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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연해주∼시베리아∼몽골 ‘동북아평화’ 우리 손으로

등록 2006-09-10 17:27수정 2006-09-11 13:43

대장정에 참여한 한국 청소년들이 지난 8월16일 우스리스크에서 한·러 청소년 문화교류 캠프를 열고 현지 고려인 학생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대장정에 참여한 한국 청소년들이 지난 8월16일 우스리스크에서 한·러 청소년 문화교류 캠프를 열고 현지 고려인 학생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청소년 24명 ‘17일 동안의 대장정
고려인 4세들 만나 친구되고…평화네트워크 모색 17일간 여행
연해주에서 출발해 시베리아를 거쳐 몽골까지, 8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대장정을 끝낸 청소년들이 돌아왔다. ‘동북아 평화벨트 구축을 위한 청소년 대장정’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이 여정은 서울시대안교육센터의 주도로, 꿈틀학교, 셋넷학교(새터민 청소년 학교), 하자작업장학교 등 국내 대안학교 학생 24명이 참여해 8월13일부터 17일 동안 계속됐다.

사실 이번 여행은 ‘시작’에 불과하다. 서울시대안교육센터쪽은 이번 여행을 계기로 동북아 청소년들의 네트워크인 ‘동북아 청소년 평화 회의’를 만든다는 계획을 세워놓았다. 첫 여행은 대안학교 학생들 중심으로 이루어졌지만, 앞으로는 관심있는 일반학교 학생들에게도 문을 열어놓을 참이다. 서울시대안교육센터 강원재 팀장은 “방학을 이용해 외국 여행을 가거나 영어 연수를 가는 학생들이 많은데, 우리가 속한 동북아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이 지역 사람들이 살아온 삶과 현실을 알고자 하는 청소년들도 있을 것”이라며 “장차 자신들의 활동 무대가 될 동북아 친구들을 직접 만나고, 발로 걸어다니며 동북아 평화를 고민하는 여행이 가능하도록 토대를 만들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여정에서 학생들이 가장 고대했던 것은 연해주에 살고 있는 고려인 4세들과의 만남이다. 최근 연해주에는 80년 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를 당했던 고려인들이 돌아와 만든 정착촌이 여러곳 생겨나고 있다. 소련연방에서 분리된 국가들이 자민족언어정책을 펼치면서 차별을 견디지 못해 연해주로 온 것인데, 교육 환경이나 문화적 여건이 몹시 안좋은 상황이다. 서울시대안교육센터쪽은 연해주 고려인 마을을 동북아 청소년 평화 네트워크의 ‘진지’로 삼기로 했다. 고려인들과 지속적인 문화 교류를 한다는 취지도 있지만, 80여개 소수민족이 살고 있는 연해주가 동북아인들의 평화로운 공존을 모색할 청소년들에게 더없이 적합한 곳이라는 판단에서다. 대장정에 참가한 하자작업장학교 송병기 군은 “러시아 고등학교 친구들은 생김새가 전혀 다른 민족들로 이루어진 학교를 다니지만, 서로 자연스레 어울리며 활동에 참여하고 있었다”면서 “이번 대장정은 이런 작은 움직임 하나 하나를 눈여겨보면서 갈수록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로 굳어가는 동북아시아지역의 평화를 고민하는 십대들의 여행이었다”고 전했다.

내년 여름 방학에는 청소년 문화공연팀과 참여를 원하는 청소년들을 모집해, 한 달 가량 연해주 고려인 마을에 머물면서 문화교류와 교육환경개선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번 여정과 앞으로 진행될 내용을 소개하는 ‘보고대회’가 오는 22일 오후 6시 하자센터에서 열린다.

동북아 평화벨트 구축을 위한 청소년 대장정 일지

금강산/하자작업장학교

8월13일. ‘동북아 평화벨트 구축을 위한 청소년 대장정’출발의 날. 버스를 타고 속초에 도착해 연해주 자루비노 항으로 향하는 ‘동춘 페리호’를 탔다. 배에서 만난 아프가니스탄 사람은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사람이었다. 그분은 별 거리낌 없이, 육개장의 재료에 대해 물었는데, 난생 처음 겪는 일에 당혹스러워 그 만남이 반가우면서도 어렵고 불편했다. 여행기 속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을 동경해왔으면서도 막상 적극적으로 대화할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사람은 ‘여행자의 태도’와 ‘만들어가는 여행’을 보여주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14일. 러시아 한 구석의 땅을 밟았다는 사실에 매우 설레었다. 가랑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연해주의 여름날, 우리는 카펫 눅눅한 버스의자에 앉아 세 시간 가량을, 안개에 가려 끝이 보이지 않는 초록색 땅을 보며 달렸다. 창 밖으로 보이는 양철 판자 지붕, 형광색으로 칠해놓은 벽. 낮고 긴 창문에 하얀 레이스 발이 달려있는 집들을 보며 어제까지만 해도 멀게만 느껴지던 연해주가 순식간에 코앞으로 다가 온 것 같았다.

15일. 광복절이다. 오전에는 조촐하게나마 우리끼리 독립운동을 위해 애쓰신 분들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이상설 선생님의 유업과 ‘꺼지지 않는 불꽃’을 거쳐, 우리를 위해 특별히 준비해주신 아리랑가무단의 공연을 보고, 중국 시장에 들려 홈스테이를 하고 있는 집 주인 아주머니, ‘또니아’에게 드릴 작은 선물도 마련했다. 야식도 함께 먹고 수다를 즐기는 다른 집들과는 달리 내가 묵고 있는 또니아네 집은 별 다른 교류가 없다. 같은 집에 머물면서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아들 보바와 어색한 듯 웃으시며 방으로 들어가시는 또니아네 집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16일. 일찍부터 ‘한민족 학교’의 학생들이 찾아왔다. 다리털까지 노란 러시아 친구들, 생김새만으로는 구별하기 힘든 고려인 친구들이다. ‘한민족 학교’의 친구들과는 영어와 몸짓으로 소통했는데 친구들의 영어발음이 익숙지 않아 김밥을 링킨파크로 들어 한 동안 동문서답을 하는 등 우스운 일이 많았다. 러시아 친구들은 내게 ‘엘레나’라는 러시아 이름도 지어주었다. 이르챠는 이효리에 대해 관심이 많았는데 한국의 국수를 좋아한다고 했다. 남자친구 이야기를 즐겨하던 스베타, 짐을 들어주던 데니스, 직접 만든 목걸이를 내 목에 걸어주던 따냐, 모두 말로 표현하기 힘든 예쁜 모습이었다.

17일. 기대하던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처음 보고 난 소감은, ‘길다’와 ‘낭패다’였다. ㄷ자 모양으로 이층 침대가 놓여있는 공개형 6인실에서 낯선 외국인과 마주한 채 삼일을 가야 하다니. 열차 안에서 우리는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 풍선으로 곰이나 꽃, 왕관을 만들어주는 등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하며 다른 칸의 승객들까지 끌어 모았고, 길게 정차하는 역에서는 난타 공연과 아리랑 합창 등을 하기도 했다. 나는 그 열차를 탔던 사람 중 우리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거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그러다 친구가 된 사람들도 있다. 간단한 인사를 시작으로 러시아어 회화책과 온 몸을 써가며 가족 사항이나 직장, 꿈 등 통역 없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막스와 싸냐 형제, 먹을 것까지 챙겨주던 마샤, 도도한 공주님 말레나, 빨간 바지 일랴까지 예상치 못했던 만남을 통해 우리에게는 새 친구들이 생겼다.

21일~23일. 바이칼 알혼섬. 새파란 바이칼의 물이 내려다보이는 알혼섬 후지르 마을은 초록색 언덕배기에 통나무집이 멀지 않은 간격으로 얹혀 있는 조용한 마을이다.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바이칼은 그야말로 ‘바다 같은 호수’였다. 연해주에서의 교류가 사람들과 문화를 통해 이루어졌다면, 알혼섬에서 우리는 꾸미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과 교류하며 지친 몸과 마음을 재정비했다. 벌써 절반을 넘긴 대장정을 평가하고 점검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23일. 드디어 대장정의 마지막 코스인 몽골로 향하는 열차에 오른다. 이틀간의 열차 여행을 거친 뒤 몽골 초원의 밤,
무수한 별들을 바라보며 우리는 이 여행을 어떻게 마무리 할까, 어두운 밤하늘 빗줄기처럼 쏟아질 별똥별들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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