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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공부하는 이유 알려주는 ‘꿈 길잡이’

등록 2008-04-13 16:59

진로교육에는 우등생과 열등생이 없다. 청소년커리어코치는 좋은 대학과 좋은 직업이 아닌 ‘좋아하는’ 전공과 직업을 찾는 과정에 동행한다. 사진은 진로교육을 하는 정혜령 은평중 청소년커리어코치.
진로교육에는 우등생과 열등생이 없다. 청소년커리어코치는 좋은 대학과 좋은 직업이 아닌 ‘좋아하는’ 전공과 직업을 찾는 과정에 동행한다. 사진은 진로교육을 하는 정혜령 은평중 청소년커리어코치.
[진로교육] 청소년 커리어코치는
교육학 전공자등 전문적 지도에 상담 밀려
서울시 초·중 10%에 배정… 수요 높아져
김찬희(15)군은 꿈이 없었다. 공고에 진학할 계획을 세웠지만 진학이나 진로를 고려한 결정은 아니었다. 그냥 공부가 싫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는 올해 인문계고 진학을 선택했다. 꿈이 생겼고 진로를 설계했기 때문이다. 공부할 목적을 찾은 것이다. 중간고사를 앞둔 요즘 새벽 1시까지 독서실에서 공부한다. ‘극적인’ 변화다. “파일럿이 되고 싶어요. 공군사관학교나 항공대 항공운항과에 갈 거예요.”

김군에게 ‘하늘을 나는 직업’을 가르쳐 준 이는 정혜령 청소년커리어코치다. 그는 2006년 12월 이화여대 경력개발센터가 열었던 ‘제3기 청소년커리어코칭 전문가과정’을 수료하고 오류중학교에서 일했다. 김군을 이곳에서 만났다. 올해는 은평중학교로 옮겨와 3학년 창의재량수업 때 진로교육을 하고 있다. “요즘 아이들은 대개 부모한테 혼나기 싫어서 학원에 다니고 공부를 해요. 맹목적인 공부가 아니라 의욕적인 공부를 하려면 꿈이 있어야 하는데 코치들이 꿈 찾기를 돕는 거죠.” 그의 휴대폰에는 그의 도움으로 꿈을 찾은 제자들의 감사메시지가 빼곡하다.

청소년커리어코치의 진로교육은 얼핏 남다른 데가 없어 보인다. 학생의 성적이 아닌 성격과 인성에 관심과 애정을 주고 새롭고 다양한 직업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정도다. 정씨는 “어떤 학생들은 ‘우리한테 왜 잘해주세요?’라고 묻기도 한다”며 “관심과 애정을 주면 학생들은 스스로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원하는 진로를 개척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청소년커리어코치들의 세심한 ‘진로코치’를 받은 학생들은 스스로 ‘진로의식’을 깨치는 일이 많다. 백댄서를 꿈꾸던 학생이 직접 백댄서를 만나고 직업의 안정성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게 그 사례다. 막연하게 엔지니어가 되고 싶다던 학생은 모터쇼와 수입차 정비공장에 다녀온 뒤로 공고 진학에 확신을 품게 됐다. 학생들은 진로선택을 놓고 벌어지는 부모와의 갈등을 합리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힘을 얻기도 한다.

이런 길잡이 구실이 코치들에게는 수월한 일이지만, 담임교사나 교과담당교사는 하기 어려운 일이다. 3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이진섭 은평중 교사는 “공자가 15살을 지우학(志于學)으로 이른 것처럼 청소년기에 공부의 목적을 찾는 진로 선택이 중요한 것은 교사들도 안다”며 “교과수업 시간에는 진로나 직업에 대한 소개를 하려고 애쓰지만 한계가 있다”고 했다. 김이준 코치(경기여고)는 “진로교육은 분명 학교에서 이뤄져야 하지만 기왕의 학교 구성원들이 떠맡기에는 민감한 부분들이 있다”며 “학생들이 담임교사한테 하는 이야기와 코치한테 하는 이야기는 다르다”고 했다. 진로교육을 전담하는 청소년커리어코치와 같은 ‘전문가’가 필요한 이유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진로교육에서 남다른 교육적 효과를 거두는 힘의 뿌리도 코치들이 지닌 ‘전문성’이다. 대다수가 대학에서 교육학이나 심리학을 전공했고 교사나 상담 경력이 있다. 게다가 이들이 수료해야 하는 교육과정 안에는 ‘수업이 즐거운 재미있는 진로지도기법’, ‘사이버진로상담기술’ 등 교수법과 상담기법에 대한 전문적인 강의가 많다.

진로교육만을 위한 수업과 교사가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학교 현장에는 신선한 바람이 분다. 이달부터 경기여고에서 일하는 김이준 코치는 “수업한 지 한 주 만에 10명이 넘는 학생이 상담을 예약했다”며 “코앞에 닥친 대학이나 전공 결정을 놓고 진로교육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중학생들과는 많이 다르다”고 했다. 특히 진로교육에 관심을 기울이던 학교는 청소년커리어코치를 통해 얻는 바가 크다. 양정순 은평중 진로상담부장교사는 “관련 영상을 보여주고 노트를 따로 만들어 진로상담을 해왔지만 진로교육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늘 부족함을 느꼈다”며 “커리어코치 선생님이 온 뒤로 상담실을 찾는 학생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했다.

진로교육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학교 현장의 요구가 높아지면서 코치들의 활동반경은 점점 넓어진다. 지난해까지 서부교육청과 남부교육청 관할 지역에만 배정되던 것이 올해 서울시 전역으로 확대된 것이다. 현재 청소년커리어코치가 배정된 학교는 서울시 초ㆍ중학교의 10% 정도다. 올해 처음 고교 2곳(경기여고, 광운공고)에도 코치들이 입성했다. 양정순 부장교사는 “커리어코치들은 늘지 않고 배정학교 수만 늘어 올해는 유치경쟁이 치열했다”며 “진로교육 전문가에 대한 교사들의 요구가 높은 만큼 앞으로 코치들의 수도 꾸준히 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글·사진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올해부터 평생교육원에 ‘코치 전문과정’

임금은 서울시에서 지급

청소년커리어코치는 이화여대 경력개발센터가 기왕의 커리어코치 개념을 청소년 진로교육으로 확대하면서 생겼다. 김혜자 이화여대 평생교육원 커리어코치 운영위원은 “4학년 졸업생들과 취업 상담을 하다보니 직업이나 진로를 결정하지 못해 방황하는 사례가 많았다”며 “청소년기에 진로교육이 제대로 이뤄져야 나중에 후회없는 선택을 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어 청소년커리어코칭을 생각했다”고 했다.

이화여대 경력개발센터는 ‘청소년커리어코칭 전문가과정’을 열어 2005년부터 해마다 졸업생을 내고 있다. 지금까지 배출된 인력은 300여명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지역교육청의 신청을 받아 원하는 학교에 청소년커리어코치들을 배정한다. 현재 커리어코치로 활동하는 이들은 100여명 정도다. 이들의 임금은 서울시 고용정책과에서 지급한다.

이 일은 애초에 서울시청의 일자리 창출 정책의 일환으로 시작됐다. 예산 배정의 책임을 서울시청이 지는 이유다. 김혜자 위원은 “처음에는 30살 미만 여성을 대상으로 진행되다 나이 제한을 없앴고 교사 경력을 지닌 30~40대 주부들이 많이 몰린다”고 했다. 주2회부터 주5회까지 근무일을 선택할 수 있어 살림을 꾸리는 주부들에게 매력적인 직업이다.

사범대 수학교육과를 나온 정은미 코치(광운공고)는 “교사를 뽑는 순위고사가 잠깐 없던 시절에 졸업하고 마냥 기다릴 수 없어 학원 강사로 일했는데 다시 교단에 서게 되는 기쁨이 남다르다”며 “등교하는 아이를 배웅하는 게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집을 나서는 것도 좋다”고 했다. 물론 진로교육에 뜻을 둔 미혼 여성들도 있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부전공으로 교육학을 공부한 김이준 코치는 기업에서 사원 교육을 맡았던 경험이 있다. 제2의 진로를 찾은 이들이 뒤늦게 불사르는 교육에 대한 열정은 놀랍다. 대여섯개의 동아리 모임이 자발적으로 꾸려져 진로교육에 대한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한다. 하나의 동아리는 대개 10명씩 구성된다. 다달이 열리는 세미나에도 70여명의 코치들이 참여해 전문분야에 대한 의견을 나눈다. 이들은 어느새 ‘진로교육을 위한 커리어코치 핸드북’이라는 이름의 수업교안 모음집을 세 권이나 냈다.

올해부터는 청소년커리어코칭 전문가과정이 이화여대 경력개발센터에서 평생교육원으로 옮겨 열린다. 서울시의 지원이 끊겨 이전보다 수업료가 오를 계획이다. 모집은 10월 말이나 11월 초에 이뤄진다.

진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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