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원 시인의 교과서 미술기행
정지원 시인의 교과서 미술기행 / [난이도 = 고등]
박제가의 ‘의암관수도’와 ‘목우도’
서리꽃 하얗게 뒤집어쓰고 맵짠 겨울을 나던 나무들도 밑동부터 봄물이 오른다. 언 강물이 스르르 풀리고 빛들이 산란하는 바로 그때. 사람이 애타게 부르지 않아도 봄은 알아서 온다. 그러면 일제히 기다렸다는 듯이 해금소리 같은 미풍에도 꽃망울들이 아이들 웃음소리처럼 밝게 터진다. 겨울은 닫힌 시간이다. 겨울의 이미지는 삭막하고 가파르며 고독하다. 그래서 겨울에는 사람도 풍경도 헐벗었다. 그나마 함박눈이라도 내리지 않는다면 제 체온을 유지하기에 급급한 세상이 얼마나 황량할까. 하지만 이 춥고 지루한 성장통과 같은 겨울이 봄과 맞닿아 있다는 것은 큰 위안이 된다. 조급함 없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 우리는 그걸 순리라고 불렀다. 그 순리를 풀어내다보면 철학과 만나고 경제학과 만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박제가와 그의 친구들이 만나고 싶었던 세상도 겨울을 이겨낸 맑은 봄날의 풍경이었다. 당시의 기득권자인 양반들은 실학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진보적인 꿈은 오늘날까지 뜨겁게 우리의 가슴에 살아있다.
총량만을 염두에 둔 경제는 가장 경계해야 할 이 시대의 독소조항이다. 물론 먹고 사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시해야 할 것은 그 과정이 얼마나 도덕적이며, 경제 성장의 결과가 어떤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는가 하는 점이다. 조선 후기, 더 많은 사람들이 잘 살기 위한 방법론이 정치적 공리공담에 밀려 도외시되는 현실을 개탄하며 실학자들은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모색했다. 사림들은 겉으로는 도덕정치를 주장하면서도 고작 개인의 문장을 세상에 알려서 명망을 얻는 것에 불과했기에 실패한 정치철학의 한계를 드러냈지만, 실학자들은 부조리한 현실을 진단하고 그 가운데 인간으로서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는 시대적 화두를 던졌다.
지금도 그렇다. 모든 것의 상위개념으로 경제가 이야기된다. 경제 발전만 허용된다면 어떤 부도덕한 방식도 그냥 수용할 듯 보이는 이 위태로운 세태에 박제가 같은 올곧은 개혁가들의 고뇌가 죽비처럼 일침을 놓는다.
‘정말 세워야 하는 판단 준거’는 인간다움을 전제로 한다는 당연한 순리를 제시한다. 박제가를 만나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의 땀과 노고가 제대로 된 대접을 받고, 그 노동에 희망을 거는 경제정의의 개념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초정 박제가는 시(詩),서(書),화(畵)에 빼어난 사람이었다. 성정이 곧고 단호했으며 쉽게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고집스런 인물이었다. 박제가는 비정한 세상 속에서도 뜻을 함께 한 젊은 날의 벗들이 있어서 힘겨운 시절들을 버텨나갈 수 있었다. ‘의암관수도’에는 그가 지향하는 담백한 세상이 세 명의 벗과 함께 듣는 특별한 물소리와 바위, 소나무로 상징되고 있다. 바위와 소나무는 가난한 이덕무를 위해 아끼던 책들을 팔아 서재 한 칸을 마련해 주던 벗들의 우정을 닮았다. 맑게 흐르는 물에 귀 기울이며 한 세상 살아가자고 다짐했던 사람들.
그들의 공동체 의식은 가난한 백성들의 삶을 세심히 살피고 꼼꼼히 대안을 마련하자는 결의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지. 경쟁하지 않고 서로 빼앗지 않으며 제 길을 가는 물처럼 세상도 밥그릇에만 목을 매는 경박한 지경이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그림 속에서 향기롭게 살아난다. 나도 박제가의 친구가 되어 물소리를 듣는다.
“‘붉다’는 그 한 마디 글자 가지고/ 온갖 꽃을 얼버무려 말하지 말라./ 꽃술도 많고 적은 차이가 있으니/ 꼼꼼히 다시 한 번 살펴봐야지.”
박제가가 스무 살 초입에 쓴 이 시처럼 ‘목우도’는 싱그럽다. 축축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가 평화로워 보이고 소를 타고 가는 아이의 피리 소리도 정겹다. 설핏 웃는 것 같은 소는 아이의 피리 소리가 마음에 드나 보다. 봄 풍경은 느긋하고 햇살이 가득하다. 새파란 보리밭을 지나온 꽃샘바람이 여백을 메우면 느릿느릿한 소의 걸음도 개울을 지나 집으로 향할 것이다. 노을이 내려올 때까지 소를 타고 가는 아이의 노래는 그치지 않을 것이다. 인간적 세상은 멀리 있지 않다. 다만 우리가 너무 질주하면서 외면하여 멀어진 것뿐이다. 자신 안에 노래를 담고 싶다면 욕심 없이 천천히 여백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내가 박제가를 그리워하듯 우리들의 삶과 꿈을 먼 훗날 누가 봄날의 버드나무처럼 떠올리게 될까?
박제가의 ‘목우도’. 소 타고 가는 아이의 모습과 주변 봄날 풍경이 평화로워 보인다. 욕심 없이 여백을 가지고 사는 삶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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