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로왕릉. 가야 건국설화에서 수로왕은 금빛 알에서 태어나 가야를 세웠으며 김해 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수로왕릉과 납릉 정문. 납릉 정문에 새겨진 쌍어문양은 물고기 두 마리가 머리를 맞대고 있는 모양으로, 인도에서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테마별로 떠나는 체험 학습 / 김해 수로왕릉·국립김해박물관
한반도 북쪽에서 주몽이 졸본을 근거지로 계루, 비루, 환나, 관나 등 부족들을 통합해 고구려를 건국할 무렵 남쪽에서도 마한, 변한, 진한이라고 통칭되는 많은 부족들이 부족연맹체로 성장해 나가는 삼한시대가 전개되고 있었다.
이후 마한은 지금의 경기·충청·전라도 지방을 중심으로 번성해 2세기께 백제로 통합되고 진한은 대구와 경주를 중심으로 발전해 3세기께 신라로 통합됐으나 변한은 통합된 단일국가 체제를 갖추지 못하고 김해 등 낙동강 유역을 중심으로 6개의 가야 소국으로 성장했다. 가야에 관한 역사 기록은 거의 없지만 최근에 많은 가야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면서 고구려, 백제, 신라가 격돌하던 삼국의 틈바구니에서 600여년 동안 독립된 문화를 유지해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경남 김해를 중심으로 성장한 금관가야는 서기 42년께 가락국을 수립하고 발전된 철기문화와 대외교역을 중심으로 500여년을 발전해왔다. 김해에서는 가락국 건국설화가 전해지는 구지봉과 가락국을 세운 수로왕릉, 왕비릉을 비롯해 다양한 가야 유적과 유물을 살펴볼 수 있다.
납릉이라고도 불리는 수로왕릉의 납릉 정문에는 인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두 마리의 물고기가 조각된 쌍어문양이 새겨 있고, 수로왕비릉에는 왕비가 아유타국에서 바다를 건너 가락국으로 올 때 싣고 왔다는 파사석탑이 있어 수로왕이 아유타국의 공주인 허황옥과 결혼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을 연상하게 한다.
수로왕릉 뒤쪽에 있는 대성동고분군에서는 사람과 말을 같이 묻는 순장과 무기를 구부려 껴묻는 풍습을 살펴볼 수 있다. 가야 무덤은 선조들의 무덤을 파헤치고 그 위에 다시 무덤을 조성하는 것이 특징인데, 29호분과 39호분을 노출전시관으로 조성해 이를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전시하고 있다.
실내전시관에는 고분에서 발굴된 기마용 철제갑옷, 말투구, 말갑옷 등의 유물이 전시돼 있어 가야가 철제무기로 무장한 강력한 군사력을 갖추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가야국이 풍부한 철을 바탕으로 중국 및 왜와 활발하게 국제교역을 한 것을 보여주는 청동솥과 덩이쇠 등도 살펴볼 수 있다.
국립김해박물관에서는 가야의 철제 무기와 공구, 이형 토기, 철 제작과정과 판갑옷, 교역을 통해 들어온 외국산 유물 등을 통해 가야의 문화를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전시된 가야 연표를 통해 고구려, 백제, 신라 등 삼국의 역사와 비교하며 가야의 역사를 시대 순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김해지역의 금관가야를 비롯하여 아라가야, 대가야 등 여섯 개 가야 소국의 위치와 역사 및 문화적 특징을 이해할 수 있다. 풍부한 철을 바탕으로 성장한 가야는 철제 무기와 철갑으로 중무장한 군사력을 갖춘 남해안 최강 세력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가야는 여러 차례 신라를 공격하기도 한다. 6세기에 신라가 급성장하자 가야는 이에 대항하기 위해 왜와 연합을 시도하는 등 여러 방면으로 노력하지만 532년에 김해의 금관가야, 560년께 함안의 아라가야, 562년에 고령의 대가야가 차례로 신라에 병합됨으로써 600여년의 가야 역사가 막을 내리게 됐다. 이후 가야인의 일부는 일본으로 이주하기도 했고 신라의 지방 사람으로 편입되기도 하였는데 가야금을 신라에 전한 우륵이나 삼국 통일전쟁의 명장 김유신도 가야의 후손이었다. 가야의 우수한 철기문화와 토기는 일본의 발전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일본은 가야 유민들이 이주하면서 철로 만든 무기와 갑옷들을 만들게 된다. 또 가야 토기는 일본의 스에키 토기문화를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관련 교과: 초등학교 <사회> 4-2 1. 문화재와 박물관, 6-1 1. 우리 민족과 국가의 성립 ▶관련 사이트: 김해시청(tour.gimhae.go.kr), 국립김해박물관(gimhae.museum.go.kr) 글·사진 김정주/모든학교(schooall.com) 체험학습연구소장
국립김해박물관에서는 가야의 철제 무기와 공구, 이형 토기, 철 제작과정과 판갑옷, 교역을 통해 들어온 외국산 유물 등을 통해 가야의 문화를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전시된 가야 연표를 통해 고구려, 백제, 신라 등 삼국의 역사와 비교하며 가야의 역사를 시대 순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김해지역의 금관가야를 비롯하여 아라가야, 대가야 등 여섯 개 가야 소국의 위치와 역사 및 문화적 특징을 이해할 수 있다. 풍부한 철을 바탕으로 성장한 가야는 철제 무기와 철갑으로 중무장한 군사력을 갖춘 남해안 최강 세력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가야는 여러 차례 신라를 공격하기도 한다. 6세기에 신라가 급성장하자 가야는 이에 대항하기 위해 왜와 연합을 시도하는 등 여러 방면으로 노력하지만 532년에 김해의 금관가야, 560년께 함안의 아라가야, 562년에 고령의 대가야가 차례로 신라에 병합됨으로써 600여년의 가야 역사가 막을 내리게 됐다. 이후 가야인의 일부는 일본으로 이주하기도 했고 신라의 지방 사람으로 편입되기도 하였는데 가야금을 신라에 전한 우륵이나 삼국 통일전쟁의 명장 김유신도 가야의 후손이었다. 가야의 우수한 철기문화와 토기는 일본의 발전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일본은 가야 유민들이 이주하면서 철로 만든 무기와 갑옷들을 만들게 된다. 또 가야 토기는 일본의 스에키 토기문화를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관련 교과: 초등학교 <사회> 4-2 1. 문화재와 박물관, 6-1 1. 우리 민족과 국가의 성립 ▶관련 사이트: 김해시청(tour.gimhae.go.kr), 국립김해박물관(gimhae.museum.go.kr) 글·사진 김정주/모든학교(schooall.com) 체험학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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