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극 〈구운몽〉의 한 장면.
우리말 논술
유형별 논술교과서 / 3. 개념 설명 및 활용
■ 기출문제 유형 2 - 경기대 2008학년도 수시 1 [난이도 수준-중2~고1]
[문항 1] (가)에서 말하고 있는 ‘환상’이라는 개념에 유의하여 (나)의 밑줄 친 곳에서 육관대사가 성진에게 깨우쳐 주고자 한 진실이 무엇인지 답하고, 그 진실이 (다) 이야기의 환몽구조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투영되어 나타나고 있는지 설명해 보시오.
<제시문 (가)의 내용> 불교에서는 자아의식이 환상이라고 보며, 인간의 욕심이나 집착은 자아의식에서 비롯한다고 설명한다. 결코 채워질 수 없는 이러한 탐욕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고통을 겪게 된다.
<제시문 (나)의 내용> 육관대사가 성진에게 인간의 부귀영화를 누리고 난 감회를 묻는다. 성진은 자신이 어리석어 불도(佛道)를 어기고 죄를 지었다며 참회의 눈물을 흘린다. 또한 불초(不肖)한 제자를 하룻밤 꿈으로 일깨워 준 스승의 은덕에 감사를 드린다. 그러자 육관대사는 성진이 제 흥에 겨워 갔다가 그 흥이 다해 다시 돌아왔으니 그에 상관할 바 아니라고 대답한다. 또, 그 일을 겪고서도 자신의 경험을 꿈이라고만 생각하니 아직도 무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며 성진을 질책한다.
<제시문 (다)의 내용> 조신(調信)은 승려로, 신라 세달사(世達寺)의 농장을 관리했다. 농장을 관리하던 중 태수 김흔 공의 딸에 반하게 되고, 낙산의 관음보살 앞에 가서 사랑을 이루게 해 달라고 몇 년간 몰래 빌었다. 그러나 김흔 공의 딸은 다른 사람과 혼인하게 되고, 조신은 소망을 들어주지 않은 관음보살을 원망하며 잠이 들었다. 그때 갑자기 김씨의 딸이 들어와 조신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이들은 고향으로 가 함께 살게 되었다. 조신 가족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아이를 다섯이나 낳았으나 변변한 벌이가 없어 늘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렸다. 첫아이는 결국 굶어 죽고 말았다. 생활고에 시달리다 못한 조신의 아내는 조신에게 헤어질 것을 청했다. 각자 아이 둘을 데리고 다른 방향으로 길을 떠났다.
길을 떠나는 참에 조신은 잠에서 깨어났다. 한밤중에 깨어 아침까지 번민한 조신의 머리털은 하얗게 셌다. 그의 가슴속에서 끓던 인간 세상에 대한 탐욕은 평생의 고생에 물린 듯 사라졌다. 이후 조신은 과거를 뉘우치고 불도에 정진했다.
■ 해결 전략 제시문 (가)에는 불교적 관점에서 인간의 자아의식이 어떻게 이해되는지를 설명한다. 세속적 자아의식은 욕심의 근원이 되는데, 이 욕심이 현실적으로 충족될 수 없기 때문에 욕심을 버리지 않는 한 인간은 고통 가운데 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점을 들어 불교에서 인간의 자아의식은 환상으로 인식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것이 사물의 실체라고 생각한다. 또 가장 확실한 실체라고 믿는 물질을 소유함으로써 만족을 얻을 수 있다고 여긴다. 세속에서는 인간 또한 물질의 영역에서 이해되며, 소유와 집착에 기반한 인간관계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이러한 통념은 잘못된 것이라고 본다. 사람들이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 환상이며, 그것이 환상임을 깨달음으로써 삶의 진리를 터득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세속에서의 실체는 환상으로, 만지고 부딪치는 경험 이면에 숨겨진 진리는 실체로 역전된다. 제시문 (나)는 서포 김만중의 ‘구운몽’ 중 결말 부분으로, 꿈에서 깨어난 성진이 육관대사 앞에서 자신의 어리석음을 고하고 참회하는 장면이다. 이때 육관대사는 성진을 위로하기는커녕 다시 한 번 질책한다. 성진이 현실과 꿈을 구별하는 것 또한 현실에 대한 집착을 나타내는 것이니 아직 속세의 미련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육관대사는 호접몽(胡蝶夢)을 들어 모든 집착에서 벗어난 상태는 현실과 꿈을 구별할 필요조차 없는 초월의 경지임을 암시한다. 결국 육관대사가 성진에게 일깨우려 한 것은 우리가 현실이라고 믿는 세계 또한 자아의식이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세상만사가 인간이 지어낸 한갓 꿈에 불과하다는 이런 생각은 제시문 (다)의 환몽구조에서도 드러난다. (다)에서 조신의 꿈과 현실은 경계가 흐릿한 채 연결된다. 꿈에서 조신이 겪은 일은 현실처럼 생생하게 묘사되고, 꿈에서 깨어난 조신의 머리는 백발로 변한다. 꿈과 현실이 한통속으로 이어지는 이런 이야기 구조는 현실 또한 인간이 만들어낸 자아의식의 결과물인 환상에 불과하다는 불교의 세계관에서 비롯한 것이다. 설명을 요하고 있는 문제이므로 답안 작성자의 견해를 제시해서는 안 되고, 이야기의 숨은 의미를 정확히 파악해 분석적으로 서술해야 한다. 세 제시문이 공통의 주제로 유기적으로 엮여 있으므로, 답안에는 각 제시문의 연관관계가 잘 드러나야 한다.
■ 자료 검색 ‘구운몽’에 숨겨진 페미니즘 셰익스피어가 태어난 곳은 생가가 아니라 박물관이란 말이 있다. 그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들을 엄청나게 곁눈질했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라 한다. 그런데 한글소설 <구운몽>을 지은 김만중이야말로 박물관에서 태어났다고 하는 편이 옳겠다. 그는 모친 윤씨의 훈도로 공부를 시작하여, 진작부터 한문고전을 섭렵하였고, 결국 위대한 사상가이자 문필가로 성장하였다. 유배지에서 멀리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지었다는 이 <구운몽>은 그의 글쓰기 기법을 한껏 과시한 소설이다. 그렇기에 한문고전의 지식이 없으면 한 구절도 제대로 읽을 수가 없다. 한문본만 그런 것이 아니다. 한글본도 그렇다. 그런데도 <구운몽>하면 누구나 친근하게 여긴다. 교실에서는 이 소설을 두고, 인생 일장춘몽이라는 관념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였으며, 불교의 공(空) 사상을 주제로 하였다고 가르친다. 유교와 불교와 도교의 사상이 녹아 있고, 액자소설의 구조를 지닌다고도 들려준다. 하지만 이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더구나 국어책에 실린 부분은, 한문본을 기준으로 전체 16장 가운데 마지막 부분인 16장이다. 그 부분만 읽는다면 주인공 성진이 양소유가 되어서 현세적 욕망을 성취해 나가는 ‘발전적 구조’를 파악할 수가 없다. 제1장에는 성진이 용궁에 심부름 갔다 오다가 돌다리에서 여덟 선녀를 만나 희롱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머지 14장에는 양소유가 여덟 여인과 사랑을 나누고 그 여덟 여인을 아내와 첩으로 삼는 이야기가 나온다. 페미니스트의 관점에서 볼 때 양소유보다 더한 ‘공공의 적’이 또 있을까. 주인공 성진은 여덟 선녀와 희롱한 죄로 인간세계에 내쫓겨, 중국 수주현에서 양소유로 태어난다. 팔선녀도 중원이나 이민족 지역이나 용궁에 태어난다. 소설의 공간 배경이 참 넓다. 양소유는 장원급제하여 한림학사가 되고, 대원수로 외적 토벌의 공을 세우며, 천자의 부마가 되고 승상의 관직에 이른다. 그러는 사이에 여덟 선녀들을 차례로 만나 두 사람의 아내와 여섯 사람의 첩을 거느린다. 만년에야 인생무상을 느끼게 되는데, 그 순간 꿈에서 깨어난다. 양소유는 욕망을 당당하게 성취해 나가는 자다. 그는 조선시대 지식인들이 지녔던 내심의 욕망, 곧 대장군으로서 공을 세우고 조정에 들어와 재상으로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픈 욕망을 성취해 나갔다. <구운몽>의 묘미는 우선, ‘욕망하는 주체’를 당당하게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점에 있다. 여덟 여인의 삶은 어떤가, 일견 어처구니가 없다. 그들은 기생, 규수, 몸종, 여협, 용왕 딸, 공주로서 살아가던 ‘행복한’ 삶을 다 버리고 오직 한 사내의 아내나 첩으로 자신을 굴종시키고 말았다. 페미니스트의 시각으로 보면 남성중심적이고 봉건적이다. 하지만 여덟 여인의 관점에서 이 소설을 다시 보자. 여덟 여인은 서로를 완성시켜주는 보완적 관계다. 더구나 그들은 현실을 온전히 승인하지 않는다. 여자로 태어나 ‘총체적으로’ 억압받고 있는 현실을, 틈만 나면 고발한다. 양소유가 부마로 뽑히자 파혼을 당할 처지에 놓이게 된 정경패는 불전에 소문을 올려, “전생에 죄가 많아 여자로 태어난데다가 형제도 없습니다”라고 탄식한다. 그리고 자신의 몸종이되 자매와도 같은 가춘운의 처지를 진심으로 측은하게 여겨, “여러 부처님께서는 우리 두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어 대대로 날 때마다 여자 몸이 되는 것을 면하게 해 주십시오”라고 발원한다. 난양공주는 정경패의 사람됨을 살피기 위해 이소저로 분장하고는 정경패를 찾아와 이렇게 하소한다. “혼자 한탄하기는, 남자는 천하에 친구를 구해 덕성을 도움받는데 여자는 종들 외에는 접촉이 없으니 잘못이 있어도 누가 있어서 바로잡아 주며 학문함에도 어디에다 질문하여 바로잡겠습니까?” 소설의 이야기 축은 양소유가 욕망을 성취하고 인간사의 허무를 깨달음에 있다. 그러나 팔선녀는 성진을 만날 때부터 이미 발랄한 인격으로 묘사되어 있으며, 서로의 우정을 과시한다. 그리고 인간세계에 내려온 뒤 그들은 각기 스스로의 처지를 냉철하게 파악하되 그 상황에 안주하지 않고 스스로의 의지로 자신의 사랑을 선택한다. 그리고 여성 동지로서의 행보는 양소유를 때때로 압도하기까지 한다. 여덟 여성이 양소유를 공유한다는 이야기는 실은 알레고리의 성격이 짙다. 그것은 권력 지향의 남성들 사이에서 우정이 사라진 사실을 아프게 고발한 것이리라. 소설에서 천자 및 월왕과 양소유의 사이는 평등한 우정 관계가 아니다. 여덟 여성으로 하여금 한 남성만 바라보도록 이야기를 구성한 것은 이 소설이 지닌 한계라면 한계다. 하지만 좋은 독자라면, 김만중이 여성들의 우정을 그려냄으로써, 당시의 남성중심 사회가 관용을 잃어버린 실정을 비판하였음을 읽어내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생략) -심경호, <한겨레> 2005년 8월 11일치 칼럼
■ 해결 전략 제시문 (가)에는 불교적 관점에서 인간의 자아의식이 어떻게 이해되는지를 설명한다. 세속적 자아의식은 욕심의 근원이 되는데, 이 욕심이 현실적으로 충족될 수 없기 때문에 욕심을 버리지 않는 한 인간은 고통 가운데 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점을 들어 불교에서 인간의 자아의식은 환상으로 인식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것이 사물의 실체라고 생각한다. 또 가장 확실한 실체라고 믿는 물질을 소유함으로써 만족을 얻을 수 있다고 여긴다. 세속에서는 인간 또한 물질의 영역에서 이해되며, 소유와 집착에 기반한 인간관계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이러한 통념은 잘못된 것이라고 본다. 사람들이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 환상이며, 그것이 환상임을 깨달음으로써 삶의 진리를 터득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세속에서의 실체는 환상으로, 만지고 부딪치는 경험 이면에 숨겨진 진리는 실체로 역전된다. 제시문 (나)는 서포 김만중의 ‘구운몽’ 중 결말 부분으로, 꿈에서 깨어난 성진이 육관대사 앞에서 자신의 어리석음을 고하고 참회하는 장면이다. 이때 육관대사는 성진을 위로하기는커녕 다시 한 번 질책한다. 성진이 현실과 꿈을 구별하는 것 또한 현실에 대한 집착을 나타내는 것이니 아직 속세의 미련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육관대사는 호접몽(胡蝶夢)을 들어 모든 집착에서 벗어난 상태는 현실과 꿈을 구별할 필요조차 없는 초월의 경지임을 암시한다. 결국 육관대사가 성진에게 일깨우려 한 것은 우리가 현실이라고 믿는 세계 또한 자아의식이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세상만사가 인간이 지어낸 한갓 꿈에 불과하다는 이런 생각은 제시문 (다)의 환몽구조에서도 드러난다. (다)에서 조신의 꿈과 현실은 경계가 흐릿한 채 연결된다. 꿈에서 조신이 겪은 일은 현실처럼 생생하게 묘사되고, 꿈에서 깨어난 조신의 머리는 백발로 변한다. 꿈과 현실이 한통속으로 이어지는 이런 이야기 구조는 현실 또한 인간이 만들어낸 자아의식의 결과물인 환상에 불과하다는 불교의 세계관에서 비롯한 것이다. 설명을 요하고 있는 문제이므로 답안 작성자의 견해를 제시해서는 안 되고, 이야기의 숨은 의미를 정확히 파악해 분석적으로 서술해야 한다. 세 제시문이 공통의 주제로 유기적으로 엮여 있으므로, 답안에는 각 제시문의 연관관계가 잘 드러나야 한다.
■ 자료 검색 ‘구운몽’에 숨겨진 페미니즘 셰익스피어가 태어난 곳은 생가가 아니라 박물관이란 말이 있다. 그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들을 엄청나게 곁눈질했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라 한다. 그런데 한글소설 <구운몽>을 지은 김만중이야말로 박물관에서 태어났다고 하는 편이 옳겠다. 그는 모친 윤씨의 훈도로 공부를 시작하여, 진작부터 한문고전을 섭렵하였고, 결국 위대한 사상가이자 문필가로 성장하였다. 유배지에서 멀리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지었다는 이 <구운몽>은 그의 글쓰기 기법을 한껏 과시한 소설이다. 그렇기에 한문고전의 지식이 없으면 한 구절도 제대로 읽을 수가 없다. 한문본만 그런 것이 아니다. 한글본도 그렇다. 그런데도 <구운몽>하면 누구나 친근하게 여긴다. 교실에서는 이 소설을 두고, 인생 일장춘몽이라는 관념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였으며, 불교의 공(空) 사상을 주제로 하였다고 가르친다. 유교와 불교와 도교의 사상이 녹아 있고, 액자소설의 구조를 지닌다고도 들려준다. 하지만 이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더구나 국어책에 실린 부분은, 한문본을 기준으로 전체 16장 가운데 마지막 부분인 16장이다. 그 부분만 읽는다면 주인공 성진이 양소유가 되어서 현세적 욕망을 성취해 나가는 ‘발전적 구조’를 파악할 수가 없다. 제1장에는 성진이 용궁에 심부름 갔다 오다가 돌다리에서 여덟 선녀를 만나 희롱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머지 14장에는 양소유가 여덟 여인과 사랑을 나누고 그 여덟 여인을 아내와 첩으로 삼는 이야기가 나온다. 페미니스트의 관점에서 볼 때 양소유보다 더한 ‘공공의 적’이 또 있을까. 주인공 성진은 여덟 선녀와 희롱한 죄로 인간세계에 내쫓겨, 중국 수주현에서 양소유로 태어난다. 팔선녀도 중원이나 이민족 지역이나 용궁에 태어난다. 소설의 공간 배경이 참 넓다. 양소유는 장원급제하여 한림학사가 되고, 대원수로 외적 토벌의 공을 세우며, 천자의 부마가 되고 승상의 관직에 이른다. 그러는 사이에 여덟 선녀들을 차례로 만나 두 사람의 아내와 여섯 사람의 첩을 거느린다. 만년에야 인생무상을 느끼게 되는데, 그 순간 꿈에서 깨어난다. 양소유는 욕망을 당당하게 성취해 나가는 자다. 그는 조선시대 지식인들이 지녔던 내심의 욕망, 곧 대장군으로서 공을 세우고 조정에 들어와 재상으로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픈 욕망을 성취해 나갔다. <구운몽>의 묘미는 우선, ‘욕망하는 주체’를 당당하게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점에 있다. 여덟 여인의 삶은 어떤가, 일견 어처구니가 없다. 그들은 기생, 규수, 몸종, 여협, 용왕 딸, 공주로서 살아가던 ‘행복한’ 삶을 다 버리고 오직 한 사내의 아내나 첩으로 자신을 굴종시키고 말았다. 페미니스트의 시각으로 보면 남성중심적이고 봉건적이다. 하지만 여덟 여인의 관점에서 이 소설을 다시 보자. 여덟 여인은 서로를 완성시켜주는 보완적 관계다. 더구나 그들은 현실을 온전히 승인하지 않는다. 여자로 태어나 ‘총체적으로’ 억압받고 있는 현실을, 틈만 나면 고발한다. 양소유가 부마로 뽑히자 파혼을 당할 처지에 놓이게 된 정경패는 불전에 소문을 올려, “전생에 죄가 많아 여자로 태어난데다가 형제도 없습니다”라고 탄식한다. 그리고 자신의 몸종이되 자매와도 같은 가춘운의 처지를 진심으로 측은하게 여겨, “여러 부처님께서는 우리 두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어 대대로 날 때마다 여자 몸이 되는 것을 면하게 해 주십시오”라고 발원한다. 난양공주는 정경패의 사람됨을 살피기 위해 이소저로 분장하고는 정경패를 찾아와 이렇게 하소한다. “혼자 한탄하기는, 남자는 천하에 친구를 구해 덕성을 도움받는데 여자는 종들 외에는 접촉이 없으니 잘못이 있어도 누가 있어서 바로잡아 주며 학문함에도 어디에다 질문하여 바로잡겠습니까?” 소설의 이야기 축은 양소유가 욕망을 성취하고 인간사의 허무를 깨달음에 있다. 그러나 팔선녀는 성진을 만날 때부터 이미 발랄한 인격으로 묘사되어 있으며, 서로의 우정을 과시한다. 그리고 인간세계에 내려온 뒤 그들은 각기 스스로의 처지를 냉철하게 파악하되 그 상황에 안주하지 않고 스스로의 의지로 자신의 사랑을 선택한다. 그리고 여성 동지로서의 행보는 양소유를 때때로 압도하기까지 한다. 여덟 여성이 양소유를 공유한다는 이야기는 실은 알레고리의 성격이 짙다. 그것은 권력 지향의 남성들 사이에서 우정이 사라진 사실을 아프게 고발한 것이리라. 소설에서 천자 및 월왕과 양소유의 사이는 평등한 우정 관계가 아니다. 여덟 여성으로 하여금 한 남성만 바라보도록 이야기를 구성한 것은 이 소설이 지닌 한계라면 한계다. 하지만 좋은 독자라면, 김만중이 여성들의 우정을 그려냄으로써, 당시의 남성중심 사회가 관용을 잃어버린 실정을 비판하였음을 읽어내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생략) -심경호, <한겨레> 2005년 8월 11일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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