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대/서울 신월중 교사
선생님의 교실 안팎
오늘은 잔소리를 좀 해야겠다. 교실 뒷정리를 하다보면 아이들이 흘리고 간 것이 참 많다. 지우개, 연필, 볼펜 등이 한 움큼은 된다. 다 쓸 만한 것이니 차마 쓰레기통에 넣을 수 없어 챙겨두었다가 다음날 교탁 위에 쌓아둔다. 그러나 찾아가는 아이들은 몇 되지 않는다. 우산도 그렇다. 아침에 비가 온 날이면 사물함 주변으로 서너 개씩 굴러다닌다. 작년 재작년 도서실을 맡았을 때는 아이들이 두고 간 우산으로 아예 대여업을 했다.(임자가 나타나지 않는 것을 모았다가 갑작스럽게 비온 날 빌리러 오는 녀석들에게 30분 도서실 봉사와 맞바꾸었다.) 쓰고 나서 교실 구석에 아무렇게나 버려두는 것 중에 체육복도 있다. 그래놓고는 막상 체육시간이 닥쳐 허겁지겁 찾다가 없으면 ‘아, 짱나’를 연발하면서 결국은 옆 반으로 옷 구걸을 나가는 것이다. 아마 집에 가서는 ‘어떤 놈이 체육복을 훔쳐갔다’고 둘러댈 것이다. 물론, 눈여겨보면 대부분 흘리고 다니는 녀석들이 정해져 있기는 하다.
지난 월요일엔 아침부터 몇 녀석이 내려와서 외출증을 써달라며 떼를 썼다. 1교시 미술 준비물이 4절 눈금종이인데 그걸 안 가져왔다는 것이다. 미처 챙기지 못한 녀석들이 어디 이들뿐이랴 싶어 나가는 김에 몇 장 더 사다가 나눠 쓰라고 주머닛돈을 보태서 외출을 시켰다. 그 날 점심 시간에 올라가 보니, 몇몇 남자애들이 나눠주고 남은 것이라며 새 종이를 뚤뚤 말아 칼싸움을 하고 있다. (이런 경우에 ‘준비물을 챙겨주셔서 고맙습니다. 따위의 인사를 기대하는 것은 정신건강에 해롭다.) 쉽게 얻으니 잃고 버리는 것도 쉽다. 내 것이 귀하지 않으니 남의 것도 함부로 여기기 일쑤이다. 공공 기물은 말할 것도 없다.
아이들의 이러한 헤픈 소비나 분실에 대해 잔소리를 해봤자 흘려듣기 일쑤다. 내 초등학교 때 소원은 16색 크레파스를 갖는 것이었다. 가진 게 가난이라 6년 내내 남의 것을 얻어 쓰거나 쓰다버린 ‘꽁댕이’를 주워 썼으니 그림은 늘 배경이 비어있는 미완성작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크레파스를 보면 사고 싶고 갖고 싶다. 이런 이야기를 곁들여 물건을 귀하게 쓰라고 하면, ‘그건 고구려적 선생님 이야기고요’하는 기색이 역력한 것이다.
가난과 풍족을 떠나, 시절의 고금을 떠나, 제 물건을 제가 아껴 챙기는 일만큼 귀한 습관이 어디 있겠는가. 한미 에프티에이의 실체를 통찰하고, 백두산에 말뚝을 박으려는 중국의 음모를 깨닫는 일만 중요하겠는가. 이건 생활의 기본이다. 그럼에도 ‘꼰대 잔소리’로만 여기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살펴보면 차분하게 제 주변과 생활을 잘 수습하는 녀석들이 남도 잘 챙기고, 공부도 잘 한다. 어쨌거나 이와 관련하여 좋은 방법이 있으면, 귀띔 좀 해 주시라. 작고 사소하게 보여도 이건 뜻밖에 큰 문제이다. 이상대/서울 신월중 교사 applebighea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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