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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실천하는 삶, 어렵지 않아요”

등록 2007-06-13 14:08수정 2007-06-13 14:30

미선이·효순와 동갑내기인 이꽃들, 정혜경씨는 당시 촛불집회에 참여한 경험이 사회를 보는 눈과 마음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미선이·효순와 동갑내기인 이꽃들, 정혜경씨는 당시 촛불집회에 참여한 경험이 사회를 보는 눈과 마음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613특별기획] [6.13 미선효순 5주기⑤] 촛불집회 참여 청소년, 무엇이 바뀌었나
2002년 의정부에서 훈련하던 미군 장갑차에 의해 억울하게 죽은 미선이·효순이의 한을 풀고자 시작된 촛불시위의 주역은 단연 청소년이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뜨거운 가슴으로 또래 친구의 죽음에 가슴아파하고 진실을 알리고자 앞장섰다.

미선이·효순이가 이 세상을 떠나고 5년이 흐른 지금, 촛불세대는 어느덧 어엿한 대학생 새내기가 됐다. 당시 두 여중생과 같은 또래로서 광화문 촛불집회에 참가했던 동덕여대 새내기 이꽃들(19, 인문학부07), 정혜경(21, 자연과학부07)씨를 만나보았다.

그들은 미선이·효순이 사건이 자기 삶의 가치관을 바꿔놓았다고 말한다.

먼저 혜경 씨는 “촛불 시위 참여 이후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을 행동으로 실천하는데 부담을 갖지 않게 했고, 실천이 어렵지 않다는 걸 몸으로 느꼈다”며 “앞으로도 내 생각과 일치하는 사회문제에 대해 행동하는 삶을 살 것이다”고 밝혔다.


꽃들 씨는 “당시 시위 참여 후 학교에서 ‘시위에 참여하지 맙시다’라는 내용의 가정통신문을 나눠주며 참가자에게 벌점을 주겠다고 집회 참여를 반대했다”며 “한편으로는 다수의 사람이 동의하는 정의로운 일이라도 현실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다는 회의감이 들었다”고 밝혔다.

1. 미선이·효순이 사건을 어떻게 접하게 됐나?

혜경 : 2002년 당시, 중학교 3학년 때 도덕교과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사건관련 사진과 영상물을 보며주면서 잠깐 설명해 주셨다. 사고가 처음 일어난 여름에는 저를 비롯한 친구들이 월드컵에 열기에 빠져있어 두 여중생사건에 특별히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선생님의 권유로 9월에 열린 미선이 효순이 추모아리랑 행사와 12월 촛불집회에 참가하면서 사건에 대해 알게 됐다.

꽃들: 처음에는 뉴스에서 사건을 접했고, 학교에서 따로 알려주거나 하지 않았다. 초기에는 언론에서도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아 사건에 대해 잘 몰랐다. 겨울 쯤 친구들과 함께 광화문에 있는 대형서점에 들렀다가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는 곳을 가보니 촛불집회를 진행하고 있어 자연스럽게 그 행렬에 참여하게 됐다.

2. 당시 촛불집회를 참여하면서 어떤 느낌이 들었나?

혜경: 그렇게 대규모 인원이 한 자리에 모인 걸 본 건 월드컵 응원이후로 처음이었다. 기쁨을 나누는 축제 이외에도 억울함을 나눌 때도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다는 점이 새로웠다.

어찌 보면 자기와 직접 관련이 없는 사람인데도 하나의 목적을 갖고 함께 한다는 것이 어색하지 않았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지금은 촛불집회가 일반화 됐지만, 그땐 처음 촛불을 들고 ‘염’을 하는 자리였다. 치고 박고 싸우는 집회가 아니라 평화적으로 추모하는 느낌이 강했다.

이꽃들씨는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몸이 떨리고 눈물이 난다고 회고했다.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이꽃들씨는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몸이 떨리고 눈물이 난다고 회고했다.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꽃들: 지금 돌이켜 봐도 몸이 떨리고 눈물이 글썽할 정도로 무서웠다. 처음엔 평화적으로 진행했는데 행렬이 길어지면서 시위가 격해졌다. 특히 미 대사관 앞에서 심했다. ‘주한미군 철수’와 ‘미선이 효순이 살려내라’라는 구호도 많이 외쳤다. 순식간 전경들이 앞에 쭉 서 길을 막았고, 30~40대 아저씨들이 몸싸움을 시작했다. 너무 놀라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앞 쪽에서 “어린 학생들은 뒤로 가라”는 외침이 들렸고 더 불안했다. 광화문 사거리 전경차와 사람들로 꽉 막히고 곳곳에서 싸움이 벌어졌다. 한편에서는 내 또래 학생이 전경이 휘두른 방패에 맞는 모습을 보고 너무 놀라고 무서워 울었다.

3. 그때의 심경은 어땠나?

혜경: ‘어린 아이들이 왜 희생돼야 하나?’, ‘우리가 왜 당하고 있어야 하나’ 억울했다. 당시에는 중학생의 어린 나이라 강한 분노는 없었지만, 억울하다는 느낌이 강했다. 직접 격렬한 시위 모습을 보진 않았지만, 최근 한미FTA반대 집회에서도 전경과 심하게 대치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의 의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정부가 일방적으로 목소리를 잠재우려하는 태도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요구사항을 표출할 소통의 창구가 없다.

꽃들: 전경도 우리가 하는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알 텐데… 미 대사관에 전하려는 구호도 억지가 아니라 정당한 요구인데, 왜 대치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60~70년대 독재정권 때나 나올 법한 방법으로 언론과 시민들을 탄압하는 것이 납득이 안됐다.

또 당시 시위 참여 후 학교에서 ‘시위에 참여하지 맙시다’라는 내용의 가정통신문을 나눠줬다. 난 시위에 참여 했다고 떳떳하게 말하고 친구들하고 함께 참여하고 싶었는데, 학교에서는 참가자에게 벌점을 주겠다고 무조건 반대했다. 민주화 된 세상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경험을 통해 돈 없고 권력 없는 사람들은 억울한 일 당해도 호소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4. 미선이 효순이 사건이 자신의 가치관 변화에 영향을 미쳤나?

여중생 사건을 통해 사회를 관심을 갖고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게 됐다는 정혜경씨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여중생 사건을 통해 사회를 관심을 갖고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게 됐다는 정혜경씨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혜경: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을 행동으로 실천하는데 부담을 갖지 않게 했다. 또 그게 어렵지 않다는 걸 몸으로 느꼈다. 집회도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생각이 있으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다는 걸 느꼈다. ‘백번 듣는 것 보다 한번 보는 게 낫다’는 말처럼 촛불집회 참여 이후로 사회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 진보적 매체라 불리는 한겨레신문도 구독하고, 선생님과 대화를 통해 의문점을 풀면서 세상에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실제 고등학교 때 ‘양심수를 위한 보랏빛 수건’에도 참여했고, 이주노동자 집회에 참가했다. 한 개인으로서 나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현실을 공감하고 함께하는 것만으로 그 사람들에게 희망을 느낄 수 있는 힘을 줬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내 생각과 일치하는 사회문제에 대해 행동 지향적 삶을 살 것이다.

꽃들: 당시에는 못 느꼈는데, 돌이켜 보니 여중생 사건 이후로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달라졌다. 그동안 내가 바라는 대로 세상에 외치고 그것이 받아들여 질것이란 이상주의를 갖고 있었다면 현실은 많이 다르다는 걸 경험했다. 그래서 한편으론 정치 사회문제에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다수의 사람이 동의하는, 정의로운 일이라도 현실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솔직히 첫 촛불집회의 경험이 다소 큰 충격으로 남았지만, 사회문제에 체념하고 방관할 정도는 아니다. 그때 중2의 어린 나이라 가치관의 혼란이 많았는데, 내 고민을 털어놓고 조언해줄 사람이 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5.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우리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뭐라고 보나?

혜경: 불평등한 한미관계가 가장 큰 문제인 것 같다. 2002년에도 두 여중생이 무참히 죽었는데도 제대로 사과도 못 받고, 정부에서도 미온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나? 이라크 파병 때도 국민의 반대 목소리가 더 컸는데, 김선일 씨의 죽음을 보고도 파병을 철회하지 않은 것은 미국과의 관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한미FTA를 보면서도 많이 느꼈다.

6. 마지막으로 미선이 효순이 5주기 추모제를 앞두고…

혜경: 추모제에 참석하기 전에 사건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갔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너무 많은 생각을 할 필요는 없다. 현장에서 보고 느끼면서 배우는 것도 많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집회에 대한 부담과 선입견을 갖고 있는데, 사회나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집회나 시위는 참여해서는 안된다 식으로 교육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저 사회참여의 일부라고 생각했으면 한다.

꽃들: 개인적인 바램은 5년 전처럼 심적 충격을 받을 무력충돌은 없었으면 좋겠다. 오랜만에 집회에서 미선이 효순이 만나면 눈물이 날 것 같다.

김지훈 기자 news-1318virus@hanmail.net
ⓒ2007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즐겨찾기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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