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 와이즈멘토 이사, 곰TV 과학 강사
이범의 거꾸로 공부법/
나는 서점에 가도 ‘처세서’ 코너에는 가지 않는다. 처세서보다는 인문사회서적이나 문학서에서 퍼올릴 가치가 더 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이 ‘지혜의 통조림’들을 보고있노라면 그 과도한 단순화와 일반화에 숨이 막히기 때문이다. 처세서 못잖은 게 ‘학습법’ 책들이다. 공부법을 일반화해 ‘이런 방법이면 당신(또는 당신 자녀)도 공부 잘할 수 있다’는 식으로 광고하기 때문이다. 성공한 이들이 처세서의 성공원칙들대로 모두 수행하지 않은 것처럼, 공부 잘하는 학생들도 공부법 책대로 공부하지 않는다.
고등학교에서 전교 1등을 하는 학생들 100명을 심층취재해 펴낸 책인 <한국의 공부벌레들>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쉬는 시간에 영어단어를 외우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그냥 노는 학생도 있고, 수학 문제도 풀릴 때까지 끈기있게 파고드는 학생이 있지만, 좀 궁리하다가 안 되면 풀이집을 보는 학생도 있다. 많은 학부모들이 ‘우리 아이는 한 자리에 오래 앉아있지 못해요’, ‘공부할 때도 늘 이어폰을 끼고 있어요’ 라고 푸념한다. 난 뜨끔하다. 왜냐하면 나는 고3 시절까지도 공부할 때마다 이어폰을 꽂고 록음악을 들었다. 내게는 이것이야말로 숱한 시행착오를 통해 최적화된 공부방법이었던 것이다.
요컨대 공부 잘 해주도록 하는 ‘보편적 공부법’이란 없다. 공부법은 학생 개인의 체질과 과목별 학습능력, 학습성향, 동원 가능한 공교육·사교육 자원, 다른 과목과의 균형, 과거의 독서 및 학습이력 등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공부법에서 ‘힌트’를 얻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그 이상은 아니다. 결국은 자신의 ‘감각’과 ‘땀’을 믿고, 시행착오를 겪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 학부모들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자녀들이 자신의 공부스타일을 만들어갈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다. 특히 공부스타일을 확립하는 데 가장 결정적인 시기는 중학교 시절인데, 전국의 많은 중학생들이 자신만의 소중한 공부법을 확립할 기회를 갖지 못한 채 학원을 뺑뺑이 돌고 있다.
현실적 타협책을 제시한다면, 전과목을 철저히 관리해주는 학원에는 절대로 보내지 말 것을 권한다. 학원의 도움을 받는 과목은 아무리 많아도 두 과목 이내로 한정해야 한다. 물고기를 잡아주는 것보다 물고기를 잡는 법을 알려주는 게 훨씬 가치있지 않은가. 더구나 공부법은 부모한테서 전수받을 수 없기에 부모는 자녀가 물고기를 이런저런 방법으로 잡아보는 과정을 묵묵히 지켜봐줘야 한다.
이범 와이즈멘토 이사, 곰TV 과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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