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여수 실습생 고 홍정운군 추모 촛불이 열려 홍군의 친구들과 특성화고 학생 및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현장실습을 떠올리면 상사에게 괴롭힘을 당한 기억밖에 없어요. 쌍욕은 기본이고, 다른 업무 중인데 본인 일을 도와주지 않는다고 공구를 주변에 내려치면서 화를 내기도 하고요. 커터칼을 제 정면에서 신체 가까이로 들이댄 적도 있었어요.”
전북에서 직업계고를 나온 최아무개(19)씨는 지난해 9월 트럭 정비센터에서 고등학생 신분으로 현장실습을 시작했다. 당초 취업을 생각하던 분야라 성인이 되어서도 꾸준히 다니겠다는 의지를 다졌지만, 이는 입사하고 이틀만에 50대 상사 ㄱ씨의 괴롭힘이 시작되면서 좌절됐다. 업무를 지적할 때 “그러니까 네가 그런 학교 나오지”라고 무시하는 발언은 다반사였고, 일하던 중 사고로 손목 인대가 손상되어도 눈치가 보여 깁스를 하고 업무를 이어가는 최씨에게 “너 팔 다친 X신 새끼지”하는 폭언도 서슴지 않았다.
명백한 직장 내 괴롭힘으로 근로기준법 위반이지만, 최씨와 같은 직업계고 현장실습생들은 관련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 2019년 1월 근로기준법이 개정되면서 ‘직장내 괴롭힘 금지’ 조항이 포함됐지만, 현장실습생은 그 보호대상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5일 정의당 정책위원회가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현장실습생들은 직업교육훈련촉진법, 근로기준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산업안전보건법 등을 적용받았지만, 일부 조항엔 제외됐다. 그 중 하나가 근로기준법에 포함된 ‘직장 내 괴롭힘의 금지’와 ‘기능습득자의 보호’ 조항이다. 기능습득자의 보호는 근로기준법 77조로 기능 습득을 목적으로 하는 근로자를 혹사시키거나, 가사 또는 기능 습득과 관계없는 업무에 종사시키지 못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때문에 현장실습생들은 괴롭힘 상황에서도 제대로 문제를 제기하기 힘들다. 견디지 못한 최씨도 학교에 도움을 청해봤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학교에서는 그 분과 친해지는 것도 능력이라고 하고, 다시 도움을 청하니 내년에 다른 후배가 그 회사에 들어갈 수 있으니 후배 생각도 해주라는 답이 돌아왔다”며 “학교가 회사에 괴롭힘 내용을 전달하긴 했는데 회사는 제가 자신감이 없어서 그런 거라는 식이더라”라고 토로했다. 결국 최씨는 결국 원하던 분야의 직장을 그만두고 완전히 다른 분야를 선택해 일하게 됐다. 최씨는 한동안은 사람 만나는 것도 힘들었고 트라우마까지 생겨, 다시 비슷한 직장을 선택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직업계고 학교전담노무사를 경험한 적 있는 노동법률센터 ‘도토리’의 유선경 노무사는 “학교에서 확인을 하고 퇴사 조치를 하면 문제는 해결될 수 있지만, 어쨌든 학생 입장에서는 그 일에 대해 조사나 처벌을 요구하고 싶을 수 있지 않나”라며 “괴롭힘 없이 회사를 다니기 위해 문제되는 사람에 대한 조치를 원할 수도 있는데 근로기준법 적용이 안되면 그게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런 문제는 교육부가 현장실습생들의 인권 보호를 위해 ‘학습중심 현장실습 제도’를 실시하면서 나타났다. 2017년까지 실습생은 학생이자 노동자로 최저임금을 보장받는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이었다. 하지만 현장실습생들의 사망사고가 거듭 발생하자 2018년부터 교육부는 학습중심 현장실습 제도를 도입했고, 실습생 신분을 ‘학생’으로 좁히면서 현장실습생들의 ‘근로자 신분 요소’를 배제했다. 현장실습생들이 근로기준법 일부 조항을 보장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교육계에서는 현장실습생들의 학생 신분은 유지하더라도 노동자로서의 권리는 필요한 만큼, 개선되는 법안들의 준용을 꾸준히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은 이를 보완하기 위해 법안 발의를 준비 중이라고 말하며 “현장실습생들의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근로기준법 준용 확대를 위한 직업교육훈련촉진법 개정안, 내년에 시행될 중대재해처벌법의 준용을 위해 특례 조항 신설 등을 검토 중에 있다”고 밝혔다.
교육부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현장실습생이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아예 새로운 법 조항을 만들거나, 근로기준법을 준용하는 등의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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