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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어린 청춘들의 ‘귀차니즘’을 어찌할꼬

등록 2007-04-22 19:34

이상대/서울 신월중 교사
이상대/서울 신월중 교사
선생님이 말하는 교실 안팎 /

미안하지만, 오늘은 우중충한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새 학기 들어 국어 과제로 ‘뉴스 따라잡기’를 하고 있다. 첫날 국어 시간에 그랬다.

“이제 중3이다. 오락프로만 보지 말고, 최소한 주 2회는 8시가 되었든 9시가 되었든 뉴스도 챙겨보자. 부모님과 같이 보면 더욱 좋겠다. 보고 난 뒤 가장 인상적인 뉴스를 하나 골라서 사건 개요와 자신의 소감을 정리해 보자. 하다보면 세상을 살피는 안목은 물론이고, 이야기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힘까지 얻을 수 있을 게다. 길게 보고 한번 해 보자!”

몇 년 간 아이들의 작법이나 사고 체계를 지켜본즉 여러모로 짧고, 얕고, 즉흥적인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궁리 끝에 도입한 과제가 뉴스 따라잡기였던 터라 내심 기대가 컸다. 잘만 하면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수업의 갈피를 잡을 수 있겠다 싶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 태도가 시큰둥했다. 아니나 다를까 한 달쯤 지나 공책을 걷어 보니, 열에 둘 정도만 제대로 하고 있을 뿐 나머지는 그저 시늉만 하고 있는 상태였다.

아이들에게는 무리인가 싶어서 슬쩍 물어보았다. “재미가 없니?” 그랬더니 무엇보다 시간이 없단다. “학원서 돌아오면 11시쯤 되는데 숙제니 뭐니 마무리하려면 뉴스 볼 시간이 안 난다”는 것이었다. 이 어린 청춘들이 공부에 쫓겨 뉴스 볼 시간도 없다는 사실에 공연히 울컥해서, 한바탕 흥분을 하려는 참인데, 몇 녀석이 그런다. “솔직히 말씀드리면요, 보는 것까지는 괜찮은데, 쓰려니까 싫고 귀찮고 그래요.” 그 말끝을 잡아, “할 수는 있는데 좀 귀찮고 그렇다?” 되물었더니 그렇단다. 그런 아이들 표정이 태평하기 짝이 없다.

이름하여 귀차니즘! 매사에 의욕이 없고, 꼭 해야 할 일조차도 건성건성 시늉만 하면서 때워 넘기는 증상을 일컬어 그렇게 부른다. 귀차니즘에 빠진 녀석들은 눈빛도 나른하고, 뭘 하자고 해도 대놓고 귀찮아 하고, 청소도 가방 둘러멘 채 어슬렁거리다가 끝을 낸다. 이런 귀차니즘들이 쓴 뉴스 따라잡기가 꼭 이런 식이다. ‘어제 김연아 선수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실수를 해서 3위를 했다. 체력이 달려서 도중에 넘어졌다는데, 아마 구라일 것이다.’

문제는 상당 수 우리의 아들 딸들이 이런 귀차니즘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호기심이 없다. 호기심을 잃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있으랴. ‘나는 별 관심 없수. 시험에나 써먹게 잘 정리해서 내 머릿속에 쏙쏙 넣어주슈!’ 이런 눈빛들을 데리고 수업을 마치고 나면 맥이 쭉 풀린다. 도대체 이 귀차니즘을 어찌 물리친단 말인가.

사실, 얹힌 짐이 과도하면 도망칠 궁리부터 하게 돼 있다.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짐, 너무 많은 공부 부담이 얹히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오히려 아이들을 호기심 밖으로 내모는 것은 아닐까. 지금도 조금 공부하고 나면 머리를 식히겠다며 컴퓨터에 핸폰게임에 매달리지 않는가. 마음은 우중충한데 창밖에는 봄이 찬란하기도 하다.


이상대/서울 신월중학교 교사 applebighea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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