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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과학기술이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등록 2007-09-30 14:35수정 2007-09-30 14:44

박용성 교사의 인문사회 비타민
박용성 교사의 인문사회 비타민
박용성 교사의 인문사회비타민 /

[난이도 = 고등]

교과서 훑어보기

환경 문제는 이제 인간의 생존마저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환경 문제는 인간의 가치 위기와 밀접히 관련된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환경 문제는 전적으로 인간의 책임이며, 근본적으로 우리의 그릇된 가치관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도덕>(교육인적자원부) 27쪽

올바른 환경 윤리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환경에 도덕적으로 배려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멸종 위기의 생물을 보호하는 것도 환경 윤리일 수 있다. 생태계는 상호 의존적이기 때문에 한 종의 멸종은 다른 종의 멸종을 초래하게 되기 때문이다. ―<생태와 환경>(교학사) 209쪽


교과서에서 논제 찾기

쉘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동화를 읽어 본 적이 있어? 소년은 어린 시절에는 나무와 친구처럼 즐겁게 지내지.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소년은 나무 열매를 따다가 돈을 만들기도 하고 가지를 잘라다 집을 짓기도 하였으며, 끝내는 나무 줄기를 통째로 베어다 배를 만들었어.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난 뒤 노인이 되어서 돌아온 소년에게 나무는 피곤에 지친 몸을 쉬도록 마지막 남은 그루터기까지 내 주지. 이 동화는 자연 환경이 인간에게 주는 혜택과, 인간이 자연 환경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 왔는지를 잘 보여 줘.


인류 문명은 근대 과학의 발달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야.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이르러서 과학 기술을 바탕으로 해서 보다 나은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생각은 점차로 그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어. 자연을 인위적으로 조작해서 인간에게 유익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과학 기술은 20세기에 이르러서 본래 의도와는 달리 환경 파괴라는 심각한 문제를 만들어 냈기 때문이야. 그런데 환경 문제를 분석하는 서로 다른 입장인 기술 지향주의와 생태 지향주의는 바로 이 지점에서 대립각을 세우고 있지.

기술 지향주의의 입장에서 볼 때, 과학 기술은 자연의 보편적인 원리와 법칙을 파헤치고 이를 조절하고 통제하는 힘이야. 인간의 물질적인 욕구 충족이 우선이고 환경 보존이나 자연의 생물학적 권리는 부차적이기에, 문명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생태계의 파괴나 환경 악화는 어쩔 수 없다는 태도이지. 과학 기술의 발달이 오늘날의 환경 문제를 낳았다 하더라도, 환경 문제는 과학을 더욱 더 폭넓게 이용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는 거야. 즉, 환경 오염 방지를 위한 과학 기술이 발전한다면, 인간은 자신의 목적에 따라 자연을 적절히 제어할 수 있다면서 인간의 자연에 대한 지배 행위를 정당화하지.

기술 지향주의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전략이기는 하나, 문제가 많아. 흔히들 말하는 친환경적인 기술이 개발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과학 기술의 이전 범위에서 예측할 수 없던 새로운 환경 파괴를 야기하기 십상이거든. 환경에 위협이 되는 요인들이 과학 기술의 발전을 통해 감소되기는커녕 더욱 증가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잖아. 마치 유전 질환을 치유하기 위해 개발된 유전 공학 기술이 장기 생산이나 인간 복제와 관련된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 내듯이 말이야.

이와는 달리 생태 지향주의는 자연과 인간이 하나의 생물권을 구성하는 동등자라는 생태적 자각에서 출발해. 그리고 과학 기술이란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 근본적으로 인공적인 것이기에, 자연 생태계의 질서에 위협을 가하는 것으로 간주하지. 인간과 마찬가지로 동물과 식물 그리고 무생물에도 ‘생명’이 있고, 따라서 자연에 대해 인위적인 조작을 가하는 과학 기술이란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해롭기까지도 하다는 거야.

하지만 생태학적 관점에 대한 비판 또한 만만치 않아. 우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예전의 농경 사회에 비해 매우 다른 생활 수준을 누리고 있기에 자연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거야. 사실, 오늘날과 같이 발전한 문명을 과거로 되돌리는 일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불가능해. 생태학적 관점에 대해 현실에 맞지 않는 관념적이고 낭만적인 발상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까닭이 여기에 있어. 기술 문명을 전적으로 거부한다면 우리는 다시금 미몽(迷夢)과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리라는 거지.

그렇다고 다시 과학 기술주의에 몸을 기댈 수 없잖아. 그래서 우리는, 생태 지향적 관점과 기술 지향적 관점을 서로 보완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되지. 생태계 안에 있는 개체의 특성이나 물질을 탐구하는 경우, 여전히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합리적인 과학 기술은 필요해. 기술 지향적 태도를 버릴 수는 없다는 거야. 하지만, 거시적으로 인간과 자연 생태계 사이의 조화 문제를 생각하는 경우에는 생태 지향적 태도가 절실하게 요청되지. 인간이 자연을 생태학적 관점으로 바라보지 않을 때 빚어진 참상을 우리는 날마다 목격하고 있기 때문이야. 결국 탐구의 목적과 대상이 무엇인가에 따라, 기술 지향적 태도와 생태 지향적 태도의 유연한 절충이 필요하다는 거야.

그래서 대부분의 환경 운동 단체들도 환경과 개발의 관계를 조화와 균형의 관계로 바라보고 있어. 성장과 개발 위주의 환경 문제 인식은 문제의 성격을 편협하게 바라보기 때문에, 사회적 차원의 공동 노력을 모아 냄으로써 성장 지상주의, 개발 지상주의를 환경의 유지와 보호라는 방향에서 통제해 내야 한다는 거야. 이는 성장과 개발을 전적으로 부정하지는 않되, 환경 위기의 극복을 위한 노력이 우선되어야 하며, 그 속에서 성장과 개발이 추구되어야 한다는 견해이지. 곧, 가난한 사람들의 기술적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경제 개발은 계속하되 이 같은 개발이 생태계의 수용 능력, 즉 환경 용량을 초과해서는 안 된다는 거야. 하지만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야.

<교과서와 함께 구술 논술 뛰어넘기> 저자, 여수여고 교사

위 논제와 관련된 기출 문제(2003학년도 경희대 논술 문제)는 인터넷 한겨레(www.hani.co.kr)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본지에 연재되고 있는 기출 문제에 대한 박용성 선생님의 동영상 강의는 전라남도교육정보원(www.jnei.or.kr)에 들어가 ‘인터넷교육방송→고교논술→실전논술’을 검색하면 무료로 들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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