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집지역 제한 후퇴에
정상화 의지마저 의심
되레 경쟁률 높아져
정상화 의지마저 의심
되레 경쟁률 높아져
김병준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내정자가 외국어고 학생 모집지역 제한 시기를 2년 늦추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현정부의 오락가락 교육정책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법령을 고쳐서라도 실패한 외고 정책을 바로잡겠다”고 호언했던 정부의 정책 의지도 의심받고 있다.
우선 교육부가 밝혔던 외고 정상화 정책 자체가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김정명신 ‘함께하는 교육시민모임’ 대표는 “2008학년도부터 외고 모집 제한을 실시해도 문제될 것이 없는데, 일부 보수층의 반대 여론에 밀려 한 달 만에 정책을 뒤집은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며 “이런 상황에서 외고 정상화에 대한 정부의 정책 의지를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교육운동 단체들이 외고 정책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 문제가 현 정부의 평준화 정책에 대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특목고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평준화의 뼈대를 흔든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는데도 교육부는 귀를 막아왔다. 교육부가 이렇게 손을 놓고 있는 사이, 지난해 26곳이었던 외고가 올해는 31곳으로 늘었다. 현재 설립이 진행 중인 외고도 12곳에 이른다. 더욱이 교육부는 지난해 말 자립형사립고를 20여곳으로 늘리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뒤늦게 취소하는 등 입시명문고 증설을 부추기는 정책을 펴 왔다. 이런 이유로 교육부의 뒤늦은 외고 설립 제한 방침에 대해서도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는 지적이 많았다.
안승문 서울시교육위원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특목고와 자사고 설립 공약이 봇물 터지듯 나온 것은 교육부의 방조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며 “비록 늦었지만 외고 설립 억제와 모집 지역 제한, 교육과정 정상화 방안을 일관성 있게 밀고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집 제한 정책뿐만 아니라 외고와 관련된 입시정책에서도 현 정부는 일관성 있는 태도를 보여주지 못했다. 교육부는 2004년 10월 ‘2008학년도 입시 개혁안’을 발표하면서 동일계 특별전형 도입 등을 통해 입시기관으로 변질된 외고를 정상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 뒤 서울대의 통합교과형 논술 비중 강화와 동일계 특별전형 거부 등으로 입시 개혁안이 누더기가 될 위기에 처했지만, 교육부는 대학 자율성을 내세워 사실상 수수방관했다. 외고의 교육과정 파행 운영에 대해서도 손을 놓고 있다가 올 들어 뒤늦게 실태조사에 착수했다.
교육부의 이런 일관성 없는 정책은 외고의 입학 경쟁률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2008학년도 입시안이 발표된 직후 실시된 2005학년도 특목고 입학전형에서 4.6 대 1로 떨어졌던 서울 지역 외고 6곳의 특별전형 경쟁률이 2006학년도 입학전형에서는 6.7 대 1로 높아졌다. 한 특목고 입시 전문가는 “학부모들이 주요 대학들의 2008학년도 입시안을 분석한 결과, 내신 실질반영비율 현행 유지와 논술 비중 강화 등으로 특목고 학생들이 결코 불리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종규 기자 jklee@hani.co.kr
“어느 장단에 춤춰야하나” 학생·학부모
“취임도 하기전에 뒤집나” 교사들
김병준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내정자가 외국어고 신입생 모집 지역 제한 도입 연기를 검토하겠다고 밝히자 외국어고 교육 정상화를 위한 최소한의 정책마저 포기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일선 교사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외국어고 진학을 준비하는 학생과 학부모들도 혼란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교사들 “취임하기도 전에 정책부터 뒤집나”=서울 ㅅ중 김학경(41) 교사는 “외국어고 학생 모집 지역 제한은 입시학원화한 외고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며 “취임도 하기 전에, 정책 대수술도 아니고 최소한의 개선책마저 뒤집는 교육부 장관이라면 앞으로 무슨 교육개혁을 하겠느냐”고 비판했다. 서울 잠신고 김학윤 교사는 “도입시기 연기라지만 다음 정권으로 넘겼으니 사실상 물건너 간 것 아니냐”며 김 내정자가 고교 평준화 틀을 유지하겠다고 밝히면서도 평준화를 사실상 무너뜨려온 외고 정책을 다시 원점으로 되돌리는 무원칙을 드러냈다고 말했다.
현장 교사들은 특목고·자사고 등 학생 선발 제한을 받지 않는 ‘특별한’ 고교들의 입학 요건은 중학교 공교육에서 받은 교육을 검증하기보다 사교육을 검증하는 것으로, 학교 공교육에 대한 불신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한다.
일관성 없는 정책 변경에 대한 불만도 컸다. 경기지역 외국어고의 이아무개(36) 교사는 “조령모개 식으로 정책을 입안·발표하고 바꾸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인천 부평의 중학교 교사 이아무개(47)씨는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것을 이렇게 몰아붙였다가 갈등만 남기고 후퇴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학생·학부모 “어느 장단에 춤춰야 하나”=외고 진학을 준비해 온 학생과 학부모들도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느냐”며 헷갈려했다.
지난해부터 외고 입시를 준비해 왔다는 인천의 박아무개(15·중2)양은 “서울의 외고에 갈 수 없게 돼 실망했었는데 다행”이라며 “하지만 이것도 확정된 게 확실한지 모르겠다”며 불안감을 표시했다. 박양은 “최근 부모님과 함께 인천에 있는 외고에 대해 알아보기도 했다”고 말했다.
학부모들도 불만을 토로했다. 중1 딸을 외고에 보내려 한다는 민아무개(41·경기 고양시)씨는 “김병준 부총리 내정자가 두 딸의 외고 편입학과 관련해 자꾸 공격을 받으니까 흔들린 것 아니냐”며 “급하게 (지역제한을) 발표한 김진표 부총리나, 이를 제대로 못 지킨 새 내정자나 모두 문제”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에 사는 이아무개(42)씨는 “중1 아들을 외고에 보낼 생각인데, 이번 번복으로 정책에 대한 불신만 갖게 됐다”며 “주변 학부모들 대부분은 3년 뒤 이 정책이 그대로 갈 거라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허미경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2008년 ‘내신강화 대입안’ 다시 위기 입시학원화 방치땐 “내신 불리” 자퇴 급증 등 파행 우려 정부의 외국어고 모집 지역 제한 연기 방침으로, 내신 중심의 새 대입제도가 다시 위기를 맞게 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외국어고가 외국어교육을 위한 특수고가 아니라 지금처럼 ‘입시목적고’로 편법 운영되면서 우수 학생을 싹쓸이할 경우, 대학들이 내신 비중을 높이는 데 부담을 느낄 것이고, 내신 비중 강화를 핵심으로 하는 새 대입제도 역시 뿌리내리기 힘들 것이라는 분석에서다. 김진표 교육부총리는 지난달 중순 외국어고 모집 지역 제한 등 개선방안을 발표하면서 내신 중심의 2008학년도 대입제도가 정착하려면 외국어고 정책을 지금처럼 방치해선 안 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밝힌 바 있다. 외국어고가 외국어 인재 양성이라는 취지에 맞게 운영되지 않으면 단계적으로 2008학년도 신입생 선발 때부터 모집단위를 광역 시·도로 제한하겠다고 한 것도 외고 정상화를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외고가 지금처럼 운영되는 상태에서 대학들이 정부 방침대로 내신 비중을 강화할 경우, 내신 불리를 의식한 자퇴생 증가 등 또다른 파행이 빚어질 가능성이 크다. 김진표 부총리가 지난 6월 말 사임 뜻을 밝히면서 “외국어고는 실패한 정책으로, 이미 10년 전에 정책 전환이 이뤄졌어야 했다”고 말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만중 남서울중 교사는 “경제부총리 출신으로 시장주의자이던 그가 이런 결론에 도달한 것은 외국어고의 교육과정 운영 파행의 심각함을 방증하는 것이자 입시기관화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돼온 외국어고 문제를 교육당국이 방치해 왔다는 점을 스스로 고백한 것”이라며 신임 교육부총리 내정자의 정책 후퇴를 비판했다.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어느 장단에 춤춰야하나” 학생·학부모
“취임도 하기전에 뒤집나” 교사들
지난해 5월 서울 건국대학교에서 열린 서울지역 6개 외국어고등학교 입시설명회에 참석한 학부모들이 강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2008년 ‘내신강화 대입안’ 다시 위기 입시학원화 방치땐 “내신 불리” 자퇴 급증 등 파행 우려 정부의 외국어고 모집 지역 제한 연기 방침으로, 내신 중심의 새 대입제도가 다시 위기를 맞게 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외국어고가 외국어교육을 위한 특수고가 아니라 지금처럼 ‘입시목적고’로 편법 운영되면서 우수 학생을 싹쓸이할 경우, 대학들이 내신 비중을 높이는 데 부담을 느낄 것이고, 내신 비중 강화를 핵심으로 하는 새 대입제도 역시 뿌리내리기 힘들 것이라는 분석에서다. 김진표 교육부총리는 지난달 중순 외국어고 모집 지역 제한 등 개선방안을 발표하면서 내신 중심의 2008학년도 대입제도가 정착하려면 외국어고 정책을 지금처럼 방치해선 안 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밝힌 바 있다. 외국어고가 외국어 인재 양성이라는 취지에 맞게 운영되지 않으면 단계적으로 2008학년도 신입생 선발 때부터 모집단위를 광역 시·도로 제한하겠다고 한 것도 외고 정상화를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외고가 지금처럼 운영되는 상태에서 대학들이 정부 방침대로 내신 비중을 강화할 경우, 내신 불리를 의식한 자퇴생 증가 등 또다른 파행이 빚어질 가능성이 크다. 김진표 부총리가 지난 6월 말 사임 뜻을 밝히면서 “외국어고는 실패한 정책으로, 이미 10년 전에 정책 전환이 이뤄졌어야 했다”고 말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만중 남서울중 교사는 “경제부총리 출신으로 시장주의자이던 그가 이런 결론에 도달한 것은 외국어고의 교육과정 운영 파행의 심각함을 방증하는 것이자 입시기관화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돼온 외국어고 문제를 교육당국이 방치해 왔다는 점을 스스로 고백한 것”이라며 신임 교육부총리 내정자의 정책 후퇴를 비판했다.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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