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성 교사의 실전강좌
4. 논술 쓰고 첨삭하기
생각의 흐름을 바로잡는 것이 핵심이다
학생글
[서론] 자아 정체성을 찾으려는 인간의 노력은 ⓐ계속 돼왔다. 나는 누구이며, 나를 타인과 어떻게 구별해야 할까? 이 물음에 대하여 제시문 (가)에서는 두 가지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하나는 우리의 ‘기억력’이다. 만약, 어떠한 일을 한 것이 기억난다면, 그 일을 한 사람은 바로 ⓑ그 자신인 것이다. 또 하나는 ‘육체적 연속성’이다. 만약, 그와 유사한 육체적 특징이 지속되거나 상당히 연관을 맺고 있다면, 그 또한 ⓑ그 자신인 것이다. 전자와 후자의 두 기준을 한마디로 구분한다면, 전자는 정신적인 감각에 의존한 것이요, 후자는 육체적인 감각에 의존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인간의 자아 정체성을 어떻게 찾아야 할까?
[본론1] ①제시문 (나)와 제시문 (다)에서는 인간과 동물을 구분함에 있어 서로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먼저, 제시문 (나)에서는 인간이 ‘의식’과 ‘윤리’를 가졌기 때문에 동물과 구별된다고 하였다. 이것은 인간이 도덕성·절제·자기 반성과 같은 보다 높은 차원의 정신적인 활동을 하여 동물보다 윗 단계에 있음을 시사한다. 즉, 인간은 동물이 따라올 수 없는 고차원적인 정신 영역을 구축함으로써 다른 동물과 구별된다는 것이다.
[본론2] 그러나 제시문 (다)는 이와 다른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것은 인간의 ‘비정상성’이라고 말하고 있다. 자살·자해·자위·비만·동성애와 같은 비정상적인 행동들이 인간을 동물과 구분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제시문 (나)와 비교해 보았을 때, 매우 부정적이다. 도덕성 ⓒ자기 제어같은 능력이 인간의 고차원적인 정신에서 나왔다면, 제시문 (다)에서의 비정상성은 동물원 우리와 같은 ‘환경’에서 나왔다. ②즉, 콘크리트 우리라는 환경이 ‘비정상적으로’ 만들어, 인간을 다른 동물들과 구별짓게 했다는 것이다.
[본론3]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하는 차이점에는 긍정적인 것이 있을 수도 있고, 부정적인 것이 있을 수도 있다. 앞서 말한 고차원적인 정신과 비정상성, 모두 중요한 차이점이 ⓑ되는 것이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 특징들은 모두 인간의 정체성을 찾는 데에 귀중한 잣대가 될 것이다. 인간의 긍정적인 면은 더욱 발전시키고, 부정적인 면은 개선한다면, 인간은 보다 고등 동물로 구분되어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 그런데 요즘, 인간의 정체성이 일정한 방향으로 조작되려 하고 있다. 바로,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유전자의 조작 때문이다. 유전자 조작을 통하여 한 인간의 생김새와 키, 몸무게 등 육체적인 정체성을 조작하고, 지능과 성격 등 인간의 정신적인 정체성까지 조작하려 한다. 그러나 모든 인간의 정체성이 획일화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할까? 그렇게 되면 개개인인 ‘나’의 정체성을 찾는 것이 어려워지게 된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특징과 개성을 갖기에, 가치 있는 ⓑ존재인 것이다. 한 방향으로 유도되는 인위적인 조작이 아닌, 개개인의 깊은 성찰에 의한 자아 정체성의 확립만이 우리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 줄 것이다.
[첨삭 지도] 제대로 대답하고 있는가
(1) 단어와 문장 바로잡기
ⓐ ‘-하다’가 붙을 수 없는 명사에 ‘-되다’가 오면 동사이므로 띄어 쓰지. 예컨대, ‘문제하다’는 말이 안 되므로 ‘문제 되다’로 띄어 써야 해. 이와는 달리, ‘-하다’가 붙을 수 있는 명사에 ‘-되다’가 오면 접미사로 다루어 붙여 쓰지. 예컨대, ‘걱정’은 ‘-하다’가 붙어 ‘걱정하다’로 쓸 수 있으므로 ‘걱정되다’로 붙여 써. 따라서 ‘계속 돼왔다’는 ‘계속돼 왔다’로 써야 해.
ⓑ ‘것이다’를 사용하면 강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어. 하지만 ‘것이다’가 별 의미 없이 길게 늘어놓아 문장을 거추장스럽게 하는 무의미어로 사용되는 경우가 더 많아. 따라서 이 예문은 ‘나 자신이다’, ‘된다’, ‘존재이다’로 고쳐야 해.
① 제시문 (나)와 (다)는 인간과 동물을 서로 다른 시각에서 구별하고 있다.
ⓒ ‘같이’는 체언 뒤에 붙어서 ‘처럼’과 바꾸어 쓸 수 있는 때에는 조사이므로 붙여 쓰지(그는 황소같이 일하고 있다.). 이와는 달리 ‘같은’은 ‘동일하다’라는 뜻을 나타내는 형용사 ‘같다’의 활용형이므로 띄어 써야 해(그는 황소 같은 사람이다.). 따라서 ‘자기 제어 같은’으로 띄어 써야지.
② 즉, 콘크리트 우리라는 환경은 인간을 ‘비정상적으로’ 만들어,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짓게 하였다.
(2) 글의 흐름 바로잡기
서론의 흐름 : 이 글의 서론은 제시문 (가)의 내용을 정리하여 도입부로 삼으라는 발문의 지시에 잘 따르고 있어. 기억을 정신적 연속성으로 간주하여 육체적인 연속성과 대비하여 논의를 펼치고 있는데, 무난한 분석이야. 아울러 이 글에서 다룰 논제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지.
본론의 흐름 : 제시문 (나)와 (다)는 인간에 대해 다른 관점을 보여 주고 있어. (나)는 “인간은 스스로 가치를 추구하고 정신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라는 점에서 동물과는 다르다는 것이고, (다)는 인간은 환경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동물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지. 그런데 이 글에서는 제시문 (다)를 잘못 분석하고 있어. 인간은 동물과 차이가 있는데, 그 차이점에는 긍정적인 것도 있고 부정적인 것도 있다고 분석하고 있지. 이 글의 치명적인 오류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돼. 이렇게 한번 잘못된 분석은, 인간에게 긍정적인 면은 발전시키고 부정적인 면은 개선한다면 인간은 자기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을 것이라는 논의로 흘러가고 있어. 논점 일탈이라는 안타까운 잘못이 논술 전체를 흔들어 놓고 있지.
결론의 흐름 : 결론에서는 인간 복제에 대해 부정적인 판단을 내리면서, 인간은 정신적인 존재이므로 개개인의 깊은 성찰을 통해 자아를 확립할 수 있다고 마무리하고 있어. 이는 본론의 논의를 이어받아 내용을 전개하는 것이 아니고, 본론과 무관하게 전혀 새로운 내용을 결론에서 전개하여, 마치 글 한 편이 시작되는 느낌이 들지. 한번 잘못된 제시문 분석은 이렇게 모든 것을 흐트러지게 하고 말았어.
(3) 총평
예전의 논술 고사와는 달리 최근의 논술 고사는 텍스트 논술로의 전환이 확실히 이루어졌어. 예전의 논술에서 제시문은 대부분 논제를 부연 설명하기 위한 보조 역할에 머물러서 상대적으로 제시문의 중요성이 부각되지 않았지. 그런데 텍스트 논술로 전환되면서 제시문 분석은 논술의 처음이자 끝이라고 할 만큼 중요해져서, 제시문의 의미를 제대로 찾아내지 못하면 자신의 견해를 전개시켜 나갈 수조차 없게 되었어. 이 글은 제시문 분석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가르쳐 주고 있지. 전체적으로 보면 (상, 중상, 중, 중하, 하)야. 여수여고 교사, <교과서와 함께 구술·논술 뛰어넘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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