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호/서울 휘문고 교사
선생님이 말하는 교실 안팎
선생님이 말하는 교실 안팎
교실에 모인 아이들이 ‘스승의 은혜’ 노래 억지로, 그것도 대충 불러놓은 뒤 나더러 한 곡조 뽑으란다, 내 원 참. 그리고 말이나 말지. 꽃과 선물은 뭐 여자에게만 주는 거라나 뭐라나. 그래도 교탁 위에 몇 가지 선물이 놓여 있긴 했다. 앞에 앉은 아이가 빼꼼히 쳐다보며 제안을 한다.
“선생님, 선물은 준 사람 앞에서 뜯어보는 거래요.” 맞아! 선물은 그 내용보다 뜯어보는 재미가 더 큰 법. 우선 손에 가까운 것부터 개봉해 본다.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선생님 은혜에 감사 드립니다.’ 조그만 카드를 품고 있는 넥타이. 수박 두 통은 능히 감쌀 수 있는 대형 컵 사이즈의 브래지어. 정력 팬티를 보낸 놈은 아예 벌떡 일어나 아이들을 향해 두 손까지 흔든다. 그리고 노총각 냄새 지워버리라는 주문 섞인 향수. 그리고, 심상치 않은 선물 하나. “?”
두 손으로 언뜻 들어보니 무게가 나가진 않는데, 겉에 적힌 ‘xx로부터’의 ‘xx’란 글자가 눈에 확 들어온다. 내가 아는 한 ‘xx’는 나에게 선물을 할 아이가 아니다. 그렇다고 다른 아이들 선물은 다 개봉해 놓은 상황에서 xx 것만 내버려둘 수도 없는 일. 선물을 번쩍 들어서 이름을 부르니 반 전체가 “오, 예!”하며 탄성이다. 그런데 xx가 불쑥 일어나, “선생님, 제가 드린 건 댁에 가서 풀어 보시죠.” 하는 게 아닌가? 무엇을 넣었길래 나중에 보라는 거지? 혹시 뱀이나 똥 같은 건가? 아니, 그런 선물이라야 xx에게 더 어울리는 거 아닌가. 그러나 xx의 표정을 보니 그런 엽기적인 건 아닌 것 같다. 은근히 호기심이 발동한 건 나뿐만은 아닌지 애들이 빨리 풀어보라며 성화다. 어쩔 수 없이 박스의 포장을 조심스레 뜯는데 손이 다 떨려온다. 눈을 지그시 뜨고 박스 안을 살짝 들여다보니, 흐유. 안에 박스가 또 있다. 속으론 가슴을 쓸어 내렸지만, 겉으론 “오잉?” 놀란 척, 안에 들어있는 박스를 ‘불쑥’ 들어올린다. 교실 안은 금새 실망하는 분위기. 다시 포장을 벗긴 다음 박스 안을 또 들여다본다. 근데, 가만. 이게 뭐지? 하얀 봉투가 담겨 있는 게 아닌가? 그것도 ‘xx의 母 드림’이라 적힌. 하얀 봉투는 교사들에겐 아킬레스건이다. “자식놈 때문에 번번이 심려를 끼쳐…”하며 어쩔 줄 몰라 하시던 xx의 어머니가 바로 옆에 서 계신 듯한 기분이다. 아, 이를 어쩌나. xx 쪽을 바라보니 놈은 내 눈을 피해 아예 외면하고 있다. 어이쿠 이놈아, 그래 ‘스승의 날’에까지 스승을 이렇게 난처하게 만들면 어떻게 해!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들은 혹시 또 내가 ‘오잉?쇼’를 연출하나 해서, “개봉! 개봉!”하며 책상까지 두드린다.
“얘들아, 이것만은 공개하면 안 될 것 같다. xx에게도 프라이버시란 것이 있잖아. 안 그래?” “우, 우” 아이들이 난리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놈이 ‘피식’ 웃고 있는 게 아닌가? 아차! 박스 안의 봉투를 허공 중에 ‘불쑥’ 쳐들자 갑자기 반 전체가 조용해진다. “아니? 웬 봉투?” 아무렇지도 않은 듯 봉투 입구를 연다. 그리고, 지폐 한 장을 처억 꺼내든다. ‘1억원’짜리 위조 지폐다.
전성호/서울 휘문고 교사 ohyeah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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