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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엄마표 도시락’ 반찬은 사랑이란다

등록 2006-07-09 21:12수정 2006-07-10 13:48

이나미의 어른 생각,아이 마음

연이은 급식사고로 시끄럽긴 하나, 한국의 학교 급식 수준은 실상 그리 낮은 건 아니다. 미국 공립학교에서 아이들을 키울 때, 비교적 좋은 학군의 급식 메뉴란 것이 야채 없는 햄버거, 달랑 소시지 하나 들어 있는 핫도그, 피자, 치킨 너겟 같은 것이라 경악을 금치 못했던 적이 있다. 물어 보니, 야채나 국물 이 있으면 관리하기가 힘들고 금방 상하기 때문이란다. 미국인들이 비만이 된 것은 부실한 학교 급식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패스트 푸드 메뉴가 싫다는 아이들 도시락 싸주고 아침밥까지 챙기느라 미국에서는 하루를 전쟁처럼 시작하곤 했다. 한 편으로는 특별히 낙이 없는 외국 생활에서 저녁밥 메뉴가 뭔지 항상 궁금해 하며,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가는 요리사라고 ‘착각하는’ 애들에게 음식해 먹이는 재미로 힘든 오년을 버텼던 것도 같다. 도시락이 맛있어 아이들에게 인기였다고 하면 뭔가 으쓱한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일하고 공부하는 동시에 아이들 먹을 거리까지 챙기는 것은 실은 참 힘들었다. 달콤한 외국 생활의 휴식을 즐기면서, 우아하게 남이 해 주는 밥을 먹을 수 있는 주위 사람들을 부러워 한 적이 더 많았으니까. 지금도 누군가 밥상을 차려 줘서 왕비처럼 앉아 먹을 수만 있다면 국 한가지라도 맛있게 먹을 것 같다.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하고 싶은 어머니들 몇 명이 주로 급식 당번을 했다. 학교에 대한 자원봉사와 제 아이의 특별 대접을 연결시키지 않는 문화 탓인지 급식당번과 관련된 어떤 잡음도 들은 적이 없다. 급식 당번을 하면 자신의 아이가 학교에서 아이들과 어떻게 지내는지, 또 학교의 크고 작은 행사들에 대해 잘 파악할 수가 있어 도움이 되는 정도일 뿐이었다. 한국에서도 학부모들이 급식 심부름을 하고 있는데, 특히 일하는 엄마들은 갈등이 심하다고 한다. 나도 미국 가기 전까지 급식 당번에는 될 수 있는 대로 참가를 하려고 아예 병원 문을 닫고 꽤 거리가 먼 아이들 학교까지 가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일하는 어머니들은 안 오셔도 된다고 선생님들이 말씀해 주시긴 했지만, 다른 어머니들 눈치도 보이고 관심 없는 학부모 노릇이 싫어 웬만하면 참가 했다. 엄마가 당번으로 온 날, 아이들은 쑥스러워 하면서도 아주 싫지 않은 표정이어서 아이들 보는 보람도 있었던 것 같다.

급식이 시작되면서부터 아침을 잘 먹지 않는 아이들을 둔 부모 들 중에는 아이들이 학교에 갈 때까지 일어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챙겨줄 일이 없으니까. 소풍 날 도시락을 시켜서 먹는 아이들도 늘고 있다 하고, 학원에 늦게까지 있다 오니 아예 저녁까지 사먹고 온다는 아이들이 많다. 엄마의 입장에서는 아이들 밥으로부터 해방된 셈이니 편한 것이긴 한데, 어머니의 정성이 들어 있는 맛있는 밥상을 받으며 자란 나로서는 음식 말고 아이와 어머니가 끈끈하게 연결될 수 있는 게 과연 무엇일까 의문이 든다. 우리의 어머니, 할머니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구수한 냄새와 맛난 음식들 대신 요즘 아이들은 어머니 하면 무엇이 연상될까? 학원 스케줄 메니저? 학원이나 학교까지 데려다 주는 운전기사? 옷과 가전제품을 사주는 전문 구매자(Professional shopper)?

이나미/신경정신과 전문의
이나미/신경정신과 전문의
사회가 복잡해지고 교육 경쟁이 심하니, ‘음식자모’는 이미 구시대적인 모성상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다른 모든 것은 무시하고 음식에만 목숨 거는 어머니만 아니라면, 음식 만들고 먹고 치우는 과정이 모두 좋은 교육재료가 아닐까 싶다. 정성껏 저녁을 차려 마음 편하게 먹게 하는 어머니 밑에 자란 아이들이 비뚤어지는 것을 본 적이 없으니까. 기왕에 급식 사고가 났으니, 도시락 싸는 것이 힘들다고만 할 게 아니라, 모처럼 부모 자식간의 대화의 계기로 만드는 것도 방법일 것 같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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