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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도시와 시골의 행복한 만남 ‘산촌유학’

등록 2006-07-23 21:46수정 2006-07-24 14:15

“친구들과 손 잡고 꼬불꼬불한 길을 걸어 학교에 갔다. 점심 먹고 나서 냇가에서 가재를 잡고, 원두막에서 수박이랑 참외를 먹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 밤에는 모깃불 피워놓고 별 총총한 하늘을 올려다 봤다. ”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의 일기장에 이런 내용이 쓰이기를 바라는 도시 학부모들이 적지 않다. 이제는 부모 세대의 향수가 되어버린 이야기를 21세기 한국 현실에 맞게 ‘다시 쓰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도시 아이들에게는 생활 속에서 생태적 감수성을 느낄 수 있는 ‘시골살이’를, 갈수록 학생 수가 줄어드는 시골 학교 아이들에게는 함께 공부하고 뛰어놀 새 친구를 소개하는 이 프로그램의 이름은 ‘산촌유학’이다. 격월간 대안교육지 <민들레> 발행인을 비롯해 국내에서 산촌유학을 시도하고 있는 몇몇 사람들이, 우리보다 앞서 산촌유학을 제도로 정착시킨 일본에 다녀왔다.

일본 나가노현 야사카 마을에 있는 한 농가의 모습과 센터에서 마련한 캠프
일본 나가노현 야사카 마을에 있는 한 농가의 모습과 센터에서 마련한 캠프

일본 ‘산촌유학’ 현장을 가다 /
시골로 떠난 도시아이들, 자연서 ‘체험, 삶의 현장’

대부분의 아이들이 도시에서 자라는 요즈음, 아이가 잠시라도 자연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부모들이 갈수록 늘어나는 듯하다. 평소에는 ‘학원 뺑뺑이’에 찌들어 사는 아이들이라도 적어도 방학 때 며칠씩이라도 시골에서 지내보게 외갓집을 보내거나 이런저런 캠프를 보내기도 한다. 반딧불이 날아다니는 산골에서 아궁이불에 감자를 구워먹어 본 어른이라면 자기 아이에게도 비슷한 체험을 하게 해주고 싶을 것이다. 많은 캠프, 계절학교들이 그런 체험을 하게 해준다. 그러나 자연이 단순히 체험의 대상을 넘어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자연과 하나가 될 정도가 되지 않으면 그 교육적 효과는 그다지 크지 않을 것이다.


이곳에 살고 있는 스바씨 부부는 30년이 넘게 도시 아이들을 받아 부모 노릇을 하고 있다. 마을 아이들은 누구나 산촌유학센터에 자유롭게 드나들며 큰 북 연주,등 다양한 취미활동을 한다
이곳에 살고 있는 스바씨 부부는 30년이 넘게 도시 아이들을 받아 부모 노릇을 하고 있다. 마을 아이들은 누구나 산촌유학센터에 자유롭게 드나들며 큰 북 연주,등 다양한 취미활동을 한다
단기체험 위주의 생태교육, 체험학습의 한계에 대한 고민을 하던 이들이 눈을 돌린 것이 다름 아닌 ‘산촌유학’이다. 귀농해서 실제로 도시 아이들을 받아들여 도농교류학습을 시도하고 있는 이들과 대안교육운동을 하는 격월간 <민들레>가 중심이 되어 산촌유학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마침 교보환경재단의 지원을 받게 되어 일본의 산촌유학 실정을 둘러보러 몇몇 사람들이 일본을 다녀왔다.

산촌유학은 간단히 말해 도시아이들이 시골로 가서 학교를 다니는 것이다. 이런 일을 개인 차원을 넘어 조직적으로 풀어낸 것은 일본이 한참 앞섰다. 지금부터 34년 전, 나가노현 산골이 고향인 젊은 교사 아오키는 입시전쟁터 같은 학교에 더 이상 교육은 없다는 생각으로 학교를 그만두었다. 진짜 교육은 뭘까를 고민하다 아이들과 자연이 만나면 여러 가지가 해결되겠다는 생각에 ‘소다테루카이(育る會)’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따로 캠프시설을 두지 않고 지역 농가를 빌려 아이들을 잠깐씩 머물게 했다. 소다테루카이가 알려지면서 아이들이 늘어나고 게중에는 아예 시골 학교로 옮겨와서 장기 유학을 하는 아이들도 생겨나면서, 농가에서만 머물기보다 공동생활 공간의 필요성이 생겨 야사카 마을에 최초의 산촌유학센터를 세우게 된다. 그리고 단기캠프 형태가 아닌 장기유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아이들은 대개 1∼2년씩 머무는데, 소다테루카이의 원칙은 한 달에 10∼15일은 반드시 지역 농가에 머물게 한다는 것이다. 농가에서 일도 거들면서 실제 생활 속에서 여러 가지를 배우고 익히는 기회를 갖도록 배려한다. 농가의 어른들이 부모와 교사 노릇을 하는 셈이다. 농가와 센터를 번갈아가면서 머물게 함으로써 농가와 아이들, 센터 활동가도 쉽게 지치지 않고 오랫동안 이 일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가 방문한 곳 가운데는 30년 넘게 아이들을 받아오고 있는 농가도 있었는데, 이제 일흔이 넘은 주인장 스바씨 부부는 손주뻘인 아이들이 요즘도 자신들을 엄마, 아빠라고 부른다며 웃었다. 산촌유학을 한 아이들은 자라서도 자신이 한때 머물렀던 산골을 고향처럼 생각하고 자주 찾는다고 한다. 일부러 그 지역 농산물을 구입하기도 하고 결혼해서 자신의 아이를 다시 산촌유학을 보내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아이들 소리가 사라졌던 산골에 도시아이들이 들어오면서 마을도 활기를 띠고, 그들의 부모형제가 마을에 드나들면서, 사람이 빠져나간 산골에 사람을 불러들이는 산촌유학은 지역 살리기 아이템으로 주목을 끌었다. 산골 학교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 정원이 늘면서 예산 지원이 늘고 교사도 더 충원되었다. 이런 소문이 전국으로 퍼져 여러 지자체들이 산촌유학을 유치하려 들었다. 센터도 지어주고 운영에 필요한 재정 지원을 하겠다는 곳도 생겨났다. 그런 바람을 타고 만들어진 곳이 야사카센터 옆 마을의 오오카센터였다.

오오카센터는 오오카 마을 재정으로 건물도 세우고 운영비도 보조해주고 있었다. 부모들에게 한 달 참가비로 초등학생은 6만9천엔(약 62만원)을 받고, 중학생은 7만2천엔(약 65만원)을 받아 센터 재정의 절반쯤을 충당하고 있다. 부모들에게는 적지 않은 돈이지만 큰 건물을 유지하고 상근활동가들 월급 주고, 각종 프로그램을 열다보면 언제나 적자인데, 그 부족한 부분을 지자체가 채워주고 있는 것이다.

오오카센터에 이어 전국에서 다양한 산촌유학센터가 세워졌는데, 그 바람은 요즘에는 많이 수그러들었다고 한다. 1990년대 이후 일본 사회에 긴 불경기가 계속되면서 중앙정부의 돈 씀씀이가 엄격해지자 산촌유학센터가 있는 지역에서도 볼멘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도시에서 온 아이들을 위해 왜 우리가 돈을 써야 하나?’ ‘도시 아이들에게만 혜택을 주는 것 아니냐?’ 소다테루카이에서는 이 말을 새겨듣고 이른바 ‘도시 유학생들을 위한 센터’가 아니라 ‘지역의 생태교육, 생활교육장’으로서 성격을 새롭게 잡아가고 있었다. 시골에 살지만 오히려 친구가 없어 하루 종일 집안에서 컴퓨터 게임에 빠져 있는 시골 아이들에게 자연을 느끼도록 도와주는 구실도 한다. 또, 마을의 어른 아이가 모두 모여 문화공연도 펼치고 놀기도 하는 사랑방 노릇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산촌유학이 정착되려면 먼저 몇 가지 과제가 풀려야 할 것이다. 일본과 우리 형편은 다른 점이 많다. 농가 구조의 차이도 무시 못할 문제인 듯했다. 일본의 농가는 도시 주택과 별 다르지 않을 만치 정갈하고 규모도 더 큰 편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지내기에 서로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우리 농가 현실을 생각하면 지역센터 없이는 장기 유학은 쉽지 않을 것이다. 센터 공간을 마련하자면 지자체의 지원이 필요하다. 또 아이들이 시골에서 머물 수 있는 시설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교육에 대한 고민과 철학이 있는 어른이 있어야 하고, 아이들과 어울려 공동체로 살 수 있는 가족들도 필요하다. 귀농자들이 그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지역 학교를 설득하는 일도 쉽지 않을 것이다. 일본은 벽지 근무를 자원하는 교사에게 별다른 혜택이 없다 보니 오히려 뜻있는 교사들이 지원하는 반면, 우리 실정은 승진 점수를 바라고 오는 교사들이 많으니 시골의 작은 학교를 바꾸어가지 않으면 교육의 질을 보장하기도 어렵다.

현병호/대안교육 격월간지 <민들레> 발행인
현병호/대안교육 격월간지 <민들레> 발행인
그러나 이런 과제들은 하나씩 풀어가면 어려운 일만은 아닐 듯 싶다. 우선 이런 여건이 어느 정도 갖추어져 있는 지역에서부터 모델을 만들어가기 위해 몇몇 사람들이 준비중이다. 아이들을 살리고, 지역을 살리고, 교육을 살리는 일인 만큼 벌써부터 관심을 보이는 단체와 사람들이 많다. 한국의 ‘산촌유학’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현병호/대안교육 격월간지 <민들레> 발행인

함양·상주·양양 등… 산촌유학 프로그램 운영

현재 국내에서 산촌유학을 시도하거나 준비중인 이들은 서너명쯤 된다. 경남 함양 마천면 창원마을에 살고 있는 김일복씨는 지난 2002년부터 ‘햇살네 교류학습’이라는 이름으로 짧게는 3박4일, 길게는 2주에 걸쳐 도시 아이들의 시골 체험 프로그램을 꾸려왔다.

그동안은 주로 방학을 이용해 한번에 5명 가량 아이들이 김씨네 집에 머물며 자연·생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식이었는데, 오는 9월부터는 본격적인 ‘산촌유학’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9월 한달 동안 계속되는 햇살네 교류학습은 도시 아이들이 근처 마천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다양한 방과후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현행 교육법에서는 석달 이하의 도농교류학습을 보장하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은 별도의 전학 절차 없이 시골 학교 생활을 할 수 있다.

경북 상주에 살고 있는 이명학씨는 근처 괴산을 포함해 110여개에 이르는 귀농 가구들과 더불어 산촌유학을 준비하고 있다. 마을에 산촌유학센터를 마련하고 프로그램과 인력 확보에 나선 상태다. 이밖에도 강원도 양양 오색마을에서 일주일∼6개월에 이르는 장·단기 산촌유학 프로그램을 꾸려온 우성숙씨 등이 국내 산촌유학의 ‘개척자’라 할 수 있다.

그동안 전국 곳곳에서 개별적으로, 산발적으로 이루어지던 산촌유학은, 최근 대안교육 격월간지 <민들레>가 주축이 돼 관심있는 이들을 한 자리에 모으고 일본 현지 조사에 나서면서 한층 활기를 띠게 됐다.

일본 산촌유학 현황과 국내 현실을 알아보고 풀어야할 과제를 짚어보는 ‘산촌유학 워크숍’이 오는 8월24일 오후 2시 서울 영등포구 하자센터에서 열린다. 교사나 학부모를 포함해 산촌유학에 관심있는 이들은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자세한 사항은 민들레 홈페이지(mindle.org)를 참고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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