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모나 친구와도 나눌 수 없는 고민에 휩싸이는 청소년들, 국가가 지원하는 전문적인 상담서비스를 활용하면 지혜로운 문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전화나 인터넷을 통한 상담도 활성화돼 있어 편리하다. <한겨레> 자료사진
청소년 상담기관 찾는 아이들
“우리 부모님은 스트레스를 안 주면 하루라도 살 수 없는 사람 같습니다. 잘난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스트레스 주는데 답답하고 죽겠습니다. 듣기 좋은 말도 한두번이지 스트레스성 위궤양까지 생겼습니다. 따로 나와 사는 것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명쾌한 답변 부탁드립니다.”
‘한국생명의전화’(www.lifeline.or.kr)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 한 학생의 호소다. 이처럼 전문적인 상담기관을 찾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 최근 통계청이 낸 ‘2008 청소년 통계’를 보면 2006년 보건복지가족부 산하 청소년상담지원센터 142곳의 상담서비스를 이용한 청소년은 156만607명이다. 2001년 전국 111곳에서 69만634명을 상담했던 것에 견주면 두 배로 늘었다.
청소년의 문제행동이 그만큼 늘어난 것일까? 현선미 서울시청소년상담지원센터 상담지원팀장은 “가출, 비행, 인터넷중독 등의 긴급한 문제를 호소하는 이른바 위기 청소년들도 있지만 학업이나 진로, 또래관계 등에 관한 일상적인 문제를 상담하는 청소년도 많다”고 했다. 지난 2006년 서울시청소년상담지원센터에 가장 많이 의뢰된 상담주제는 1위가 대인관계, 2위가 학업 스트레스나 학교 부적응, 3위가 가족 문제였다. 현 팀장은 “학교에서는 그럭저럭 지내지만 집에 돌아와 인터넷 메신저를 한다거나 숙제를 물어보는 가까운 친구들이 없어 외로움을 토로하는 아이들이 참 많다”고 했다.
얼마 전에는 서울 강남 지역을 중심으로 조기유학 뒤 귀국한 청소년들이 학교 부적응을 이유로 상담을 청하는 일이 많았다. 이경주 서울시립수서청소년수련관 상담팀장은 “전화상담이나 면접상담이 들어오는 귀국학생들이 너무 많아 머릿수를 세 봤더니 전체 상담신청자의 50%를 넘더라”며 “이들은 끼리끼리 뭉치는 우리나라 또래집단의 특성이나 교사의 일방적인 의사결정을 수용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다”고 했다.
이용자들 5년새 2배로 껑충 뛰어 대인관계·학교·가족 등 사연도 다양 “부모들 대안제시보다 공감 해주길” 대개의 부모들은 학교생활에서 빚어지는 사소한 문제를 가정에서 해결하려고 하지만 변화무쌍한 청소년의 심리적 상태를 이해하고 그에 맞춤한 대처를 하기가 쉽지 않다. 초등학교 시절 외국 유학을 다녀온 뒤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은 ㄱ군은 어머니의 적극적인 개입이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킨 사례다. ㄱ군이 또래친구들의 불합리한 행동에 대한 불평과 불만을 어머니에게 털어놓자 어머니는 ㄱ군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항상 친구들의 입장에 섰다. 아들 또래들의 성향이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 영어학원 시간강사 일자리까지 구했던 열성을 보였지만 아들은 결국 상담소를 찾아 “엄마는 내가 귀국한 뒤 3년 동안 내 편이었던 적이 없다”며 고개를 떨궜다. 부모가 문제 해결에 뾰족한 수를 내지 못하는 이유는 청소년기를 지나는 자녀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노성덕 한국청소년상담원 상담조교수는 “청소년기에는 누군가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대안은 먹히지 않는다”고 했다. 그 자리에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다가도 뒤돌아서면 ‘내 처지를 자기가 어떻게 알고?’하는 반발이 생긴다는 것이다. 노성덕 교수는 “상담사는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청소년이 스스로 대안을 찾았다는 생각이 들게끔 유도하는 구실을 한다”고 했다. 따라서 부모가 해 줄 수 있는 최선은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보다 그저 자녀의 처지를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것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충고다. 구체적인 방법을 모른다면 상담기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실제로 여러 시행착오를 거친 부모들이 상담기관의 도움을 활용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2006년 서울시립청소년상담지원센터를 찾은 2만1489명 가운데 2929명(14%)이 학부모였다. 가족상담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건강가정지원센터의 상담요청도 상당하다. 중앙건강가정지원센터 집계로, 지난해 1/4분기에 1만1043건이었던 상담의뢰가 4/4분기에 2만5701건으로 두 배 정도 늘었다. 노명숙 서초구건강가정지원센터 상담팀장은 “과거에는 상담소를 방문하려면 이혼이나 가정폭력 같은 대단히 큰 문제가 있어야만 가능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며 “최근에는 아이가 잠을 잘 못 자는 등의 일상적인 고민거리도 전문가의 조언이 필요하다고 느낄 만큼 상담에 접근하는 심리적인 문턱이 낮아졌다”고 했다. 게다가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국가가 예산을 지원하고 무료로 제공되는 공공 상담서비스가 많으므로 청소년과 학부모의 적극적인 활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경주 팀장은 “전화나 이메일 등 상담사의 간단한 도움만으로도 금세 회복되는 사례가 많으므로 혼자 풀리지 않는 문제는 공개하는 것이 좋다”며 “다만 현장의 상담 수요가 많은 만큼 면접상담의 경우 예약한 뒤 2~3주를 기다려야 하는 현실이 조금 개선됐으면 하는 심정”이라고 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이용자들 5년새 2배로 껑충 뛰어 대인관계·학교·가족 등 사연도 다양 “부모들 대안제시보다 공감 해주길” 대개의 부모들은 학교생활에서 빚어지는 사소한 문제를 가정에서 해결하려고 하지만 변화무쌍한 청소년의 심리적 상태를 이해하고 그에 맞춤한 대처를 하기가 쉽지 않다. 초등학교 시절 외국 유학을 다녀온 뒤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은 ㄱ군은 어머니의 적극적인 개입이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킨 사례다. ㄱ군이 또래친구들의 불합리한 행동에 대한 불평과 불만을 어머니에게 털어놓자 어머니는 ㄱ군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항상 친구들의 입장에 섰다. 아들 또래들의 성향이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 영어학원 시간강사 일자리까지 구했던 열성을 보였지만 아들은 결국 상담소를 찾아 “엄마는 내가 귀국한 뒤 3년 동안 내 편이었던 적이 없다”며 고개를 떨궜다. 부모가 문제 해결에 뾰족한 수를 내지 못하는 이유는 청소년기를 지나는 자녀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노성덕 한국청소년상담원 상담조교수는 “청소년기에는 누군가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대안은 먹히지 않는다”고 했다. 그 자리에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다가도 뒤돌아서면 ‘내 처지를 자기가 어떻게 알고?’하는 반발이 생긴다는 것이다. 노성덕 교수는 “상담사는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청소년이 스스로 대안을 찾았다는 생각이 들게끔 유도하는 구실을 한다”고 했다. 따라서 부모가 해 줄 수 있는 최선은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보다 그저 자녀의 처지를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것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충고다. 구체적인 방법을 모른다면 상담기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실제로 여러 시행착오를 거친 부모들이 상담기관의 도움을 활용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2006년 서울시립청소년상담지원센터를 찾은 2만1489명 가운데 2929명(14%)이 학부모였다. 가족상담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건강가정지원센터의 상담요청도 상당하다. 중앙건강가정지원센터 집계로, 지난해 1/4분기에 1만1043건이었던 상담의뢰가 4/4분기에 2만5701건으로 두 배 정도 늘었다. 노명숙 서초구건강가정지원센터 상담팀장은 “과거에는 상담소를 방문하려면 이혼이나 가정폭력 같은 대단히 큰 문제가 있어야만 가능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며 “최근에는 아이가 잠을 잘 못 자는 등의 일상적인 고민거리도 전문가의 조언이 필요하다고 느낄 만큼 상담에 접근하는 심리적인 문턱이 낮아졌다”고 했다. 게다가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국가가 예산을 지원하고 무료로 제공되는 공공 상담서비스가 많으므로 청소년과 학부모의 적극적인 활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경주 팀장은 “전화나 이메일 등 상담사의 간단한 도움만으로도 금세 회복되는 사례가 많으므로 혼자 풀리지 않는 문제는 공개하는 것이 좋다”며 “다만 현장의 상담 수요가 많은 만큼 면접상담의 경우 예약한 뒤 2~3주를 기다려야 하는 현실이 조금 개선됐으면 하는 심정”이라고 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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