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이주는나무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많은 방법이 있지만, ‘책 읽어주기’는 특별히 권하고 싶다. 함께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 특정 체험을 공유한 친밀감을 갖듯 ‘책 읽어주고 듣기’는 정신적 여행을 함께 한 이들을 마음으로 이어준다.
매 학기 아동문학 시간에, 나는 가능한 좋은 작품을 골라 학생들과 감상한다. 그림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동화를 소리 내어 읽게도 한다. 저마다 감수성과 표현력은 다르지만, ‘빙그레’든 ‘하하하’든 우스운 장면에서는 어김없이 다함께 웃고 슬픈 장면에서 슬픔의 정서를 나눈다. 가끔은 특별한 일이 생기기도 하는데, 한번은 어떤 학생이 너무 많이 우는 바람에 수업을 서둘러 마무리한 적도 있었다. 곧 세상을 하직할 할머니가 손녀에게 삶을 차분히 정리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세상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느끼게 하고 죽음을 긍정적으로 맞이한다는 내용의 이야기였다. 아마 무슨 사연이 있었던 것이겠지만, 그림책에 오롯이 집중하는 가운데 자신의 진실한 감정과 대면한 그 자체가 소중한 일이다.
개인적으로도 두 아이를 키우며 꾸준히 책을 읽어주었는데, 시간이 흐른 뒤 그 의미를 새롭게 알게 되었다. 두 아이 모두 남다른 재주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 귀가 아닌 마음으로 ‘듣기’를 할 줄 알고 타인의 심정에 ‘공감’할 줄 아는 심성을 가져,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이 가장 고맙고 안심이 된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타인의 이야기에 순수하게 귀 기울이고 감정을 몰입한 경험이 정서지수를 높여준 것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아이들이 청소년기에 접어든 뒤에도, 뭔가 마음에 힘겨움이 있어 보이면 보편적 진실을 말하는 동화책을 골라 잠자리에서 읽어주곤 하였다. 그런 과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겠는데, 대입 수험준비로 힘들어하는 아들에게 자주 마사지를 해준 것과 함께, 이따금 따뜻한 동화를 읽어준 것은 나만의 엄마 노릇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이런저런 모임이나 강좌에서 책을 읽어주는 경험을 통해, 연령이나 지역에 관계없이 책읽기가 사람과 사람을 어떻게 이어주는가를 충분히 확인하였다. 사람들이 얼마나 진실한 이야기에 목말라 하며, 사람 사이에 순수한 교감이 얼마나 필요한지도.
부모와 자녀, 교사와 학생, 이웃과 이웃 사이에, 책 읽어주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물이 저절로 메마른 곳으로 스며들 듯, 출렁이는 정서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라진 틈을 메우고 냇물처럼 흘렀으면 좋겠다.
선안나/동화 작가 sun@iicl.or.kr
선안나/동화 작가 sun@iicl.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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