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호/서울 휘문고 교사
선생님이 말하는 교실 안팎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 올해는 장마가 길다. 오염된 비가 단 한 방울이라도 묻을까봐 출석부를 우산 삼아 이크 이크, 총총총. 그런데 드넓은 운동장에는 그 쏟아지는 비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들이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공을 차고 있다. ‘좋을 때다…’
“너, 오늘 왜 늦었어?” “밤새 야동 보느라 늦었대요” 옆의 아이가 거든다. 아닌가 아니라 두 눈이 버얼겋다. “어젯밤에 늦게까지 공부하느라….” “그건 아니다. 그지?” “네에! 아프론 저얼때 지각하지 않겠슴다!”
지각 안 하면 또 뭐 하나. 아침부터 이쪽저쪽 엎어져 자는 놈 천진데. “넌, 학교 잠자러 오냐?” “새벽에… 이불이 천장에 떠 있는 바람에 제대로 못 잤어요.” “?”
난 아이들이 좋다. 젊음, 그들의 뻥, 그들의 힘(?)이 너무 부럽다. 손가락 끝에 난 깨알만한 상처를 마치 보물이라도 되는 양 높이 쳐들고 좋아라며 양호실로 달려가는 그들. “여자다!” 하는 난데없는 외침에 자던 놈도 벌떡 일어나 수업이고 뭐고 무조건 창가로 몰려가는 그들. 경운기를 가리켜 ‘딸딸이’라고 하면 뭐가 그리도 좋은지 깔깔대며 좋아하는 그들. 냅다 방귀 뀌어 댄 후 오히려 자랑스레 손가락으로 브이 사인을 만드는 그들. 손가락이 부러질 정도로 툭탁거리고, 발톱이 빠질 정도로 뛰어 다니고, 정강이가 부러질 정도로 설쳐대는 그들. 그렇게 야단맞고 그토록 얻어 맞았으면 이젠 삐쳐서라도 좀 조용해질만도 한데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또 조잘조잘 지칠줄 모르고 떠들어대는 막강 수퍼 파워의 그들. 남이 핥아 먹은 아이스크림도 넙죽넙죽 잘 핥아 먹는 그들의 최신형 V3 백신까지 난 그들의 모오든 것이 부럽고 또 부럽다.
그런데 그토록 막강한 그들을 지도하고 교육해야 하는 나는…. 으휴, 이제는 기계가 다 되었는지 말하기조차 귀찮고, 하는 일 없이 피곤하다. 그래서 떠든다고, 만화책 본다고, 조금 늦었다고, 공부 안 한다고, 머리 길다고 화를 벌컥벌컥 내는 내 모습이 가끔은 초라해 보이는 이유도, 나같은 존재에는 아예 관심조차 가져 주질 않는 그들의 넘쳐 흐르는 호기심, 그들의 펄펄 끓어 오르는 힘, 그들의 터질 듯한 열정이 너무도 샘이 난 노친네의 투정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어찌됐건 이제는 그들을 이해한다는 것이 하나의 만용임을 인정한다. 거꾸로 그들이 선생인 나를 좀 이해해 줬으면 하는 심정이다. 나아가서는 한때는 나도 이불을 천장까지 들어 올리던(?) 시절이 있었으니 좀 봐 달래야 할 판이다. 그래서 수업 도중 조금 허세를 부리고 센 척 하더라도 그냥 모르는 척 조용히 들어 달라고 말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고 측은해 보이는 표정은 바로 이런 겁니다 하며 한 아이가 다가온다. “왜, 또오?” “선생니임, 이번엔 진짜 아파요.” “지난번은 가짜였고?” “아니에요. 이번엔 정말, 지인짜, 진짜로 아파요.” 전성호/서울 휘문고 교사 ohyeahh@hanmail.net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고 측은해 보이는 표정은 바로 이런 겁니다 하며 한 아이가 다가온다. “왜, 또오?” “선생니임, 이번엔 진짜 아파요.” “지난번은 가짜였고?” “아니에요. 이번엔 정말, 지인짜, 진짜로 아파요.” 전성호/서울 휘문고 교사 ohyeah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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