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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거장 비트겐슈타인의 괴짜 행로

등록 2005-03-13 16:46수정 2005-03-13 16:46

[철학산책]

현대 영미철학의 최고 슈퍼스타는 이론의 여지 없이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다. 1999년 시사주간지 〈타임〉이 뽑은 20세기 최고의 인물 가운데 하나로 호명되기도 한 그는 매우 특이한 인생 행로를 걸었다.

탁월한 지적 통찰력과 고상함을 겸비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매우 까다로운 성품의 소유자였던 비트겐슈타인은 1889년 유대계 철강 재벌의 막내아들로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 가문 모두가 천재적 음악인이자 음악 애호가였기에 브람스나 말러, 브루노 발터 같은 당대 최고의 음악가들이 저녁식사에 초대되었고, 히틀러와 함께 린츠에 있는 기술고등학교에 다니기도 했다. 아버지의 강압으로 대학에서도 기계공학을 전공했던 그는 우연히 수학의 기초에 관한 러셀과 프레게의 책들을 읽고 점차 수리철학, 논리학 등으로 관심을 전환한다. 1911년 이 두 대가를 만난 비트겐슈타인은 비행사가 되려던 계획을 접고 철학자의 길을 선택한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이미 탈장으로 면제 판정을 받았는데도 자원 입대했다. 치열했던 러시아 전선에서의 전투 공로로 훈장을 받고 장교가 된 그는, 전선에서도 틈틈이 종군노트를 통해 철학적 사색을 발전시켜 마침내 전기를 대표하는 〈논리철학논고〉(1918년)를 완성한다. 이후 부모로부터 받은 유산을 기부하고 정리한 다음 초등학교 교사로 봉직한다. 그러나 여기서도 지나친 체벌로 쫓겨나자 수도원 정원사로 취직한다.

이런 그를 구해낸 것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재학 시절 친구였던 유명한 경제학자 케인스와 램지였다. 이미 무일푼이 된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 특별연구원으로서 열심히 강의를 하지만, 이내 교수직에 환멸을 느끼고 혁명의 열기가 채 식지 않았던 소련으로 간다. 집단농장의 노동자가 되기를 자처하며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 등을 존경하는 이 대가에게, 스탈린은 노동자 대신 모스크바대학 교수로 일할 것을 권한다. 그는 이를 사양한 채 영국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얼마 뒤 케임브리지대학 도덕과학클럽에서 연사로 초청된 칼 포퍼와 그 유명한 부지깽이 사건을 벌인다. 포퍼는 ‘철학적 문제가 실재한다’고 주장했던 반면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적 문제란 언어적 유희에 불과하다’고 고집했으며, 급기야 이 논쟁은 비트겐슈타인이 들고 있던 화로 부지깽이를 내팽개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것으로 끝났던 것이다.

이상문 대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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