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교육

김치 만두

등록 2005-03-13 14:47수정 2005-03-13 14:47

아침 밥맛 없었는데 학교 오니 배고프네

새 학기가 되어 아이들을 새로 만나면 똥을 제대로 는지 아침을 잘 챙겨먹는지 꼭 물어본다. 당연한 일이라 여겨 전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몇 해 전부터는 이 일을 아주 중요하게 여긴다. 가난한 것도 아닌데 귀찮아서, 밥맛이 없어서, 아침을 습관처럼 거르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 똥도 날다마 는 아이가 반에 열 명도 안 된다. 이틀에 한 번, 심지어는 사흘에 한 번밖에 안 는 아이도 있다.

김치만두

할머니는

밥 먹기 싫다 하면


사 먹으라고

돈을 준다.

그러면 그 돈으로

문방구에서 김치만두를

사 먹는다.

군것질 하는 건

안 좋지만

배가 고파

사 먹는다.

(류지수/인천 남부초등학교 2학년)

부모님 말도 잘 안 듣는 아이들이 할머니 말을 귀담아 들을 리 없다. 지수는 아침에 겨우 일어나서 밥상에 앉았지만 도무지 밥맛이 없다. 지수는 밥 먹기 싫다고 떼를 쓰고 할머니는 이내 손을 든다. 하지만 할머니는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용돈을 쥐어 준다. 지수는 학교 앞까지 잘 온다. 하지만 조금 걷다 보니 시장기가 돌고 뭐라도 먹고 싶은 마음에 문구점을 기웃거린다. 문구점 안은 늘 복잡하다. 그 복잡한 한쪽에 전기 후라이팬이 놓여 있고 만두가 노릇노릇 익고 있다. 아이들은 그릇에 받치지도 않고 만두를 한두 개씩 사서는 손으로 쥐고 먹는다. 지수도 참을 수 없어 김치만두를 사 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만두를 먹는 마음이 그리 편해 보이지 않는다. 만두를 사 먹는 순간, ‘군것질 하는 건/안 좋지만’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럴 만도 하다. 틈만 나면 선생님은 아침부터 군것질한 사람을 찾아 야단치고 군것질이 몸에 좋지 않은 까닭을 되풀이해서 이야기한다. 또 누군가가 보고는 선생님한테 이를까 봐 걱정도 될 것이다. 여기에 할머니 말을 어기고 차려 놓은 아침을 안 먹은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있다. 하지만 이 복잡한 생각도 배고픔을 이길 수 없다. 지수는 마지막에 ‘배가 고파 사 먹는다’라고 적는다. 그 순간 절실한 문제는 배 고픔을 해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올해 새로 맡은 6학년 아이들한테도 아침을 먹고 왔냐고 자주 묻는다. 첫 날은 열 명, 다음 날은 일곱 명, 그 다음 날은 다섯 명이 아침을 안 먹고 왔다. 이 아이들한테 지수가 쓴 시를 읽어 주어야겠다. 그리고 밥을 먹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이야기해야 겠다. 밥을 거르는 일이 몸에 밴 아이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어른들이 아침을 먹게 해야 한다. 집에서는 밥맛이 없다가도 학교에 가면 지수처럼 배가 고파서 군것질로 허기를 달래려 드는 것이 바로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강승숙/인천 남부초등학교 교사 sogochum@hanmail.net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