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생각, 아이마음
15세기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만들었을 때, 적지 않은 유럽의 지식인들이 지식의 대량생산과 유통이 가져올 혼란을 걱정했다고 한다. 벨과 그레이 등이 전화를 발명했을 때도 투자를 하려는 회사는 많지 않았다고 한다. 사람들이 전화를 사용하기 보다는 직접 만나 이야기하고 싶어할 것이라 믿었고, 전화는 진실된 커뮤니케이션과 거리가 멀다고도 생각했다. 테크놀로지의 발전으로 새로운 의사소통법이 생겨날 때마다, 이에 대한 회의는 항상 따르기 마련이다.
요즘 청소년들의 인터넷 메신저나 휴대전화 메시지 이용에 대한 기성세대의 눈총도 아마 그같은 기성세대의 저항과 맥이 통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장소와 시간에 상관없이 끊임없이 메시지를 주고 받는 자녀들에 대해 왠지 화가 난다는 부모들이 많다. 어떻게 책에 집중할 수 있느냐, 같이 있는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라며 자녀와 다투기도 한다. 부모와 단 몇 분의 대화는 거부하면서 하루에 수십통씩 메시지를 주고 받는 자녀들에게 소외감을 느끼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 하다.
청소년들 입장에서는 학원 등으로 바쁜 짬짬이 친구들과 메시지를 하면서 답답한 마음을 그나마 해소하고 있는데, 그마저 간섭하려는 부모들이 원망스럽다. 무조건 책상 앞에 장시간 앉아 있어야 하니, 음악을 듣거나 메시지를 주고 받아 스트레스를 풀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미쳐버릴 것만 같다. 한 편으로는, 다른 사람과 타협하고 나누는 법을 배우지 못한 요즘 아이들로서는 짧게 소통하고 끊는 메시지가 훨씬 뱃속 편안하기도 하다. 실제 얼굴을 보는 대화 보다 덜 솔직하고 진지할 수 있기 때문에 끈적끈적한 관계가 주는 부담도 덜하다. 마음에 안 들면 유행가 가사처럼 ‘삭제’ 해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을 부모와 교사, 그리고 교육 시스템에게 유린당하며 사는 청소년들이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쿨’한 것은 자아와 그 경계를 타인으로부터 지키고 싶어하는 일종의 자연스런 ‘보상방식’일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자녀와 대화를 잘 하는 부모들일 수록 자녀들이 다른 친구들과 메시지를 나누거나 오랜 시간 전화하는 것에 대해 관대하고, 그 반대의 부모들이 일종의 소외감이나 질투로 자녀들의 다양한 의사소통 방식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특히 부모에게 심각하게 반항을 한다든지, 통제할 수 없는 정도의 일탈행동을 보이는 경우, 자녀들에게 오는 메시지까지도 일일이 확인하는 강박적이고 편집증적인 부모도 있다.
굳이 막으려고만 하지 말고, 자녀들의 메신저 주소로 차마 쑥스러워 하지 못했던 ‘사랑한다, 미안하다’라는 말도 보내고, 핸드폰에 따뜻하고 유머스런 메시지를 남겨 보자. 공부로 지치고, 어른들의 지나친 간섭으로 꽁꽁 얼어붙은 아이들 마음을 위로해 주는 한 가지 방법이다. 이메일이나 편지가 일방적인 독백(Unilateral communication)이라면 메시지나 메신저는 실시간으로 양방향 대화가 가능한 열린 양방대화방식(Bilateral communication)이라는 장점도 있다. 특히 조기 유학 등으로 자녀와 멀리 떨어져 있거나 너무 바빠 자녀들 옆에 오랜 시간 없는 경우, 인터넷 메신저나 휴대전화 메시지를 이용해서 자녀와 새로운 대화의 물꼬를 트는 것도 좋겠다. 단, 시도 때도 없는 메시지의 남발이나 훈계조라면 역작용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 것.
이나미/신경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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