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학생보다 남학생을 더 심하게 체벌하는 것도 남녀공학에 다니는 남학생들의 불만이다. 어느 한쪽도 소외되지 않는 ‘양성평등교육’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진은 벌 받는 학생들. 이정아 기자
커버스토리 /
차별에 노출된 남녀공학 학생들
“차별당해서 억울한 적은 없어요. 남자애들이 가끔 왜 힘든 일은 자기들 시키냐고 하지만 당연히 남자가 여자보다 강하니까 그런 일 하는 게 아니겠어요? 차별없어요.”(남녀공학 여학생)
“심심하면 흑기사 부르고 체육시간엔 남자들이 물뜨러 가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죠. 남자로서 당연한 배려라고 하면 할말 없지만 2년째 이러고 있으니 정말 짜증나요.”(남녀공학 남학생)
남녀공학 학교의 구성원들 사이에 균열의 조짐이 보인다. 양성평등교육을 위해 도입된 남녀공학이지만 학생들은 또다른 ‘차별’에 노출돼 있는 탓이다.
우선 교사들은 남학생과 여학생을 공공연하게 비교한다. 수업 태도에서부터 성적까지 남학생은 여학생에게 늘 ‘뒤지는’ 존재다. 남녀공학에 다니는 ㅇ(17)군은 “실기 시간에 남학생 작품을 여학생 작품과 비교해 무시하는가 하면 아무 생각 없이 여자가 남자보다 낫다는 얘기를 쉽게 하는 선생님들이 많다”고 했다. 이런 말에 사춘기 학생들은 상처를 받고 의욕을 잃는다. ㅂ(18)군은 “여자 반은 수업 태도도 좋고 한데 너희는 왜 그러냐는 선생님의 얘기를 들으면 공부할 마음이 사라진다”고 했다.
일부 남학생들은 최근 나타나는 남학생들의 열세 현상을 교사들의 부당한 편견이 개입된 결과라고 해석했다. 남녀공학에 다니는 ㅎ(17)군은 “꼼꼼하지 못하고 성실하지 못하다고 낙인찍힌 남학생들은 여학생보다 선생님의 눈에 안 띄기 마련이고 교류가 적어져 손해를 볼 때가 많다”고 했다.
교사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나름의 근거를 들어 얘기한다. 3년 전 여고였다가 공학으로 바뀐 서울의 한 고교 교사는 “여학생들만 있을 때는 학교가 조용하고 깨끗했는데 남학생들이 오니 소란스럽고 청소하는 데 손이 많이 간다”며 “남학생들은 대개 산만해서 가르칠 때도 힘이 많이 든다”고 했다.
공학으로 바뀌기 전의 학교가 남고였을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남고에서 공학으로 바뀐 한 학교에서는 입학식에서 남자를 대표로 세우느라 전교 7등이 신입생 선서를 했다. 전교 1등부터 6등까지 전부 여학생이었던 것이다.
성적·태도 등 남학생은 ‘뒤지는 존재’로 비교
학생에게 고정된 성역할 강요하는 것도 문제
남녀의 고정된 성역할이 학교에서 그대로 재생산되는 것도 문제다. 공학에 다니는 ㅅ(18)양은 “선생님들은 물론 여학생들까지 무거운 것을 들거나 책상을 옮기는 건 으레 남자들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게 문제”라며 “여학생들도 그런 일 잘하는데 왜 꼭 남자들만 부르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남녀의 강세가 뚜렷한 교과는 학생들에게 전통적인 성역할을 강요한다. 바느질을 못하는 여학생들은 남자 친구들 앞에서 ‘여자애가 이게 뭐니’라는 교사의 나무람을 들어야 하는 식이다.
남녀공학에서 빚어지는 크고 작은 갈등은 형식에 걸맞은 내용이 채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교단에서 새롭게 만난 성(性)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하고 달라진 제자들의 요구나 필요를 세세히 챙기지 않는다. 정경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양성평등에 관한 교원 연수가 절실하지만 대개는 2~3시간으로 성교육이나 성희롱 예방에 초점을 둔 단편적인 교육이 이뤄지고 만다”고 했다.
부산시교육연수원 관계자는 “성교육 연수는 하지만 양성평등교육만을 위한 연수 프로그램이 열린 적은 없다”면서도 “양성평등을 중시하는 정부 시책에 따라 일반 연수 프로그램에 교수 요목으로 반영해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접할 기회를 갖게끔 만들었다”고 했다. 2007년 서울을 비롯한 6대 광역시의 교육연수원 가운데 성교육 관련 연수를 진행한 곳은 부산시뿐이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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