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고교 비평준화지역의 비애, '안산'에 가다
사상초유 의정부고입 대량탈락, 학급당 학생수 50명 과밀학급, 고교서열화…
이것들의 공통분모는 ‘고교비평준화’이다. 서울을 비롯한 대부분 지역에서 평준화가 이뤄졌지만 의정부, 광명, 안산 등 소수 경기도 지역에서는 여전히 비평준화제도로 인해 학생들이 시름하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은 2002년 평준화된 경기도 7개시(안양, 군포, 의왕, 과천, 고양, 부천, 성남 분당)평준화 연구용역 결과가 나오면 고교 평준화 정책에 대한 검토하겠다고 약속했지만, 2006년 현재까지 제도 개선을 위한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비평준화 지역 안산을 찾아 학교현장 교사와 학생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보았다. 안산지역 중학생들은 상위 고교에 진학하기 위해 1학년 때부터 사교육시장에 내몰리고, 내신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비평준화지역의 경우 고교 입학 시 전과목 내신점수와 선발고사(100점)점수를 합산·반영한다. 이중 내신점수(200점)는 교과활동(1학년 20%/2학년 30%/3학년 50%) 150점, 봉사활동(10%) 20점, 출결상황(10%) 20점, 수상실적(5%) 10점을 더해 산출한다.
경기고 안산에 위치한 상록중학교에서는 학급당 학생수가 50여명이 넘어 교육환경이 열악했다.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너희는 뺑뺑이? 우리는 아직도 연합고사 세대
안산, 비평준화에 따른 ‘고교 줄세우기’
외고입시를 준비하고 있는 고혜원(중3)양은 여름방학을 이용해 고교수학 선행학습과 토플수업을 수강할 계획이다. “영어를 좋아해서 명지외고에 지원할 생각이에요. 학교 내신이외에도 창의력수학, 영어듣기 등 준비할게 이만저만 아녜요” 고 양은 외고입시를 준비하더라도 내신관리도 꾸준히 해야 하고 연합고사고 치러야 하기 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안산에서 명문고로 꼽히는 동산고에 지원하려는 김혜선(중3)양은 중학교에 올라오면서부터 보습학원에 꾸준히 다니고 있다. 혜선 양은 오후 4시 정도에 학교수업을 마치면 곧바로 학원으로 가 오후 5시 30분부터 밤 10시 30분까지 고교영어, 수학 등 입시공부를 한다.
상록중 최영일 교사는 평준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아했다.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주위 친구들 보면 하향지원하는 추세지만, 당장은 조금 힘들더라도 좋은 학교에 가서 좋은 분위기 속에서 공부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하지만 가끔 평준화지역에 사는 친구들을 보면 억울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 “다른 지역 친구들이 고교공부하고 있을 때, 우리는 내신·수행평가를 더 신경 써야 하는 게 불공평해요”
“부모가 맞벌이해도 학원을 꼭 보내야 하는 것이 안산의 현실이다. 동산고에 지원하려면 내신 200점 만점에 194점 이상 나와야 지원가능 한데, 상대적으로 잘사는 지역 학부모들은 동산고를 선망한다. 때문에 중학교 때 1등 하던 아이가 동산고에 가서 ‘꼴찌’하더라도 무조건 보낸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실제 한대앞 전철역 근처에 가면 대형입시학원들이 즐비해 있다.
안산 중등전문 학원 관계자에 따르면 벌써 고입을 위한 선행반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중3학생을 대상으로 한 여름방학 특강인 이 수업은 학생의 성적수준에 따라 5개 반으로 나뉘어 운영된다. 학원비는 한 달에 36만 원정도로, 오후 6시 30분부터 밤 12시 20분까지 8교시 코스로 진행된다. 하지만 여기도 마음대로 들어갈 수 없다. 적어도 내신이 185점이상인 학생만 접수가능토록 돼 있다.
중학교때 부터 인생이 결정된다? 공부못하면 ‘하류인생’
한편 비평준화가 가져다주는 가장 큰 폐해는 ‘고교입시’가 아이들의 인생을 너무 일찍부터 결정해 버린다는 것.
최영일 교사는 많은 아이들이 중학교 때부터 자기인생이 결정돼 있다고 생각해 참 안타깝다고 말했다. 성적이 낮은 학생일수록 자기 삶을 ‘하류인생’이라고 단정지어버리기 때문이다. 최 교사는 “평준화지역에서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이 서로 어울리며 배우지만, 비평준화지역에서는 친구를 경쟁상대로만 여기지 같이 이끌고 가야하는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안산 한양대 근처에는 중고교 입시를 위한 대형 학원들이 몰려있었다.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한 예로 중·고생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교복이 안산지역에서는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 교복을 보면 어느 학교 학생인지 알 수 있기 때문에 학생들의 성적수준을 판가름 할 수 있다. 심지어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동산고’ 교복을 입은 학생을 바라보는 반응이 두 가지로 나뉜다. ‘좋은학교 다녀서 부럽다’라는 것과 ‘내 아이 떨어뜨린 학교, 밉다’라는 것.
반월상업고교 진학을 고려하고 있는 박태성(중3)군은 성적 때문에 가고 싶은 학교를 못가는 비평준화현실을 비판했다. “다른 지역은 성적이 좀 낮아도 ‘뺑뺑이’로 집주변 인문계 학교에 가는데, 우리는 실업계 학교도 서열이 너무 심해서 싫어요”
허주영(중2)양 또한 실업계고교에 진학하기로 마음먹었다. 인문계학교에 가서 스트레스 받으며 공부하는 것 보다 좋은 실업계 학교에 가서 대학진학 하겠다는 것. 주영 양은 현재 안산여정보고 산업디자인과를 염두에 두고 있다.
한 학급당 50명 빽빽한 콩나물 교실
찌는 여름 무더위, 선풍기 5대가 고작
교실문마다 타반학생 출입금지
상록중학교 급식시간, 복도에 나온 학생들이 벽을 따라 촘촘히 섰는데도 통행이 불편하다.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반면 비평준화로 야기되는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열악한 교육환경이다.
안산지역의 경우 대부분의 중학교가 학급당 50~60여명, 학년 당 20개에 가까운 학급으로 구성돼 있다. 몇몇 학교의 실태를 살펴보면, 상록·시곡·성안·부곡중학교는 학급별 학생수가 50명 이상이었다. 남녀 학급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는 본오중학교는 남학급의 경우 인원이 57명정도 된다.
이중 상록중학교는 3학년만 18학급이나 되지만, 층별 화장실이 하나밖에 없었고 음악실, 미술실은 아예 찾아볼 수 없었다. 또한 운동장 규모가 큰 편인데도 불구하고 1시간에 7~8개 학급이 몰려, 축구경기 한번 할 수 없는 실정이다.
학생수가 너무 많아 담임교사가 다 통솔할 수 없기 때문에 ‘타반학생 출입금지‘라는 푯말을 붙여놓았다고 한다.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현장 교사들은 이 같은 과밀학급에서는 인성교육과 1:1상담을 논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특히 여름이면 에어컨 하나 변변히 틀 수 없어 천정형 선풍기 4~5대로 여름을 나야 하고, 급식을 먹을 때는 복도에 늘어선 아이들로 통행이 불편하다. 또한 특이한 풍경중 하나는 각 교실 문에 붙어있는 ‘타반학생 출입금지’문구. 주로 고3 교실에서나 볼 수 있는 이 문구는 면학분위기 조성과 함께 안전사고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서이다.
최영일 교사는 ‘안산에 명문고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식의 경기도 교육관료의 엘리트 주의로 인해 비평준화 체제가 계속 유지되고 있다며, 학생들의 보다 나은 환경에서 교육받을 수 있도록 평준화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지훈 기자
news-1318virus@hanmail.net ⓒ2006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즐겨찾기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