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2년 세계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한 유엔 주관의 개발재원 정상회의의 개막을 앞두고 멕시코 몬테레이에서 무정부주의자들이 회의 개최를 반대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세계 주요국과 국제기구들이 그동안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시켰다고 비판했다. 몬테레이/AP 연합
우리말 논술
유형별 논술교과서 / 8. 의미 설명
■ 기출문제 유형 1 - 덕성여대 2008학년도 정시 [난이도 수준-중2~고1]
글 (라)의 마지막 문장에 나오는 ‘느낀 바’/‘그 뜻’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쓰되 (가)~(다)에서 언급된 ‘국가’나 ‘권력’의 문제와 관련하여 쓰시오.
(가) (생략) 결국 어떤 형태로든지 권력의 집중화를 막으려는 모든 시도는 그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정부가 아무리 강력한 권력을 가져도 충분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이제 권력은 누가 그것을 행사하든 그 자체가 악한 것으로 된다. 그것은 탐욕이며 그 자체 본질상 충족될 수 없다. 그래서 그것은 그 자체 불행한 것이며,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불행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나) 1831년에는 유럽 전체적으로 반문화적인 획일화의 과정이 착수되었는데, 이것은 대략 1875년경까지 계속되었다. 그것은 앞에 열거한 사람들에게 상이하고 복합적인 감정 속에서 혐오, 두려움, 증오, 경멸 등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종류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부르크하르트의 유명한 격언(권력은 그 자체가 악하다)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커다란 윤리적 역설을 오늘날 사적인 감정에 의해 영향 받는 심리적인 차원에서만 다루어 버릴 수는 없다. 인본적인 도덕 정신이 권력의 도덕 정신과 궁극적으로는 모순되지 않음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어떻게 그 두 정언 명령이 똑같은 영혼에게서 발견되고 있는가 하는 것은 수수께끼지만 분명히 일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생략)
(다) 무정부주의자들은 권력이 모든 사회에서 갖고 있는 하나의 특정한 필연적인 징표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삶을 견뎌낼 수 있도록 하는, 고도로 발달된 사회적 조종의 방법도 당연히 존재한다. 그렇지만 무정부주의자들은 이러한 조종이 일종의 강요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문제 삼고 있다. 왜냐하면 바로 그 요소가 사회적 질서의 힘을 정치적 권력으로 변형시키기 때문이다. 또한 무정부주의자들은 세계를 자유론자의 시각에서 고찰하며, 그래서 정치권력은 자유를 파괴하기 때문에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본다. 즉 자유가 결여된 곳에서는 사회생활이 불가능하다고 본다. (생략) (라) 내가 집이 가난해서 말이 없으므로 혹 빌려서 타는데, 여위고 둔하여 걸음이 느린 말이면 비록 급한 일이 있어도 감히 채찍질을 가하지 못하고 조심조심하여 곧 넘어질 것같이 여기다가, 개울이나 구렁을 만나면 곧 내려 걸어가므로 후회하는 일이 적었다. 발이 높고 귀가 날카로운 준마로서 잘 달리는 말에 올라타면 의기양양하게 마음대로 채찍질하여 고삐를 놓으면 언덕과 골짜기가 평지처럼 보이니 심히 장쾌하였다. 그러나 어떤 때에는 위태로워서 떨어지는 근심을 면치 못하였다. 아! 사람의 마음이 옮겨지고 바뀌는 것이 이와 같을까? 남의 물건을 빌려서 하루 아침 소용에 대비하는 것도 이와 같거든, 하물며 참으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이랴. 그러나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이 어느 것이나 빌리지 아니한 것이 없다. 임금은 백성으로부터 힘을 빌려서 높고 부귀한 자리를 가졌고, 신하는 임금으로부터 권세를 빌려 은총과 귀함을 누리며, 아들은 아비로부터, 지어미는 지아비로부터, 비복(婢僕)은 상전으로부터 힘과 권세를 빌려서 가지고 있다. 그 빌린 바가 또한 깊고 많아서 대개는 자기 소유로 하고 끝내 반성할 줄 모르고 있으니, 어찌 미혹(迷惑)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다가도 혹 잠깐 사이에 그 빌린 것이 도로 돌아가게 되면, 만방(萬邦)의 임금도 외톨이가 되고, 백승(百乘)을 가졌던 집도 외로운 신하가 되니, (생략)
■ 해결 전략 제시문 (라)의 필자는 말을 빌려 탄 경험을 통해 개인에게 완전히 종속되는 소유물은 없으며, 모든 것이 빌려 쓰는 것이라는 가치관을 피력했다. 이 글에서는 물질뿐만 아니라 명예, 인간관계 등 희소성의 가치가 지배할 수 있는 삶의 모든 영역을 아울러 소유에 대한 가치관의 전환을 촉구한다. 만약 (가)~(다) 제시문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제시문 (라)는 이처럼 소유에 대한 포괄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논제에서는 특별히 제시문 (가)~(다)에 언급된 ‘국가’나 ‘권력’의 문제와 관련해 지시어의 의미를 풀이하라고 한정하고 있으므로 이 조건을 준수해야 한다. (가)에서는 끝없는 권력욕을 채우는 과정에서 악행이 나타나게 되며, 이 점에서 권력은 그 자체로 악하다고 주장한다. 한편, (나)에서는 (가)와 같은 주장이 나오게 된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는 가운데, 권력이 도덕과 무관하지 않으며 양자의 통합 또한 가능하다고 본다. (다)는 권력에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요소가 개입되어 있음을 보여주며, 국가 권력에 의한 삶의 통제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안으로 무정부주의를 제안하고 있다. 세 제시문 모두 권력의 부정적 속성을 언급하고 있는데, (라)의 관점에서 이 문제에 접근하면 정치 권력은 온전히 내 것이 아니며 타인으로부터 위임받는 일시적 힘으로 규정된다.
■ 자료 검색
야콥 부르크하르트의 <세계 역사의 관찰>
부르크하르트는 스위스의 역사가로 스위스 바젤대학교와 독일 베를린 대학교에서 신학과 역사학을 전공했다. 역사뿐만 아니라 문학과 미술에도 조예가 깊어 예술사와 문화사 분야의 역작을 여럿 저술했다. 그 중 1860년 펴낸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문명>은 문화사 연구 방법의 귀감으로 오늘날에도 꾸준히 인용되고 있다.
<세계 역사의 관찰>은 부르크하르트의 역사관이 총체적으로 담긴 저서이다. 이 책은 1868년부터 1871년까지 스위스 바젤대학교에서 강연했던 ‘역사의 연구’를 정리한 것으로, 1905년 발간됐다.
이 책에서 부르트하르트는 역사에서 ‘항상 있는 것, 되풀이되는 것, 전형적인 것’이 무엇인지 집중 탐구하고, 국가·종교·문화를 역사의 세 가지 잠재력으로 설정했다. <세계 역사의 관찰>은 이 세 가지 잠재력의 의미, 역사상 이 요소들이 어떤 식으로 인간의 삶에 개입되어 있는지에 대한 사례 연구 및 성찰 등을 중심으로 저술되었다.
‘권력은 악하다’는 내용은 이 책의 제2장 ‘국가’에 대해 기술한 부분에서 언급된다. 부르크하르트는 국가의 기원을 폭력을 통한 정복의 결과로 보고, 권력은 국가의 규모가 커지면서 점차 강화된다고 설명했다.
정치 권력
권력은 집단이나 사회의 지배층 일부에서 내려진 결정을 집단 전체의 결정으로 인식시켜 타자에게 받아들이게 하는 궁극적·결정적인 수단이나 방법이다. 이런 의미에서 정치의 제1국면은 통일적 결정을 뒷받침하는 특정 권력질서의 창출이며 그 과정은 권력 쟁탈을 둘러싼 투쟁으로 표출된다. 권력이 구성되는 방법은 집단과 사회의 역사적 구조와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르다. 예를 들면 원시사회에서는 주술능력이 중요한 권력 기반 요소로 작용했지만 시민사회에서 권력자로 부상하려면 부의 소유가 요구되었다. 반면 조직화된 현대사회에서는 관료조직에의 진출과 대중매체의 조종이 새로운 권력행사 수단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모든 시대를 통해서 타인의 신체에 대한 강제력, 즉 폭력의 독점, 무력 및 경찰력의 장악은 권력의 궁극적인 핵심이었다. 마키아벨리는 근대국가의 출발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믿을 수 있는 군대를 창출해 국가권력의 기초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그의 교훈은 오늘날의 모든 국가에 계승되고 있다. 그러나 정치에서 노골적인 형태의 무력행사는 오히려 예외적인 사태에 속한다. 무력은 구성원의 자발적·일상적인 복종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을 때 발동되는 궁극적인 수단으로서 그때그때의 정치상황에 대응해 행사된다. 모든 정치에는 반드시 동요와 불안정성이 내포되어 있으며 이와 같은 정치의 불안정한 상황은 정치적 의사결정의 제도화를 통해서 안정된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 관점 넓히기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 공직자들은 스스로의 권력 행사가 국민의 위임에 따른 것이라는 점을 끊임없이 의식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글이다) 경찰청이 현판 교체 문제로 여론의 눈흘김을 받고 있다. 경찰청장이 바뀔 때마다 새 청장의 지휘방침을 적은 현판을 새로 만들었는데 그 비용으로 매회 4억8천만원 가량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지난 5년간 세 명의 경찰청장이 현판 교체 비용으로만 15억원 가량을 사용했는데, 그렇다고 그들이 획기적으로 다른 내용을 주장한 것도 아니다. ‘함께 하는 치안, 편안한 나라’라는 구호에서 ‘최상의 치안서비스를 위해’로, 다시 ‘믿음직한 경찰, 안전한 나라’라는 구호를 전파하는 데 각각 5억원 가량을 사용한 것이다. 국가 예산이 단지 기관장 한 사람의 위엄을 위해 쓰여진 세금 낭비의 대표적 사례라는 날선 비판들이 줄을 잇는다. (중략) 비단 경찰 총수에 국한된 문제일 수 없다. 자리가 높아질수록 자신이 가진 권력의 크기를 뼈저리게 의식하는 일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고 있는 일의 특성상 최고 의사결정권자들에 대한 심리분석과 상담을 많이 하는데 그런 경험에 의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권력이 많아질수록 자신의 심리적 색깔이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자신에 대한 사회적 검증이 일정 부분 끝났다는 데서 오는 자기 확신과 더불어 누구의 통제를 받는 자리에서도 이미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 색깔이 드러나는 과정 중에 생기는 일에 대한 자각은, 없는 경우가 더 많다. 회사 앞 마당에 작은 연못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피력했더니 얼마 후 수영장 크기의 호수가 하나 만들어졌단다. 어느 기업 사장의 볼멘 고백이다. 어떤 사단장이 퇴근하면서 연병장이 울퉁불퉁한 것 같다고 한마디 했더니 다음날 출근길에 연병장이 다리미로 다린 것처럼 평평해져 있더란다. 밤새 수백 명의 사병들이 군화를 신고 땅을 다진 결과다. 한 재벌 기업은 총수의 분노나 스트레스가 거의 원형질 그대로 말단 직원에게까지 전달되는 의사전달 시스템으로 유명하다. 효율적인 조직구조이기도 하지만, 독이 든 술을 마셨을 때 건강한 혈관일수록 독을 온몸에 빨리 퍼뜨리는 것 같은 부작용도 있다. 리더가 자신의 권력에 대한 자의식이 아예 없거나 희박할 경우 그 폐해는 치명적이다. 일사불란한 조직의 수장일수록 자신의 권력이 갖는 영향력에 대한 자의식이 짱짱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15억이 아니라 15조의 재앙도 순식간이다. 특별한 권력을 가진 모든 이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심리적 조언이다.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 <한겨레> 2008년 1월30일치 칼럼
(다) 무정부주의자들은 권력이 모든 사회에서 갖고 있는 하나의 특정한 필연적인 징표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삶을 견뎌낼 수 있도록 하는, 고도로 발달된 사회적 조종의 방법도 당연히 존재한다. 그렇지만 무정부주의자들은 이러한 조종이 일종의 강요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문제 삼고 있다. 왜냐하면 바로 그 요소가 사회적 질서의 힘을 정치적 권력으로 변형시키기 때문이다. 또한 무정부주의자들은 세계를 자유론자의 시각에서 고찰하며, 그래서 정치권력은 자유를 파괴하기 때문에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본다. 즉 자유가 결여된 곳에서는 사회생활이 불가능하다고 본다. (생략) (라) 내가 집이 가난해서 말이 없으므로 혹 빌려서 타는데, 여위고 둔하여 걸음이 느린 말이면 비록 급한 일이 있어도 감히 채찍질을 가하지 못하고 조심조심하여 곧 넘어질 것같이 여기다가, 개울이나 구렁을 만나면 곧 내려 걸어가므로 후회하는 일이 적었다. 발이 높고 귀가 날카로운 준마로서 잘 달리는 말에 올라타면 의기양양하게 마음대로 채찍질하여 고삐를 놓으면 언덕과 골짜기가 평지처럼 보이니 심히 장쾌하였다. 그러나 어떤 때에는 위태로워서 떨어지는 근심을 면치 못하였다. 아! 사람의 마음이 옮겨지고 바뀌는 것이 이와 같을까? 남의 물건을 빌려서 하루 아침 소용에 대비하는 것도 이와 같거든, 하물며 참으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이랴. 그러나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이 어느 것이나 빌리지 아니한 것이 없다. 임금은 백성으로부터 힘을 빌려서 높고 부귀한 자리를 가졌고, 신하는 임금으로부터 권세를 빌려 은총과 귀함을 누리며, 아들은 아비로부터, 지어미는 지아비로부터, 비복(婢僕)은 상전으로부터 힘과 권세를 빌려서 가지고 있다. 그 빌린 바가 또한 깊고 많아서 대개는 자기 소유로 하고 끝내 반성할 줄 모르고 있으니, 어찌 미혹(迷惑)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다가도 혹 잠깐 사이에 그 빌린 것이 도로 돌아가게 되면, 만방(萬邦)의 임금도 외톨이가 되고, 백승(百乘)을 가졌던 집도 외로운 신하가 되니, (생략)
■ 해결 전략 제시문 (라)의 필자는 말을 빌려 탄 경험을 통해 개인에게 완전히 종속되는 소유물은 없으며, 모든 것이 빌려 쓰는 것이라는 가치관을 피력했다. 이 글에서는 물질뿐만 아니라 명예, 인간관계 등 희소성의 가치가 지배할 수 있는 삶의 모든 영역을 아울러 소유에 대한 가치관의 전환을 촉구한다. 만약 (가)~(다) 제시문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제시문 (라)는 이처럼 소유에 대한 포괄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논제에서는 특별히 제시문 (가)~(다)에 언급된 ‘국가’나 ‘권력’의 문제와 관련해 지시어의 의미를 풀이하라고 한정하고 있으므로 이 조건을 준수해야 한다. (가)에서는 끝없는 권력욕을 채우는 과정에서 악행이 나타나게 되며, 이 점에서 권력은 그 자체로 악하다고 주장한다. 한편, (나)에서는 (가)와 같은 주장이 나오게 된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는 가운데, 권력이 도덕과 무관하지 않으며 양자의 통합 또한 가능하다고 본다. (다)는 권력에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요소가 개입되어 있음을 보여주며, 국가 권력에 의한 삶의 통제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안으로 무정부주의를 제안하고 있다. 세 제시문 모두 권력의 부정적 속성을 언급하고 있는데, (라)의 관점에서 이 문제에 접근하면 정치 권력은 온전히 내 것이 아니며 타인으로부터 위임받는 일시적 힘으로 규정된다.
■ 자료 검색
야콥 부르크하르트의 <세계 역사의 관찰>

■ 관점 넓히기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 공직자들은 스스로의 권력 행사가 국민의 위임에 따른 것이라는 점을 끊임없이 의식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글이다) 경찰청이 현판 교체 문제로 여론의 눈흘김을 받고 있다. 경찰청장이 바뀔 때마다 새 청장의 지휘방침을 적은 현판을 새로 만들었는데 그 비용으로 매회 4억8천만원 가량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지난 5년간 세 명의 경찰청장이 현판 교체 비용으로만 15억원 가량을 사용했는데, 그렇다고 그들이 획기적으로 다른 내용을 주장한 것도 아니다. ‘함께 하는 치안, 편안한 나라’라는 구호에서 ‘최상의 치안서비스를 위해’로, 다시 ‘믿음직한 경찰, 안전한 나라’라는 구호를 전파하는 데 각각 5억원 가량을 사용한 것이다. 국가 예산이 단지 기관장 한 사람의 위엄을 위해 쓰여진 세금 낭비의 대표적 사례라는 날선 비판들이 줄을 잇는다. (중략) 비단 경찰 총수에 국한된 문제일 수 없다. 자리가 높아질수록 자신이 가진 권력의 크기를 뼈저리게 의식하는 일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고 있는 일의 특성상 최고 의사결정권자들에 대한 심리분석과 상담을 많이 하는데 그런 경험에 의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권력이 많아질수록 자신의 심리적 색깔이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자신에 대한 사회적 검증이 일정 부분 끝났다는 데서 오는 자기 확신과 더불어 누구의 통제를 받는 자리에서도 이미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 색깔이 드러나는 과정 중에 생기는 일에 대한 자각은, 없는 경우가 더 많다. 회사 앞 마당에 작은 연못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피력했더니 얼마 후 수영장 크기의 호수가 하나 만들어졌단다. 어느 기업 사장의 볼멘 고백이다. 어떤 사단장이 퇴근하면서 연병장이 울퉁불퉁한 것 같다고 한마디 했더니 다음날 출근길에 연병장이 다리미로 다린 것처럼 평평해져 있더란다. 밤새 수백 명의 사병들이 군화를 신고 땅을 다진 결과다. 한 재벌 기업은 총수의 분노나 스트레스가 거의 원형질 그대로 말단 직원에게까지 전달되는 의사전달 시스템으로 유명하다. 효율적인 조직구조이기도 하지만, 독이 든 술을 마셨을 때 건강한 혈관일수록 독을 온몸에 빨리 퍼뜨리는 것 같은 부작용도 있다. 리더가 자신의 권력에 대한 자의식이 아예 없거나 희박할 경우 그 폐해는 치명적이다. 일사불란한 조직의 수장일수록 자신의 권력이 갖는 영향력에 대한 자의식이 짱짱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15억이 아니라 15조의 재앙도 순식간이다. 특별한 권력을 가진 모든 이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심리적 조언이다.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 <한겨레> 2008년 1월30일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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