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촛불집회에서 만난 학생과 학부모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에 대해 침묵하는 학교에 불만을 터뜨렸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촛불집회서 만난 아이들
“학교에서 선생님이 만약 촛불집회에 나온 일이 적발되면 처벌하겠다는 말씀은 하신 적이 있어요.”
촛불집회에 부모님과 함께 참석한 이아무개(14)군의 말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항의하는 촛불행렬에 10대들의 자리는 결코 좁지 않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이들을 여전히 ‘선도’하려 한다. 정권이 민심을 못읽는 것만큼이나 제자들의 마음을 읽지 못하는 학교에 대해 10대는 무엇을 원할까.
서울시청 광정에서 만난 10대들은 교실 밖에서 배움의 기회를 찾는 일을 주저하지 않았다. 고3 수험생 신분인데도 시간을 쪼개 촛불집회에 참석한 이아무개(18)양은 “독서실에 가서 4시간 앉아 있는 것도 좋지만 이곳에 오는 게 더 배울 점이 많을 것같아서 일부러 왔다”며 “수업시간에 선생님들이 간간히 이야기를 하시지만 얘기를 듣는 것보다 직접 참여하니까 훨씬 좋다”고 했다. 촛불집회 초기에 청계광장 발언대에 나서 유창하게 자기 주장을 말했던 또래들이 논리적 사고가 부럽다고도 했다.
무엇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가 자신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임을 학교에서 배우기를 바랐다. 아버지를 졸라 촛불집회에 나왔다는 홍아무개(13)양은 “광우병이 생기면 아이들도 고생하니까 학교 선생님들이 그 부분을 적극적으로 가르쳐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버지 홍현진(45)씨는 “애들도 알권리가 있는데 교육부나 교육청이 집회 참여를 막는다거나 수업을 못하게 한다면 우리 교육의 미래는 없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집회참여를 통해 교과수업에서 배웠던 개념들을 새롭게 이해하는 학생도 있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가사가 반복되는 노래를 들으며 학생들은 헌법과 민주주의에 대해 새삼 묻고 싶은 게 많아지는 것이다. 이아무개(14)군은 “도덕 과목에서 헌법을 배웠던 것 같은데 다시 한번 법대로 살아야 하는 게 뭔지 배웠으면 좋겠다”고 했다.
집회에 자녀 손을 잡고 함께 나온 부모들은 대개 교실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을 대신해 주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했다. 초교 4학년 아들과 함께 행진하던 임성근(44)씨는 “학교라는 곳이 원래 아이들의 재능을 발견해서 키워주고 함께 사는 공동체를 체험하는 곳으로서 의미가 있는 게 아니겠냐”며 “그런데 현실은 그런 이상과 자꾸만 거리가 생기고 새정부 들어서는 경쟁의 가치만 배우는 것 같아 데리고 나왔다”고 했다.
지난달 31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짤막한 기자회견을 마친 노회찬 전 의원은 “헌법과 민주주의, 더불어 사는 삶, 그리고 다양한 의견이 어떻게 갈등하고 조율되는지를 배울 수 있는 이곳이 진정한 방과후학교”라며 “무작정 학생들의 집회 참여를 막고 미국산 쇠고기에 관련한 표현의 자유를 막는 것은 교육기관의 비교육적인 처사”라고 비판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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