써 말하고 싶었다.

중립적 수업은 현재의 문제를 먼 나라, 남의 이야기로 치부하게 만든다. 고1 통합사회 시간에 기후변화 이야기가 나왔다. 교과서를 보니 이런 식으로 가르쳐서는 내 동료들이 기후위기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할까 봐 걱정됐다. 어떻게 기술돼 있었냐면 2090년이 되면 지구의 온도가 2.8~9도 오른다는 식이었다.

너무나 화가 났다. 유럽에서 탄소 국경세가 등장하고 기후 정의 운동이 벌어지고, 심지어 우리나라에서도 기후위기에 대해 청소년들이 시위했다. 그럼 수업시간에는 지금의 우리는 어떤 위기에 처해 있고 얼마나 시급한 문제이며, 왜 우리는 이에 대해 알아야 하고, 다른 나라들이 왜 탄소 중립 선언을 하는지에 대한 통찰 능력을 키워주고, 기후위기 해결에 동참할 수 있는 직간접적 방법에 대해 가르쳐야 하는데 우리의 수업시간은 유감스럽게도 ‘객관적인 시선’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중립’하에서 그렇지 못하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모르거나 일부만 안다. 이래서는 학생들이 기후위기를 자신의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한다.

중립적 수업은 교사의 입을 가로막아 학생들의 여러 의견을 융합할 수 없는 문제도 있다. 선생님들이 교과서에 나와 있는 그대로 말씀하시는 이유 또한 중립 때문일 거로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교원이 중립을 지키지 않으면 학생들이 그 의견을 비판 없이 수용하지 않을까 걱정한다. 그건 학생들을 잘 모르고 하시는 말이라 생각한다.

학생들은 나름대로 의식이 있는 존재다. 그렇게 쉽게 선생님의 의견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는다. 선생님이 소신껏 의견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학생들이 다양한 의견을 접해보는 것을 방해한다. 이런 문제는 사회시간에 더 심각하게 나타나는데, 학생들이 평소에 정치나 여러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기 쉽지 않다. 그래서 수업시간이 몹시 중요한데 그 시간에 선생님이 사회의 여러 민감한 문제에 관해 언급하지 않거나 개인 의견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다양한 생각을 듣고 비교·검토할 기회를 학생들에게 주지 않는 것이다. 그러한 기회를 얻지 못하면 사회에 나가서는 의견이 비슷하거나 같은 사람끼리만 모이게 되고 그렇게 되면 편향이 강화되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바라건대, 제발 중립적인 교과서 기술과 수업을 중지하고 선생님에게는 중립이라는 재갈을 그만 물렸으면 좋겠다. 이 두 가지를 고치지 않고서는 학생들을 회색분자, 무사유인(無思惟人)으로 만들어버린다. 정말 학생들을 사유하지 않는 사람들로 만들어버리고 싶은 것인가.

진민석 학생 제공
진민석 학생 제공

진민석ㅣ울산 범서고2

※ <한겨레> 교육 섹션 ‘함께하는 교육’에서 청소년 여러분의 글을 기다립니다. 현재 초중고에 다니는 학생이나 학교 밖 청소년이 직접 쓴 글이면 됩니다. 연예인, 취미, 학교, 학원, 친구, 가족 얘기는 물론 자신의 바람이나 시사문제 등 주제에는 제한이 없습니다. 선정된 글은 지면과 온라인 기사로 발행합니다. 매주 금요일 오전 10시까지 이름, 휴대전화 번호와 함께 haniedutext@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원고지 7장, 한글파일로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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