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호의 교실 밖 국어여행
김철호의 교실 밖 국어여행 / 난이도 중2~고1
2. 살아 있는 말이 ‘표준어’다
3. 띄어쓰기를 얕보지 말라 ①
4. 띄어쓰기를 얕보지 말라 ② 한동안 서울의 사직터널에 이런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터널안굽은길’. 터널 안의 도로가 굽었으니 조심해서 운전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보다시피 띄어쓰기를 하지 않으니 터널 안의 길이 똑바르다는 말처럼 들린다.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셨다’를 ‘아버지가방에들어가셨다’로 적어서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셨다’로 읽게 되는 경우와 마찬가지다. 띄어쓰기는 중요하다. 띄어쓰기가 제대로 돼야 뜻이 올바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글 맞춤법>이 권하고 있는 대로, 글을 쓸 때에는 각 단어를 구별해서 띄어 쓰는 것이 좋다. 여기까지는 쉽다. 그런데 이제 진짜 어려운 문제가 남아 있다. ‘단어’가 과연 뭐냐 하는 것이다. 문제를 내겠다. ‘겨울방학’은 한 단어인가, 두 단어인가? 한 단어라면 ‘겨울방학’으로 붙여 써야 하고, 두 단어라면 ‘겨울 방학’으로 띄어 써야 한다. 자, 여러분이 사전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이것을 띄겠는가, 붙이겠는가? ‘단어’가 그리 만만한 개념이 아니라는 점을 좀더 살펴보자. ‘나다’는 한 단어다. ‘가다’도 한 단어다. 그렇다면 ‘나가다’는? ‘들다’나 ‘오다’나 다 한 단어다. 그렇다면 ‘들어오다’는? ‘걷다’와 ‘가다’를 합친 ‘걸어가다’는 사전에 올라 있다. 한 단어로 인정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걸어다니다’는 사전에 없다. 혹 있더라도 ‘걸어 다니다’로 띄어 쓴다. 두 단어라는 말이다. 그래서 ‘걷다’와 ‘다니다’를 따로따로 찾아서 두 가지 설명을 합쳐야 ‘걸어 다니다’의 뜻을 알아낼 수가 있다.
‘걸어가다’가 한 단어고 ‘걸어 다니다’가 두 단어라는 건 누가 판정하는 걸까? 첫째는 맞춤법 규정을 만들고 손질하는 국립국어원 사람들이다. 둘째는 이 규정을 참고해서 사전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문제는,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 안에서조차 단어를 판정하는 원칙이 분명치 않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문학예술’은 붙여 쓰지만 ‘장편 소설’은 띄어 쓰는 식이다. 가장 ‘표준적’이라는 사전이 이런 마당이니, 시중의 국어사전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만큼 ‘단어’를 규정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국어학자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분분할 정도다. 이제 좀더 복잡한 문제를 내보겠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이런 거짓말을 했다: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개발, 보유하고 있다. 이때 ‘대량살상무기’를 한 군데만 띄어 쓴다면 어디가 가장 좋을까? 몇년 전 한 TV뉴스 자막에서는 이것을 ‘대량 살상무기’로 표현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러면 ‘살상무기’가 ‘대량’이라는 말이니, 딱히 이라크에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닌 것이 되고 만다. 그러니 정답은 ‘대량살상 무기’다. ‘대량으로 살상한다’가 먼저 묶인 다음 ‘무기’를 꾸며주는 구조여야 하기 때문이다. ‘청소년범죄 예방’을 ‘청소년 범죄예방’으로 적어놓으면 청소년이 범죄를 예방한다는 말이 되어버린다. 띄어쓰기 하나가 이렇게 중요한 차이를 낳는다. 띄어쓰기를 얕보면 안 된다. 띄어쓰기는 맞춤법 규정을 달달 외워서 그대로 적용한다고 해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사실, 외우기도 힘들고 그대로 적용하는 일도 만만치가 않다). 띄어쓰기를 잘 하려면 글의 흐름을 꿰뚫고 있어야 한다. 한 ‘단어’는 한 덩어리 ‘의미’이기 때문이다. 띄어쓰기를 잘 하려면 생각이 깊어야 한다. 김철호 <국어실력이 밥 먹여준다> 저자
3. 띄어쓰기를 얕보지 말라 ①
4. 띄어쓰기를 얕보지 말라 ② 한동안 서울의 사직터널에 이런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터널안굽은길’. 터널 안의 도로가 굽었으니 조심해서 운전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보다시피 띄어쓰기를 하지 않으니 터널 안의 길이 똑바르다는 말처럼 들린다.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셨다’를 ‘아버지가방에들어가셨다’로 적어서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셨다’로 읽게 되는 경우와 마찬가지다. 띄어쓰기는 중요하다. 띄어쓰기가 제대로 돼야 뜻이 올바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글 맞춤법>이 권하고 있는 대로, 글을 쓸 때에는 각 단어를 구별해서 띄어 쓰는 것이 좋다. 여기까지는 쉽다. 그런데 이제 진짜 어려운 문제가 남아 있다. ‘단어’가 과연 뭐냐 하는 것이다. 문제를 내겠다. ‘겨울방학’은 한 단어인가, 두 단어인가? 한 단어라면 ‘겨울방학’으로 붙여 써야 하고, 두 단어라면 ‘겨울 방학’으로 띄어 써야 한다. 자, 여러분이 사전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이것을 띄겠는가, 붙이겠는가? ‘단어’가 그리 만만한 개념이 아니라는 점을 좀더 살펴보자. ‘나다’는 한 단어다. ‘가다’도 한 단어다. 그렇다면 ‘나가다’는? ‘들다’나 ‘오다’나 다 한 단어다. 그렇다면 ‘들어오다’는? ‘걷다’와 ‘가다’를 합친 ‘걸어가다’는 사전에 올라 있다. 한 단어로 인정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걸어다니다’는 사전에 없다. 혹 있더라도 ‘걸어 다니다’로 띄어 쓴다. 두 단어라는 말이다. 그래서 ‘걷다’와 ‘다니다’를 따로따로 찾아서 두 가지 설명을 합쳐야 ‘걸어 다니다’의 뜻을 알아낼 수가 있다.
‘걸어가다’가 한 단어고 ‘걸어 다니다’가 두 단어라는 건 누가 판정하는 걸까? 첫째는 맞춤법 규정을 만들고 손질하는 국립국어원 사람들이다. 둘째는 이 규정을 참고해서 사전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문제는,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 안에서조차 단어를 판정하는 원칙이 분명치 않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문학예술’은 붙여 쓰지만 ‘장편 소설’은 띄어 쓰는 식이다. 가장 ‘표준적’이라는 사전이 이런 마당이니, 시중의 국어사전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만큼 ‘단어’를 규정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국어학자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분분할 정도다. 이제 좀더 복잡한 문제를 내보겠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이런 거짓말을 했다: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개발, 보유하고 있다. 이때 ‘대량살상무기’를 한 군데만 띄어 쓴다면 어디가 가장 좋을까? 몇년 전 한 TV뉴스 자막에서는 이것을 ‘대량 살상무기’로 표현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러면 ‘살상무기’가 ‘대량’이라는 말이니, 딱히 이라크에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닌 것이 되고 만다. 그러니 정답은 ‘대량살상 무기’다. ‘대량으로 살상한다’가 먼저 묶인 다음 ‘무기’를 꾸며주는 구조여야 하기 때문이다. ‘청소년범죄 예방’을 ‘청소년 범죄예방’으로 적어놓으면 청소년이 범죄를 예방한다는 말이 되어버린다. 띄어쓰기 하나가 이렇게 중요한 차이를 낳는다. 띄어쓰기를 얕보면 안 된다. 띄어쓰기는 맞춤법 규정을 달달 외워서 그대로 적용한다고 해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사실, 외우기도 힘들고 그대로 적용하는 일도 만만치가 않다). 띄어쓰기를 잘 하려면 글의 흐름을 꿰뚫고 있어야 한다. 한 ‘단어’는 한 덩어리 ‘의미’이기 때문이다. 띄어쓰기를 잘 하려면 생각이 깊어야 한다. 김철호 <국어실력이 밥 먹여준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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