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희모(49) 교수
이주의 교육테마 / ‘글쓰기 교육 20년’ 정희모 교수 인터뷰
정희모(49) 교수는 1990년부터 연세대에서 대학생들을 상대로 글쓰기 교육을 해왔다. 대학들이 기초 과목으로 글쓰기 강좌를 본격 개설한 것이 불과 몇년 전이라는 점에 비춰볼 때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글쓰기 교육을 해온 그는 이 분야의 선구자인 셈이다. “글쓰기는 읽기, 사고력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사고력을 형성하고 지식을 구성하는 데 핵심적인 구실을 한다”는 게 글쓰기에 대한 그의 철학이다. 그래서 그는 “글쓰기는 모든 학문의 기초를 이룬다”고 주장한다. 지난 14일 오전 연구실에서 이뤄진 인터뷰에서 그는 “수능점수제 전환으로 인해 논술고사를 폐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논술시험이 초·중·고 교육의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왔던 측면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초·중·고 읽기-쓰기 교육 강화 등 긍정적 변화 모두 없애는 결과 빚을 것”
―이명박 정부의 등장으로 수능이 등급제에서 점수제로 바뀌면서 일부 대학들이 논술고사를 폐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그나마 논술고사가 기여한바, 즉 초ㆍ중ㆍ고 교육에서 독서를 강조하고, 자기주도적 학습 능력을 높이려고 하는 등의 긍정적인 변화를 모두 없애는 결과를 빚을 수 있다. 수능만을 가지고 많은 독서를 하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글쓰기 전문가로서 대학의 논술고사 출제ㆍ평가에 관여한 경험에 비춰 볼 때 최근 논술고사 유형의 변화는 어떻게 평가하나. 이른바 ‘고전논술’에서 ‘통합교과형’으로 바뀌었는데?
=장단점이 다 있다. 사고력 측정을 강화했다는 점, 결과뿐만 아니라 과정을 평가할 수 있도록 한 점, 객관적 평가의 가능성을 높인 점 등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통글’이 아니기 때문에 쓰기 능력에 대한 평가는 약화됐다고 볼 수 있다. 글쓰기 능력 가운데 구성 능력을 보는 게 약화됐다는 점도 아쉽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논술고사 문제 유형이 너무 획일화돼 있다는 점이다. 대학마다 똑같은 방식의 문제를 내는 것은 창조적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추는 것을 목표로 하는 글쓰기 교육의 본질과도 어긋난다.
―논술고사가 뛰어난 학생을 선발하는 도구 정도로만 기능하는 것은 문제 아닌가. 글쓰기 시험이 제자리를 잡는다면 고등학교 교육은 물론 초등학교나 중학교의 교육까지도 바꿀 수 있다고 보는데?
=현재의 논술고사가 선발기능에 치우쳐 있는 것은 사실이다. 중ㆍ고등학교에 미치는 교육적 영향력에 대한 관심이 넓어질 필요가 있다. 다양한 문제 유형과 평가 방식을 연구ㆍ개발하는 게 중요하다. 교육부는 논술 문항이나 평가 방법에 대한 연구와 개발에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논술고사는 유치원 때부터 쌓아 온 지적 능력을 총화하는 성격의 시험이어서 단기간에 대비할 수 없다. 그런데 수험생들은 수능시험이 끝나고 한두 달 안에 속성으로 배워서 시험을 치르기도 한다. 실제 논술고사 답안지를 채점해 보면 단기간에 준비한 수험생과 그러지 않은 수험생을 구별할 수 있나? =그렇다. 급하게 준비한 수험생의 글은 티가 난다. 문장을 자연스럽게 만드는 능력이나,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이나 주장을 만들어나가는 능력이 떨어진다. 내용이나 형식이 천편일률적이라는 특징도 있다. 채점자들끼리 하는 말로 표현해 본다면, ‘깊은 맛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논술고사가 대학생들의 글쓰기 실력을 높이는 데도 기여했나? =대학에서도 논술고사를 본 학생 그룹과 그러지 않은 학생 그룹 사이에 글쓰기 능력에 차이가 있는지를 무척 궁금해한다. 그런데 글쓰기를 가르치는 분들의 얘기를 종합해 보면 아무래도 논술고사를 치른 학생들이 글쓰기 능력이 좋다고 한다. ―입학생들의 글쓰기 수준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는 것인가? =그렇다. 아마도 어릴 때부터 읽기와 쓰기 교육이 강조되는 최근의 경향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독서 능력과 글쓰기 능력은 결합돼 있다. 다만, 신입생들을 보면 어려운 내용의 책을 이해하는 독해 능력이 떨어진다. 쉬운 책 위주로 독서를 하고, 다이제스트판을 많이 읽어서 그런 것 같다. 속성 논술학원 효과 있을까?
내용이나 형식 천편일률적 채점자들이 보면 티 난다
외국에선 어떻게 가르치나?
MIT, 4과목 이수해야 졸업시켜…CEO들 성공비결 ‘글쓰기’ 꼽아
잘 쓰려면 뭘 해야 하나?
많이 읽되 기록 남기는 습관을…쓴 뒤엔 다른 사람에게 꼭 보이길 ―글쓰기에 대한 대학생들의 인식은 얼마나 바뀌었나? =사실 ‘교양국어’ 시절에는 학생들의 불만이 많았다. 배울 필요가 없는 것을 억지로 배운다는 인식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글쓰기 교육에 대해서는 다르다. 3, 4학년들은 과목을 개설해 달라는 요구도 한다. 공사나 기업체, 언론사, 법학전문 대학원 등으로 진출하려면 글쓰기를 필수적으로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글을 못 쓰는 학생들의 경우에는 고민이 많다. 상담을 해보면 글을 쓰는 능력이 앞으로의 자기 인생에서 필수능력이라는 점을 깨닫고 있다. 대학에서 이뤄지는 시험이 대부분 글쓰기이기 때문에 글쓰기 능력이 좋으면 전체적인 학업 성적도 좋다고 봐야 한다. ―글쓰기에 대한 수요는 많은데 이를 대학 당국들이 제대로 채워주지 못하는 측면도 있는 것 아닌가? =대학의 인식도 많이 달라졌다. 과거에 글쓰기는 아무나 가르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많았다. 전문적인 교육을 통해 이뤄진다기보다는 책을 많이 읽고, 자기 수련을 하면 잘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글쓰기를 전문 영역으로 인정해 관련 분야 전문가들을 교수로 영입하고 있다. 모든 대학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대학들이 글쓰기 교육을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대학들은 길게는 100년 전부터, 가깝게는 50년 전부터 글쓰기를 체계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경우는 공대지만, 졸업을 하려면 글쓰기 과목을 4과목이나 필수적으로 들어야 한다. 계기가 된 것은 최고경영자(CEO)가 돼 있는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때문이었다. “당신이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가장 중요한 능력은 무엇이었나” 하고 물었더니 “글쓰기”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대부분 리더로 성장할 학생들이고 리더들의 능력 가운데 글쓰기 능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기도 하다. 서울대 이공계도 과학 글쓰기를 필수과목으로 정한 바 있다. 한국 대학들이 글쓰기 교육을 전문적으로 해온 지는 10년도 채 안 됐기 때문에 앞으로 연구해야 할 분야가 많다. ―글쓰기 교육을 비롯해 초ㆍ중ㆍ고 교육의 방향과 관련해서 지적할 수 있는 문제는 무엇인가? =고등학교 때 모범생이었던 학생들이 대학 1학년 때 무척 힘들어한다. 스스로 문제를 찾아 해결하는 공부법에 익숙하지 않아서다. 수능을 도입한 것은 획일화 교육, 암기 위주 교육에서 벗어나도록 하자는 취지였는데, 목적한 바가 아직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학생이 자기 스스로 지식을 구성하는 구성주의 교육방법도 제대로 실현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학생들의 자기주도적 학습능력은 떨어진다. 읽기와 쓰기, 사고력 교육이 통합적으로 이뤄져야 글쓰기가 궁극적으로 좋아질 수 있다. ―글쓰기를 잘하려면 가장 중요하게 기억할 일은 무엇인가? =우선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책을 읽되 기록으로 남기는 습관을 길러줘야 한다. 독서일지 같은 것도 권장할 만하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책을 읽은 뒤에 가벼운 토론을 해보는 것도 좋다. 또 글은 쓰면 쓸수록 늘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많이 써보는 게 중요하다. 쓴 뒤에는 공개해서 다른 사람의 평가를 많이 받아보는 것도 유용하다. 글·사진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현재의 논술고사가 선발기능에 치우쳐 있는 것은 사실이다. 중ㆍ고등학교에 미치는 교육적 영향력에 대한 관심이 넓어질 필요가 있다. 다양한 문제 유형과 평가 방식을 연구ㆍ개발하는 게 중요하다. 교육부는 논술 문항이나 평가 방법에 대한 연구와 개발에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논술고사는 유치원 때부터 쌓아 온 지적 능력을 총화하는 성격의 시험이어서 단기간에 대비할 수 없다. 그런데 수험생들은 수능시험이 끝나고 한두 달 안에 속성으로 배워서 시험을 치르기도 한다. 실제 논술고사 답안지를 채점해 보면 단기간에 준비한 수험생과 그러지 않은 수험생을 구별할 수 있나? =그렇다. 급하게 준비한 수험생의 글은 티가 난다. 문장을 자연스럽게 만드는 능력이나,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이나 주장을 만들어나가는 능력이 떨어진다. 내용이나 형식이 천편일률적이라는 특징도 있다. 채점자들끼리 하는 말로 표현해 본다면, ‘깊은 맛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논술고사가 대학생들의 글쓰기 실력을 높이는 데도 기여했나? =대학에서도 논술고사를 본 학생 그룹과 그러지 않은 학생 그룹 사이에 글쓰기 능력에 차이가 있는지를 무척 궁금해한다. 그런데 글쓰기를 가르치는 분들의 얘기를 종합해 보면 아무래도 논술고사를 치른 학생들이 글쓰기 능력이 좋다고 한다. ―입학생들의 글쓰기 수준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는 것인가? =그렇다. 아마도 어릴 때부터 읽기와 쓰기 교육이 강조되는 최근의 경향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독서 능력과 글쓰기 능력은 결합돼 있다. 다만, 신입생들을 보면 어려운 내용의 책을 이해하는 독해 능력이 떨어진다. 쉬운 책 위주로 독서를 하고, 다이제스트판을 많이 읽어서 그런 것 같다. 속성 논술학원 효과 있을까?
내용이나 형식 천편일률적 채점자들이 보면 티 난다
외국에선 어떻게 가르치나?
MIT, 4과목 이수해야 졸업시켜…CEO들 성공비결 ‘글쓰기’ 꼽아
잘 쓰려면 뭘 해야 하나?
많이 읽되 기록 남기는 습관을…쓴 뒤엔 다른 사람에게 꼭 보이길 ―글쓰기에 대한 대학생들의 인식은 얼마나 바뀌었나? =사실 ‘교양국어’ 시절에는 학생들의 불만이 많았다. 배울 필요가 없는 것을 억지로 배운다는 인식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글쓰기 교육에 대해서는 다르다. 3, 4학년들은 과목을 개설해 달라는 요구도 한다. 공사나 기업체, 언론사, 법학전문 대학원 등으로 진출하려면 글쓰기를 필수적으로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글을 못 쓰는 학생들의 경우에는 고민이 많다. 상담을 해보면 글을 쓰는 능력이 앞으로의 자기 인생에서 필수능력이라는 점을 깨닫고 있다. 대학에서 이뤄지는 시험이 대부분 글쓰기이기 때문에 글쓰기 능력이 좋으면 전체적인 학업 성적도 좋다고 봐야 한다. ―글쓰기에 대한 수요는 많은데 이를 대학 당국들이 제대로 채워주지 못하는 측면도 있는 것 아닌가? =대학의 인식도 많이 달라졌다. 과거에 글쓰기는 아무나 가르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많았다. 전문적인 교육을 통해 이뤄진다기보다는 책을 많이 읽고, 자기 수련을 하면 잘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글쓰기를 전문 영역으로 인정해 관련 분야 전문가들을 교수로 영입하고 있다. 모든 대학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대학들이 글쓰기 교육을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대학들은 길게는 100년 전부터, 가깝게는 50년 전부터 글쓰기를 체계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경우는 공대지만, 졸업을 하려면 글쓰기 과목을 4과목이나 필수적으로 들어야 한다. 계기가 된 것은 최고경영자(CEO)가 돼 있는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때문이었다. “당신이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가장 중요한 능력은 무엇이었나” 하고 물었더니 “글쓰기”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대부분 리더로 성장할 학생들이고 리더들의 능력 가운데 글쓰기 능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기도 하다. 서울대 이공계도 과학 글쓰기를 필수과목으로 정한 바 있다. 한국 대학들이 글쓰기 교육을 전문적으로 해온 지는 10년도 채 안 됐기 때문에 앞으로 연구해야 할 분야가 많다. ―글쓰기 교육을 비롯해 초ㆍ중ㆍ고 교육의 방향과 관련해서 지적할 수 있는 문제는 무엇인가? =고등학교 때 모범생이었던 학생들이 대학 1학년 때 무척 힘들어한다. 스스로 문제를 찾아 해결하는 공부법에 익숙하지 않아서다. 수능을 도입한 것은 획일화 교육, 암기 위주 교육에서 벗어나도록 하자는 취지였는데, 목적한 바가 아직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학생이 자기 스스로 지식을 구성하는 구성주의 교육방법도 제대로 실현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학생들의 자기주도적 학습능력은 떨어진다. 읽기와 쓰기, 사고력 교육이 통합적으로 이뤄져야 글쓰기가 궁극적으로 좋아질 수 있다. ―글쓰기를 잘하려면 가장 중요하게 기억할 일은 무엇인가? =우선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책을 읽되 기록으로 남기는 습관을 길러줘야 한다. 독서일지 같은 것도 권장할 만하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책을 읽은 뒤에 가벼운 토론을 해보는 것도 좋다. 또 글은 쓰면 쓸수록 늘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많이 써보는 게 중요하다. 쓴 뒤에는 공개해서 다른 사람의 평가를 많이 받아보는 것도 유용하다. 글·사진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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