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날 차례는 잘 지냈나요?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세배도 드렸나요? 이쁘고 귀한 손주한테 주시는 꼬깃꼬깃한 쌈지돈도 받았나요? 아, 미안해요. 할아버지가 안 계시는군요. 할머니가 하늘나라로 떠난 친구들도 있군요. 그래요. 할아버지, 할머니가 영원히 우리 곁에서 함께 사실 수 있는 건 아니죠.
그렇다고 너무 그렇게 풀 죽지 말아요. 조용히 숨 죽이고 마음 깊은 곳을 향해 귀 기울이면, 거기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니까요. 믿기지 않는다고요? 그럼 <유령이 된 할아버지>를 읽어보세요. 거기 여러분을 닮은 한 친구 이야기가 있어요.
이름은 에스본이죠.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할아버지랑 단짝 친구처럼 지냈대요. 그런데 얼마전 할아버지마저 심장병으로 돌아가셨어요. 너무 슬퍼서 펑펑 울었대요. 하늘나라에 가셨다는 엄마의 말에도 에스본의 기분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어요. 할아버지가 땅 속에서 흙이 될 거라는 아빠의 말도 믿기지 않았어요. 함께 손잡고 놀았던 할아버지가 어느날 갑자기 하늘나라고 가고, 흙이 되다뇨. 그런 거짓말이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 할아버지가 나타났어요. 어느날 밤이었죠. 유령이 돼서 잠자던 에스본을 찾아오신거죠. 무서웠나고요? 천만의 말씀이예요. 너무나 반가와서 같이 놀았죠. 유령놀이 하면서요. 다만 할아버지는 슬퍼 보였어요. 할아버지는 뭔가 매듭짓지 못한 일이 있어 하늘나라로 가지 못하고 유령이 됐다고 하셨어요. 그게 뭘까요? 할아버지는 무슨 일을 끝내지 못하신 걸까요?
에스본은 할아버지와 함께 그 ‘끝내지 못한 일’을 찾아 여행을 떠납니다. 추억 여행이죠. 할아버지의 인생을 같이 살피고 더듬고 느낍니다. 그래도 그 ‘끝내지 못한 일’을 찾기란 정말 힘들었어요.
그러던 어느날 밤, 할아버지가 에스본 방을 찾아와 빙긋이 웃었어요. ‘끝내지 못한 일’을 찾아낸 거죠. 그게 뭐였을까요? 바로 할아버지와 에스본이 서로 작별 인사를 나누는 일이었답니다. 둘은 서로 손을 꼭 잡고 함께 보낸 아름다운 시간을 추억했어요. 바닷가에서 함께 모래성을 쌓은 일, 할머니 요리솜씨에 함께 투덜거렸던 일, 함께 낚시가서 허탕친 일….
할아버지는 그렇게 아름다운 추억들을 다시 한번 꼭꼭 에스본의 마음에 심어주셨어요. 그리고 가끔씩 서로를 생각하자고 약속했지요. 잠깐, 아주 잠깐, 눈물을 흘렸지만, 이제 에스본은 예전처럼 그렇게 슬프진 않았어요. 추억들이 있고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까지 얻었잖아요.
지금 눈 감고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들의 마음 속에도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한 시간이 깃들어 있어요. 그 속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는 항상 계신답니다. 그리고 아주 가끔씩은 이쁘고 귀한 손주 머리맡에 찾아오셔서 꿈 속에서 함께 놀아주신답니다. 저학년, 킴 푸브 오케손 글, 에바 에릭손 그림, 김영선 옮김. 소년한길/9000원.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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