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서 습관은 무작정 책을 읽는데서 시작된다. 사진은 여름방학을 맞아 대형서점에서 책을 읽는 어린이들의 모습.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여름방학 ‘만나볼 만한 책들’
‘레벌루션 NO3’ ‘포틴’ 읽고 잘난 척하렴
성 편견 깨는 ‘동정없는 세상’은 어떠니
영혼이 폼나는 책 ‘헌법의 풍경’도 좋아
‘레벌루션 NO3’ ‘포틴’ 읽고 잘난 척하렴
성 편견 깨는 ‘동정없는 세상’은 어떠니
영혼이 폼나는 책 ‘헌법의 풍경’도 좋아
이 주의 교육테마 / 여름방학 ‘만나볼 만한 책들’
오호, 여름이다. 바나나는 길고, 길면 기차가 생각나듯, 여름엔 방학이닷! 모르는 소리 말라고, 요즘 청소년으로 살자면 학기보다 방학이 더 바쁘단 말이지. 엄마는 집에서 놀지 말고 학원 가서 놀라고 등을 떠민다는 말이지. 그래서 말인데, 학원에, 시험에 바쁜 너희들 사정이야 뻔하지만, 이번 방학에 짬짬이 책 한번 읽어보지 않을래? 책 읽을 시간이 어디 있냐고? 바쁜 틈을 내서 읽는 책은 정말 더 재미있다니까. 믿기지 않으면 한번 따라 해봐.
어른들은 책을 읽으면 인격과 교양이 갖춰진다고 믿어. 하지만 실은 책을 읽으면 친구들에게 잘난 척하기 정말 좋단다. 특히 이성 친구에게 신비감을 줄 수 있지. 책벌레인 어른들 중에는 왜소한 외모를 지녔던 청소년 시절, 자신의 콤플렉스를 감추기 위해 책을 읽고 아는 척하다가 책을 좋아하게 된 사람들이 뜻밖에 많단다.
물론 책은 예쁜 여자애 혹은 잘생긴 남자애처럼 도도해서 좀체 친절하지 않단다. 그러니 그동안 책과 친하게 지내지 않았다면 무턱대고 읽지 말고 친구들에게 재미있는 책이 뭐냐고 물어봐. 이번 방학에 뭐 재미난 책이 없나 하는 생각이 든다면 일본 소설 몇 권을 읽어보는 건 어떨까 싶다. 재미난 일본 소설을 몇 권 읽는 것은 권할 만하지만 계속해서 일본 소설만 읽으면 안 돼. 일본 소설은 역사나 세계를 움직이는 거대담론 혹은 내면적 성찰보다 지극히 개인사에 해당할 작은 이야기들을 재미나게 들려주는 작품들이 많단다.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이라면 느낄 법한 외로움을 어루만져 주기도 하고, 누군가를 좋아하고 혹은 실연당하는 감정을 잘 살려낸 작품도 많아 상대적으로 감정이입이 쉬운 장점이 있어.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일본 소설만 읽다보면 어느새 일본 소설에 길들여져 문학적 성취감 혹은 논리적 정연함이 살아 있는 작품을 읽어내지 못하게 된단다. 읽기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져 버리는 거지. 너희들도 쉬운 게임만 하다보면 어려운 게임은 하기 어렵잖아. 마찬가지야. 조심해야지.
어쨌든 시작은 무조건 재미있는 책으로 하는 것이 좋아. 가네시로 가즈키의 〈GO〉 〈레벌루션 NO 3〉, 이사카 고타로의 <칠드런>, 이시다 이라의 <포틴> 같은 책들을 추천해. 왜냐고? 재미있으니까.
이사카 고타로의 <칠드런>은 단편인 척하는 장편소설인데, 주인공은 진나이야. 스무 살 무렵의 진나이와 서른 살 무렵의 직장인이 된 진나이가 교차로 서술되는 구성이야. 스무 살 무렵 인생을 포기한 진나이가 서른 살 무렵 탈선·비행 청소년을 선도하는 가정재판소 조사관이 되었다는 설정 자체가 깨지. 가정재판소에 온 청소년들을 두고 이상하다 하지만, 그들도 자라면 진나이처럼 될 수 있다는 작가의 의도가 느껴지지. 이를테면 진나이는 이런 식이야. 길을 가다가 소년이 다른 패거리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있는 걸 보면 조사관 진나이는 “싸움은 그만둬”라고 말하는 대신 맞고 있는 안경쟁이를 사정없이 내리친다. “어라, ×× 아냐” 하고 어이없어하며 패거리들은 진나이에게 맞아 쓰러진 안경쟁이를 부축하고 사라진다. 진나이는 말하지. “적의 적은 아군이다.” 말도 안 되지만 말이 되지 않니? 하핫!
가네시로 가즈키도 심각한 이야기를 밝게 말하는 재주가 있어. 〈레벌루션 NO 3〉는 삼류고등학교의 남학생들이 스스로를 ‘더 좀비스’라고 이름 붙이고 혁명을 꿈꾸는 이야기야. 혁명이라고 너무 겁먹지 말길. 이들이 말하는 혁명이란 공부 잘하는 여자의 유전자를 획득하는 것, 그래서 고학력 계급사회에 구멍을 뚫는 것이야.
국내 작품으로는 김려령의 <완득이>를 강력 추천해. 그야말로 혜성같이 나타난 아줌마 작가가 쓴 청소년 소설이야. 아줌마이지만 일단 젊고 초등학생과 중학생 자녀를 두어서 그런지 현실감이 있어. 카바레에서 춤추는 난쟁이 아버지와 옥탑방에서 사는 주인공 도완득이 자신 있는 거라곤 오직 하나, 싸움이야. 하지만 담탱이(담임) 똥주가 등장해 완득이의 사생활을 시시콜콜 간섭하며 완득이의 삶은 뜻하지 않게 풀려가지. 생각해보면 완득이는 공부도 못하지, 엄마도 없지, 변변한 집도 없이 옥탑방에 살지, 친구도 없지. 뭐 하나 행복할 게 없는 소년인데도 구질구질하지 않아. 생각해보면 청소년 시절이란 게 담임은 쪼지, 부모들은 닦달하지, 성적은 안 나오지 답답하기 이를 데 없고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듯 불안하지만 그래도 대책 없이 까불며 지내잖아. 그런 마음이 인물을 통해 손에 잡히듯 그려져 있어. 담임 똥주만 해도 자기가 조폭으로 키운 게 아닌데 제자들이 알아서 조폭이 되니 자신을 조폭 스승이라고 불러 달란다. 엎치나 덮치나 마찬가지라나.
물론 이렇게 말하면 수상한 책으로 생각하겠지만 문학작품이란 한끝 차이야. 비속어와 코믹한 상황이 곳곳에 보이지만 장애인, 이주노동자 문제 등 사회적 약자에 관한 이야기를 잘 형상화한 수작이야. 웃다가 정신차려 보면 코끝이 찡하다고나 할까.
이 밖에도 친구들에게 물어 재미난 소설을 좀더 읽어도 좋아. 한데 야동도 자꾸 보면 헛헛한 것처럼 책도 마찬가지야. 재미만 찾다보면 금방 시큰둥해져. 이럴 때는 동병상련의 정을 나눠줄 책을 찾아보길 권해. 입시에 시달리는 너희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살다보면 뼛속 깊이 외롭거든. 그래서 어른들은 술을 먹지만 술로 해결되지 못하는 처절한 아픔도 있기 마련, 이럴 때 의외로 내 맘을 알아주는 책을 읽다보면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지. 정신적 승화 혹은 치유적 읽기가 가능하단 소리야. 야동에 관심이 많은 친구라면 <동정 없는 세상>을, 뚱뚱해서 죽고 싶을 만큼 괴롭다면 <씁쓸한 초콜릿>이나 <뚱보생활지침서> 같은 책을 읽는 거야. <동정 없는 세상>은 대학입시를 치른 고등학교 3학년 남학생의 이야기야. 물론 1967년생 소설가가 쓴 책이니 너희들에게는 좀 시시할지도 몰라. 주인공 준호는 여자친구 서영이와 ‘한번 하고’ 싶어, 말 그대로 미치겠는 십대다. 과연 준호는 동정(童貞) 없는 세상에 살 게 될까가 궁금해 읽게 되는, 쬐금 야하지만 99% 건전한 소설이야. 여자 친구들 중에 크고 작은 아픔으로 괴롭다면 임태희의 <나는 누구의 아바타일까>를 읽어보렴. 깨달음이란 고통을 통해 온다는 사실을 느낄 거야.
이런 책을 읽다가 가슴이 저려왔다면, 아마 머지않아 책을 읽는 즐거움을 알 것 같구나. 이제부터는 선생님이 주는 추천도서 목록이나 친구들이 권하는 책에 의지하지 않아도 좋아. 책이 제 스스로 길을 만들어 줄 거야. 우리가 아는 훌륭한 어른들 중에도 오로지 책이 만들어준 길에 의지해 의젓하게 걸어온 사람들이 많아. 김용택, 안도현 같은 유명한 시인들도 그랬어. 안도현 시인은 자신의 사부는 백석 시인이라며, 그의 영향을 받은 게 아니라 오로지 그의 시를 베끼고 싶어서 시를 썼다고 고백했단다. 안도현 시인에게는 백석의 시집이 시로 가는 길이었던 거지. 김용택 시인은 초등학교 교사가 되고 나서 뒤늦게 책장수에게 할부로 사들인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을 심심해서 읽었단다. 한데 이 책이 길이 되어 이후 박목월·이어령·앙드레 지드·헤르만 헤세·서정주 등을 본격적으로 읽으며 오로지 책으로만 10년 넘게 문학을 독학했다고 해.
자, 그러나 이제부터는 재미와 자기 위안을 넘어 새로운 세계로 인도하는 책들을 읽어보기 바래. 하룻밤 사이에 영혼이 한 뼘 쯤 성장한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안다면 아마 누가 말려도 관심 있는 책을 읽고 싶을 걸. 어른들이 읽는 교양서 중에서 맘에 드는 책, 혹은 들고 나닐 때 폼 나는 책을 골라 읽으렴. 김두식의 <헌법의 풍경>, 황광우의 <철학콘서트>,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 김용규의 <철학통조림> 시리즈도 좋단다.
단언컨대 책읽기에 한번 빠지면 나오기 힘들걸. 오죽하면 보르헤스 같은 사람이 ‘천국은 도서관과 같은 곳’일 거라고 했겠니.
한미화 / 출판칼럼니스트
여름방학 ‘만나볼 만한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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