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가 확 풀렸다고요? 우리도 ‘슬럼프’ 가 있어요
커버 스토리 / 부모가 오해하기 쉬운 청소년들의 ‘슬럼프’
“5월에 언어영역 점수가 20점 떨어지더니 6월에는 시험이 쉬웠는데도 10점 더 떨어졌어요. 그 이후 수업시간에나 자습시간에 문제를 풀어보면 터무니없는 점수가 나왔어요. 슬럼프란 것을 느끼게 됐어요. 문제만 보면 혐오감이 생기고 공부할 의욕이 사라졌어요.” 수능을 코앞에 둔 고3 수험생 김아무개(18·경기 일산)군의 고백이다.
청소년에게도 ‘슬럼프’가 있다. 불현듯 만사가 다 귀찮고 훌쩍 떠나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 어른들처럼 청소년들에게도 그런 시기가 더 잦게 찾아온다. 하지만 부모들의 반응은 대개 무성의하다. 자녀가 이런저런 이유로 겪는 ‘위기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이다.
<함께하는 교육>이 <엄마가 나서면 사춘기에도 성적이 오른다>의 저자 정순중(가톨릭대 부설 아동·청소년·가족 상담센터 상담원)씨의 도움을 얻어 자녀의 슬럼프에 대한 부모의 오해를 꼽아 봤다. 청소년 카페 수만휘(www.sumanhui.com) 회원 36명과 진행한 서면 인터뷰가 바탕이 됐다.
◆첫번째 오해 “공부만 하면 되는데 무슨 슬럼프야”? 부모들은 공부에 대해 ‘열심히만’ 하면 되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학생들의 현실은 다르다. 학생들은 시험의 형태로 늘 ‘평가’ 당한다. 때로 결과는 노력을 배반하고 학생들은 공부해도 ‘안 된다’는 좌절을 경험한다. 서면조사 결과를 보면, 시험이 끝난 뒤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로 슬럼프에 빠진 적이 있다고 대답한 응답자가 20명(55%), 시험 전후로 항상 슬럼프를 느낀다는 응답자가 10명(27%)이었다. 고2 한지수(17·서울 도봉)양은 “1년에 모의고사 네 번, 내신시험 네 번을 합해 여덟 번의 시험을 치르는데 그때마다 슬럼프가 온다”며 “시험을 치르기 며칠 전과 성적표가 나온 며칠 후까지 무기력한 상태가 지속된다”고 했다. 정순중씨는 “‘반드시 대학에 가야 한다’는 책임감은 어른들이 회사나 가정에서 부여받는 책임감 만큼이나 무겁다”며 “어른에 못지 않은 긴장과 불안을 견디고 실패를 경험하는 청소년들도 슬럼프에 빠질 수 있음을 부모가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두번째 오해 “공부 못하는 애들이 슬럼프 운운한다”? 학생들은 ‘슬럼프’가 공부 못하는 아이들의 ‘핑계’라는 편견 탓에 마음 놓고 털어놓지도 못한다. 슬럼프에 빠졌다는 사실을 부모에게 말한다는 응답자는 11명(30%)에 그쳤고, 나머지 25명(70%)은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안재현(18)군은 “평소에 부모님과 대화가 별로 없는 데다 부모님이 엄해서 슬럼프 얘기를 꺼내면 혼나고 실망만 안겨 드릴 것 같아서 그냥 아닌 척 하게 된다”고 했다. 많은 응답자들이 슬럼프에 빠졌을 때 혼자서 견디면서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다(12명·33%)고 답했다. 특히 자신보다 성적이 오른 친구나 공부를 잘하는 친구는 만나고 싶지 않다(11명·30%)고 했다. 정순중씨는 “우리 학생들은 학교에서 늘 성적을 기준으로 인격까지 평가받는다”며 “부모나 교사가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로 인격을 무시할 경우 학생들은 오로지 성적을 통해서만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하려 애쓰게 되고 떳떳하게 자신의 ‘위기’를 인정할 수 없게 된다”고 했다. 부모가 자녀의 슬럼프를 함부로 대하면, 자녀는 자신의 심리적 불안이나 긴장을 ‘나쁜 것’으로 여긴다.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슬럼프는 만성화되고 성적의 발목을 잡는다. 부모의 ‘조력’을 제대로 받지 못해 슬럼프를 극복하지 못하면 ‘공부도 못한다.’ ◆세번째 오해 “슬럼프를 인정해 주면 나약해진다”? 학생들이 슬럼프를 극복하는 데 부모들의 구실은 너무 없다. 22명(61%)의 학생들이 혼자서 슬럼프를 극복한다고 답했다. 2명(5%)만이 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슬럼프라는 것을 눈치채는 부모님은 14명(39%)정도였다. 그러나 응답자들의 대부분은 부모님의 작은 이해와 공감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고3 황아무개(18·경기 수원)양은 “슬럼프를 겪는 시기에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진심으로 응원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려한 한 여학생은 “‘요즘 무슨 일 있니?’라는 따뜻한 말 한마디면 족하다”고 했다. 청소년은 독립십을 키우지만 본질적으로 부모에 대한 의존성향을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과도기’에 있다. 정서적으로 매우 불안한 ‘사춘기’를 보내는 청소년은 여전히 부모의 든든한 후원과 지지를 필요로 한다. 정순중씨는 “실망이나 좌절의 경험은 관계속에서 따뜻하게 보살핌을 받아야 건강하게 극복할 수 있다”며 “자녀의 일탈행동에 대해서는 따끔하게 비판하되 슬럼프에 빠진 자녀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고 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자녀가 슬럼프에 빠졌을 땐
잔소리 대신 ‘대화’ 하세요
자녀가 늘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자녀들은 성장하는 내내 부모의 가슴을 졸인다.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갑자기 늘어난 학업량을 감당하지 못해 슬럼프에 빠지는 자녀들이 그렇다. 독립심을 키워가는 이 시기의 아이들은 부모의 과도한 관심을 꺼리지만 부모로서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일이다. 지혜롭고 똑똑한 부모의 자녀 슬럼프 관리법은 무엇일까.
우선 자녀의 상태를 세심하게 확인하는 일이 중요하다. 청소년기 자녀들은 대개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감정적인 변화들을 먼저 말하기를 꺼려하면서도 내심 부모들이 먼저 알아 은근히 챙겨주기를 바란다. 재수 중인 박소라(19)양은 “너무 호들갑스럽게 챙겨 주는 것도 아주 무심하게 내버려 두는 것도 안 좋고 평소에 대하는 것보다 약간 더 자상하게 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자녀가 도움을 간절히 원하는 상태인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부모의 감각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슬럼프를 혼자 극복하려는 자녀는 다양한 시도를 하기 때문에 조금만 신경쓰면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 36명의 서면 조사 결과에 따르면, 15명이 노래방이나 놀이공원 등 기분전환을 위한 오락을 즐긴다고 했고 12명은 잠을 많이 잔다고 답했다. 슬럼프에 빠지면 두통을 겪거나 장염을 앓는 등 병을 동반하는 경우도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
이유없이 짜증 내고 화낼땐
도움 원하는지 심리 살펴야
명령·훈계조는 마음 못 돌려 물론 가장 간단히 알아차릴 수 있는 방법은 ‘대화’를 통해서다. <엄마의 말이 아이의 미래를 결정한다>의 저자 박동주씨는 “아이들은 슬럼프에 빠지면 짜증을 내고 이유없이 화를 내기도 한다”며 “부모와 자녀가 늘 대화한다면 아이들의 심리적 변화를 알아차리기 쉽다”고 했다. 대화를 통해 용기를 북돋워 주는 것은 자녀가 슬럼프를 극복하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박씨는 “부모는 애정을 담아 말하지만 그 시기의 자녀에게는 모두 잔소리로 들린다”며 “말을 듣지 않는 자녀를 탓하기 앞서 부모 스스로 말하는 방식을 점검하고 ‘좋은 잔소리’를 개발한다면 부모와 대화하기 싫어하는 자녀의 마음을 돌릴 수 있다”고 했다. 박씨가 꼽은 아이들이 싫어하는 말로는 ‘보나마나 네가 하는 일은 뻔하지’라고 단정짓는 말, ‘넌 정말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아이구나’라고 포기하는 말, ‘어휴, 내가 너 때문에 못 산다’라고 푸념하는 말, ‘너는 왜 그것밖에 안 되니?’라고 무시하는 말, ‘다른 애들은 잘도 하는데 너는 왜 그 모양이야?’라고 비교하는 말 등이 있다. <엄마가 나서면 사춘기에도 성적이 오른다>의 저자 정순중씨는 “청소년기의 자녀에게는 명령, 훈계, 충고 등 ‘닫힌 질문’이 좋지 않다”며 “청소년기는 생각과 행동의 가능성이 큰 시기이므로 자녀가 자신의 감정과 느낌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도록 ‘열린 질문’을 해야 한다”고 했다. 예를 들어, ‘어떤 것을 원하니’, ‘어떤 게 필요하니’, ‘어떤 게 네게 도움이 될까’, ‘무엇이 널 힘들게 하니’ 등 육하원칙을 활용한 질문을 하고 자녀가 대답을 했을 경우 ‘그랬구나’라는 공감의 표현을 적극적으로 해주는 것이 좋다는 얘기다. 정순중씨는 “신혼기, 자녀 유아기, 자녀 아동기, 자녀 청소년기, 진수기 등으로 진행되는 가족 발달 단계에서 자녀 청소년기는 부모도 30대에서 중년으로 접어드는 때다”며 “자녀의 성장 단계에 맞춰 부모의 구실이 어떻게 변화하면 좋을지에 대한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난 이렇게 극복했다” 선배들의 경험담
‘난 할 수 있어’ 일기쓰며 자기격려
‘나를 알아야 슬럼프를 이긴다!’
슬럼프를 극복하는 데 원칙은 없다. 개인의 특성에 맞는 슬럼프 극복법을 찾으면 누구나 쉽게 ‘침체기’를 벗어날 수 있다. 학습지 <케이스>에서 대학생 멘토로 활동하고 있는 주향아(21·연대 국어국문)씨와 유진형(20·고대 경영)씨는 스스로 찾은 슬럼프 극복법의 효과를 톡톡히 봤다고 한다. 슬럼프에 빠진 수험생들에게 훌륭한 자극제가 될 대학생 선배의 경험담을 들어보자.
성격이 다른 유씨와 주씨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슬럼프를 해소하고자 애썼다. 유씨는 고3 들어 처음 치른 시험의 성적이 기대 이하였다. 부모님과 선생님의 실망이 대단했고 스스로도 견디기가 힘들었다.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의 유씨는 그때부터 일기를 썼다.
무엇이 힘든지, 이런 상황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는지 솔직하게 적어 내려갔다. 긍정적인 글귀를 적어 ‘나는 할 수 있다’는 자기 암시를 줬다. 모의고사를 치르는 날 아침에는 꼭 일기를 써 ‘잘 할 수 있다’는 암시를 준 뒤 시험을 봤다. 유씨는 “가끔 힘들 때 내가 일기에 적어뒀던 글귀를 읽거나 다짐을 상기하면 의욕이 솟았다”며 “수능날 아침에도 똑같이 용기를 주는 글을 쓰고 갔다”고 했다.
반면 주씨는 좀더 활동적인 방법을 찾았다. 비효율적인 공부를 하느니 하루를 과감히 슬럼프 탈출에 투자했다. 연극 보는 것을 좋아해 대학로로 나갔다. 우울하고 복잡한 연극보다 가볍게 웃을 수 있는 재미있는 연극을 선호했다. 다녀와서는 감상문을 꼬박꼬박 썼다. 감상문 모집에 응모해 당선된 적도 있고, 받은 상품으로 또다른 연극 관람의 기회를 얻기도 했다. 주씨는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한 경험은 공부에 다시 매진할 에너지를 줬다”며 “그렇게 얻은 에너지는 결국 수시 면접 때도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했다”고 했다. 면접 때 연극 관람 경험을 말하는 주씨를 보고 면접 교수들이 ‘밝은 성격을 지녔다’며 칭찬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자신의 슬럼프를 정확히 인식하되 과장하면 안된다고 조언했다. 유씨는 “힘들고 지쳐서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슬럼프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친구들이 있었다”며 “슬럼프로 인해 자신이 해결해야 할 문제를 발견할 수도 있기 때문에 슬럼프를 꼭 나쁘게 볼 일은 아니다”고 했다. 주씨는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그때 왜 그런 것을 갖고 고민했지’ 하게 되는 일이 있다”며 “자신이 처한 상황을 객관화시키면 뜻밖에도 단순하게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주씨는 자신의 문제를 진짜 ‘문제’로 만들어 서술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방법이 된다고 소개했다.
슬럼프를 극복하자면 무엇보다 ‘포기’와 ‘체념’을 멀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주씨는 내신 성적에 비해 모의고사 성적이 좋지 않아 슬럼프를 맞았을 때 찬찬히 모의고사 문제를 풀어본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주씨는 “섣불리 답을 찾기보다 문제를 꼼꼼히 읽다보니 수능의 성격을 이해할 수 있었다”며 “그 이전에는 교과서와 수능은 별개라고 생각했는데 문제에 교과서 내용이 다 들어 있었다”고 했다. 효과는 쉽게 나타나지 않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참았다. 3등급이 나오던 외국어 영역과 4등급까지 나왔던 사회탐구 영역은 이런 방법을 통해 3학년이 되어 등급이 상승했다. 성적이 슬럼프의 원인이 될 경우 근본적인 해소를 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음을 미리 염두에 둬야 한다는 것이다.
여학생들은 생리기간에 특히 슬럼프를 경계해야한다. 주씨는 “앉아 있지도 못할 만큼 생리통이 심해 아예 생리가 있는 기간에는 공부량을 좀 줄이고 쉬는 편이었다”며 “내 몸과 마음의 상태를 살피면서 유연하게 공부하면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첫번째 오해 “공부만 하면 되는데 무슨 슬럼프야”? 부모들은 공부에 대해 ‘열심히만’ 하면 되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학생들의 현실은 다르다. 학생들은 시험의 형태로 늘 ‘평가’ 당한다. 때로 결과는 노력을 배반하고 학생들은 공부해도 ‘안 된다’는 좌절을 경험한다. 서면조사 결과를 보면, 시험이 끝난 뒤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로 슬럼프에 빠진 적이 있다고 대답한 응답자가 20명(55%), 시험 전후로 항상 슬럼프를 느낀다는 응답자가 10명(27%)이었다. 고2 한지수(17·서울 도봉)양은 “1년에 모의고사 네 번, 내신시험 네 번을 합해 여덟 번의 시험을 치르는데 그때마다 슬럼프가 온다”며 “시험을 치르기 며칠 전과 성적표가 나온 며칠 후까지 무기력한 상태가 지속된다”고 했다. 정순중씨는 “‘반드시 대학에 가야 한다’는 책임감은 어른들이 회사나 가정에서 부여받는 책임감 만큼이나 무겁다”며 “어른에 못지 않은 긴장과 불안을 견디고 실패를 경험하는 청소년들도 슬럼프에 빠질 수 있음을 부모가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두번째 오해 “공부 못하는 애들이 슬럼프 운운한다”? 학생들은 ‘슬럼프’가 공부 못하는 아이들의 ‘핑계’라는 편견 탓에 마음 놓고 털어놓지도 못한다. 슬럼프에 빠졌다는 사실을 부모에게 말한다는 응답자는 11명(30%)에 그쳤고, 나머지 25명(70%)은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안재현(18)군은 “평소에 부모님과 대화가 별로 없는 데다 부모님이 엄해서 슬럼프 얘기를 꺼내면 혼나고 실망만 안겨 드릴 것 같아서 그냥 아닌 척 하게 된다”고 했다. 많은 응답자들이 슬럼프에 빠졌을 때 혼자서 견디면서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다(12명·33%)고 답했다. 특히 자신보다 성적이 오른 친구나 공부를 잘하는 친구는 만나고 싶지 않다(11명·30%)고 했다. 정순중씨는 “우리 학생들은 학교에서 늘 성적을 기준으로 인격까지 평가받는다”며 “부모나 교사가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로 인격을 무시할 경우 학생들은 오로지 성적을 통해서만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하려 애쓰게 되고 떳떳하게 자신의 ‘위기’를 인정할 수 없게 된다”고 했다. 부모가 자녀의 슬럼프를 함부로 대하면, 자녀는 자신의 심리적 불안이나 긴장을 ‘나쁜 것’으로 여긴다.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슬럼프는 만성화되고 성적의 발목을 잡는다. 부모의 ‘조력’을 제대로 받지 못해 슬럼프를 극복하지 못하면 ‘공부도 못한다.’ ◆세번째 오해 “슬럼프를 인정해 주면 나약해진다”? 학생들이 슬럼프를 극복하는 데 부모들의 구실은 너무 없다. 22명(61%)의 학생들이 혼자서 슬럼프를 극복한다고 답했다. 2명(5%)만이 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슬럼프라는 것을 눈치채는 부모님은 14명(39%)정도였다. 그러나 응답자들의 대부분은 부모님의 작은 이해와 공감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고3 황아무개(18·경기 수원)양은 “슬럼프를 겪는 시기에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진심으로 응원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려한 한 여학생은 “‘요즘 무슨 일 있니?’라는 따뜻한 말 한마디면 족하다”고 했다. 청소년은 독립십을 키우지만 본질적으로 부모에 대한 의존성향을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과도기’에 있다. 정서적으로 매우 불안한 ‘사춘기’를 보내는 청소년은 여전히 부모의 든든한 후원과 지지를 필요로 한다. 정순중씨는 “실망이나 좌절의 경험은 관계속에서 따뜻하게 보살핌을 받아야 건강하게 극복할 수 있다”며 “자녀의 일탈행동에 대해서는 따끔하게 비판하되 슬럼프에 빠진 자녀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고 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나사가 확 풀렸다고요? 우리도 ‘슬럼프’ 가 있어요
도움 원하는지 심리 살펴야
명령·훈계조는 마음 못 돌려 물론 가장 간단히 알아차릴 수 있는 방법은 ‘대화’를 통해서다. <엄마의 말이 아이의 미래를 결정한다>의 저자 박동주씨는 “아이들은 슬럼프에 빠지면 짜증을 내고 이유없이 화를 내기도 한다”며 “부모와 자녀가 늘 대화한다면 아이들의 심리적 변화를 알아차리기 쉽다”고 했다. 대화를 통해 용기를 북돋워 주는 것은 자녀가 슬럼프를 극복하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박씨는 “부모는 애정을 담아 말하지만 그 시기의 자녀에게는 모두 잔소리로 들린다”며 “말을 듣지 않는 자녀를 탓하기 앞서 부모 스스로 말하는 방식을 점검하고 ‘좋은 잔소리’를 개발한다면 부모와 대화하기 싫어하는 자녀의 마음을 돌릴 수 있다”고 했다. 박씨가 꼽은 아이들이 싫어하는 말로는 ‘보나마나 네가 하는 일은 뻔하지’라고 단정짓는 말, ‘넌 정말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아이구나’라고 포기하는 말, ‘어휴, 내가 너 때문에 못 산다’라고 푸념하는 말, ‘너는 왜 그것밖에 안 되니?’라고 무시하는 말, ‘다른 애들은 잘도 하는데 너는 왜 그 모양이야?’라고 비교하는 말 등이 있다. <엄마가 나서면 사춘기에도 성적이 오른다>의 저자 정순중씨는 “청소년기의 자녀에게는 명령, 훈계, 충고 등 ‘닫힌 질문’이 좋지 않다”며 “청소년기는 생각과 행동의 가능성이 큰 시기이므로 자녀가 자신의 감정과 느낌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도록 ‘열린 질문’을 해야 한다”고 했다. 예를 들어, ‘어떤 것을 원하니’, ‘어떤 게 필요하니’, ‘어떤 게 네게 도움이 될까’, ‘무엇이 널 힘들게 하니’ 등 육하원칙을 활용한 질문을 하고 자녀가 대답을 했을 경우 ‘그랬구나’라는 공감의 표현을 적극적으로 해주는 것이 좋다는 얘기다. 정순중씨는 “신혼기, 자녀 유아기, 자녀 아동기, 자녀 청소년기, 진수기 등으로 진행되는 가족 발달 단계에서 자녀 청소년기는 부모도 30대에서 중년으로 접어드는 때다”며 “자녀의 성장 단계에 맞춰 부모의 구실이 어떻게 변화하면 좋을지에 대한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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