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교육

스승의 날 받은 '하얀 봉투' 정체는?

등록 2006-05-21 16:53수정 2006-05-22 15:26

전성호/서울 휘문고 교사
전성호/서울 휘문고 교사
선생님이 말하는 교실 안팎
선생님이 말하는 교실 안팎

교실에 모인 아이들이 ‘스승의 은혜’ 노래 억지로, 그것도 대충 불러놓은 뒤 나더러 한 곡조 뽑으란다, 내 원 참. 그리고 말이나 말지. 꽃과 선물은 뭐 여자에게만 주는 거라나 뭐라나. 그래도 교탁 위에 몇 가지 선물이 놓여 있긴 했다. 앞에 앉은 아이가 빼꼼히 쳐다보며 제안을 한다.

“선생님, 선물은 준 사람 앞에서 뜯어보는 거래요.” 맞아! 선물은 그 내용보다 뜯어보는 재미가 더 큰 법. 우선 손에 가까운 것부터 개봉해 본다.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선생님 은혜에 감사 드립니다.’ 조그만 카드를 품고 있는 넥타이. 수박 두 통은 능히 감쌀 수 있는 대형 컵 사이즈의 브래지어. 정력 팬티를 보낸 놈은 아예 벌떡 일어나 아이들을 향해 두 손까지 흔든다. 그리고 노총각 냄새 지워버리라는 주문 섞인 향수. 그리고, 심상치 않은 선물 하나. “?”

두 손으로 언뜻 들어보니 무게가 나가진 않는데, 겉에 적힌 ‘xx로부터’의 ‘xx’란 글자가 눈에 확 들어온다. 내가 아는 한 ‘xx’는 나에게 선물을 할 아이가 아니다. 그렇다고 다른 아이들 선물은 다 개봉해 놓은 상황에서 xx 것만 내버려둘 수도 없는 일. 선물을 번쩍 들어서 이름을 부르니 반 전체가 “오, 예!”하며 탄성이다. 그런데 xx가 불쑥 일어나, “선생님, 제가 드린 건 댁에 가서 풀어 보시죠.” 하는 게 아닌가? 무엇을 넣었길래 나중에 보라는 거지? 혹시 뱀이나 똥 같은 건가? 아니, 그런 선물이라야 xx에게 더 어울리는 거 아닌가. 그러나 xx의 표정을 보니 그런 엽기적인 건 아닌 것 같다. 은근히 호기심이 발동한 건 나뿐만은 아닌지 애들이 빨리 풀어보라며 성화다. 어쩔 수 없이 박스의 포장을 조심스레 뜯는데 손이 다 떨려온다. 눈을 지그시 뜨고 박스 안을 살짝 들여다보니, 흐유. 안에 박스가 또 있다. 속으론 가슴을 쓸어 내렸지만, 겉으론 “오잉?” 놀란 척, 안에 들어있는 박스를 ‘불쑥’ 들어올린다. 교실 안은 금새 실망하는 분위기. 다시 포장을 벗긴 다음 박스 안을 또 들여다본다. 근데, 가만. 이게 뭐지? 하얀 봉투가 담겨 있는 게 아닌가? 그것도 ‘xx의 母 드림’이라 적힌. 하얀 봉투는 교사들에겐 아킬레스건이다. “자식놈 때문에 번번이 심려를 끼쳐…”하며 어쩔 줄 몰라 하시던 xx의 어머니가 바로 옆에 서 계신 듯한 기분이다. 아, 이를 어쩌나. xx 쪽을 바라보니 놈은 내 눈을 피해 아예 외면하고 있다. 어이쿠 이놈아, 그래 ‘스승의 날’에까지 스승을 이렇게 난처하게 만들면 어떻게 해!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들은 혹시 또 내가 ‘오잉?쇼’를 연출하나 해서, “개봉! 개봉!”하며 책상까지 두드린다.

“얘들아, 이것만은 공개하면 안 될 것 같다. xx에게도 프라이버시란 것이 있잖아. 안 그래?” “우, 우” 아이들이 난리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놈이 ‘피식’ 웃고 있는 게 아닌가? 아차! 박스 안의 봉투를 허공 중에 ‘불쑥’ 쳐들자 갑자기 반 전체가 조용해진다. “아니? 웬 봉투?” 아무렇지도 않은 듯 봉투 입구를 연다. 그리고, 지폐 한 장을 처억 꺼내든다. ‘1억원’짜리 위조 지폐다.

전성호/서울 휘문고 교사 ohyeahh@hanmail.net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