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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떨어진 국어실력 한자공부 하면 향상된다?

등록 2008-09-28 17:12

한자를 배우는 게 어휘력과 독해력을 키우는 데 필수적이라는 주장이 일고 있다. 이에 대해 국어 실력은 다양한 언어환경을 고려해 총체적으로 접근할 문제지 한자 교육으로 해결할 사안이 아니라는 반론도 팽팽하다.
한자를 배우는 게 어휘력과 독해력을 키우는 데 필수적이라는 주장이 일고 있다. 이에 대해 국어 실력은 다양한 언어환경을 고려해 총체적으로 접근할 문제지 한자 교육으로 해결할 사안이 아니라는 반론도 팽팽하다.
“글자만 암기 말고 활용법 같이 익히면 도움”
“어휘력 달리는 건 어휘교육 방향이 바뀐 탓”
전문가들 한자교육 효용 논란

“가내수공업은 한자를 풀이해 보면 집 안에서 손으로 만드는 일이라는 뜻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지?”

속초 중앙초등학교 김은행 교사(<초등학교 단어의 비밀> 저자)는 교과 내용을 설명하기 앞서 그날 배우는 주요 개념들을 한자로 풀이해 준다. 그는 “4학년 수업을 맡은 뒤 첫 수업에서 국어 교과서를 편 뒤에 모르는 낱말에 동그라미를 치라고 했더니 조사와 서술어를 뺀 나머지, 특히 한자조합어는 모르는 단어 투성이더라”고 말했다. 특히 전국 단위 시험을 치를 때면 문제에 나온 낱말의 뜻을 묻기 위해 여기저기 손을 드는 학생들이 많다고 한다.

초등학생들의 국어 실력에 대한 교사들의 고민이 깊다. 교사들이 어떤 식으로든 한자를 가르치는 것은 이런 현실에 대한 자구책이다. 우리말의 70%가 한자어로 이뤄져 있어 아이들에게 한자에 대해 어떤 형태든 이해를 시켜야 한다고 일부 교사들이 생각하는 것도 이런 현실과 무관치 않다.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한자어는 많다. 국립국어원이 2003년에 낸 <초등학교 교과서 한자어 및 한자 분석 연구>라는 보고서를 보면 전체 초등 교과서에서 한자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55%에 이른다. 1학년 교과서에 나오는 한자어는 850여자에 그치지만 3학년이 되면 3200여자로 껑충 뛴다.

그러다 보니 초등학생 학부모들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한자 실력이 곧 공부의 토대를 이룬다고 믿는다. 초등학생을 중심으로 한자 열풍이 부는 이유이기도 하다. 강원향 장원교육 한자파트 주임은 “공부를 잘하려면 한자를 알아야 한다는 인식이 학부모들 사이에서 널리 퍼져 있다”며 “초등학교 입학 전에는 영어를 시키느라 여력이 없던 부모들도 초등학교 1학년이 되면 한자 학습지를 찾기도 한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우리서당 관계자는 “자녀가 공부를 못하는 이유가 한자로 이뤄진 어려운 낱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 있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이 자녀와 함께 서당을 찾는 일이 종종 있다”고 말했다.

초등 교과서에 가장 많이 나오는 한자어 16위
초등 교과서에 가장 많이 나오는 한자어 16위

그러나 한자에 대한 이해가 학습에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결정적이지는 않다고 증언하는 교사도 있다. 우지영 서울 신당초 교사는 “초교 4학년을 맡았을 때 1년 동안 급수시험 5급에 배정된 한자 150자를 함께 공부했는데 날이 갈수록 그 결과가 쌓이면서 수업할 때 수월하긴 했다”면서도 “하지만 4학년이 되면 한자를 아는 아이나 모르는 아이나 교과 내용을 힘들어 하기는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또한 지금처럼 한자를 배우고 가르쳐서는 국어 실력을 키울 수 없다는 데 많은 이들이 공감한다. 급수시험을 대비하면서 낱글자를 깨치는 식은 곤란하다는 지적이다.

진재교 성균관대 한문교육과 교수는 “영어를 가르치면서 영어 단어만 외우면 어휘력이나 독해력이 늘겠냐”며 “낱글자를 주입식으로 암기하는 방식으로는 한자가 담고 있는 뜻과 어휘를 만드는 원리 등을 알 수 없다”고 했다. 강원향 주임도 “엄마들은 흔히 하루에 한자 몇자를 쓰고 외우면 한자 공부가 끝난 것으로 아는데 그렇게 해서는 어휘력이 늘지 않는다”며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쓰이는지 등 활용법을 익히지 않으면 금세 잊고 만다”고 말했다.

더욱이 학생들의 국어 실력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한자를 배우는 것이 국어의 어휘력을 키운다는 데 대해서는 견해가 갈린다.

김여주 한국한문교육학회 회장(성신여대 한문교육과 교수)은 “외국에서 들어온 것 가운데 한자가 가장 한국화된 것이라고 본다”며 “한글전용의 필요성 때문에 한자가 배제돼 온 측면이 있지만 역사적으로 한자는 국어의 일부이므로 한자를 가르치는 게 곧 국어 실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어 어휘력은 한자 교육이 아닌 어휘력 교육 자체의 문제라는 지적도 강하다.

임천택 부산교대 교수(국어교육과)는 “과거에는 받아쓰기나 사전을 찾는 활동 등으로 국어교과 안에 어휘만 따로 가르치도록 교과과정이 편성돼 있었다”며 “현재 우리 학생들의 국어 실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문맥 속에서 어휘를 추론하는 방식으로 어휘 교육의 방향이 바뀐 탓이 크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더욱 근본적으로는 초등학교 교과서 자체에 대한 검토도 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한자어를 쓰지 않고 우리말을 풀어 이해를 돕고, 한자어를 사용하더라도 아이들의 수준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교과서가 어른들의 어휘로 너무 어렵다는 얘기도 만만치 않게 나온다.

진명선 기자 edu@hani.co.kr

‘강남 따라하기’ 사교육 부추길라

교재검증과 교사양성도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

지난 17일 서울 강남교육청이 “조기 한자 학습을 통해 학생들의 어휘력과 독해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필요해 관내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한자 교재를 제공하고 한자 교육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놓고 여러 논란이 일고 있다.

그동안 사교육에서 주로 이뤄져 온 한자 교육을 공교육이 맡는다는 점 때문에 긍정적인 평가를하는 한문교육학자들이 있다. 강민구 경북대 한문학과 교수는 “그간 수많은 교육 이슈를 만들어 온 강남에서 한자 교육을 시작한다는 게 문제지 한자 교육을 공교육이 끌어안겠다는 시도는 옳은 것”이라며 “한자 교육 시장이 커지면서 한자 교육의 필요성과 방법이 왜곡된 측면이 크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계획이 외려 사교육을 부추기는 결정이 될 거라는 우려도 크게 나온다. 서울 강남에 인접한 초등학교에서 일하는 한 교사는 “이 동네 학부모는 강남 입성이 목적인데 강남이 중요하다고 인정했으니 사교육비 지출에서 한자의 비중을 늘릴 것”이라고 했다. 경기도의 한 학부모는 “강남에서 한다고 하면 전국적으로 붐이 일텐데 한자를 공부하고 싶지 않은 아이나 학부모까지 경쟁으로 내몰릴 것 같아 걱정된다”고 했다.

국어 실력의 향상을 한자 교육 강화로 푼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접근이라는 지적도 강하다. 엄해영 서울교대 교수(국어교육과)는 “한자를 배우면 전체적으로 어휘력이 향상되는 건 맞지만 어휘력 향상만으로 독해력이 크는 건 아니며 국어 실력은 다양한 관점에서 고려해야 할 문제”라며 “조기교육이 필요하다며 영어를 초등학교에 도입하고 난 뒤에 그만큼의 성과가 있었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임천택 부산교대 교수(국어교육과)는 “교육은 효율성을 따져야 하는 만큼 똑같은 시간을 들여 교육할 때 어떤 방식이 국어 실력 향상에 효과가 있는지 따져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청이 채택하는 교재나 교육방식을 미리 검증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진재교 성균관대 한문교육과 교수는 “공교육이 하는 한자 교육은 사교육과는 다른 모습이어야 할 것 아니냐”고 반문하며 “교육청이 자체 제작하는 교재나 가르치는 방식이 실제 어떤 교육적 효과를 거둘 수 있는지 검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남교육청은 관내에서 한자교육을 연구해 온 현직 교사 8명에게 교재 제작을 의뢰해 다음달 인쇄를 앞두고 있으며 3명의 현직 대학 교수들에게 검수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누가 가르칠지도 문제다. 엄해영 교수는 “한자 교육을 초등학교에 도입하는 것은 교사를 양성하는 교육과정의 변화도 고려해야 하는 만큼 일개 지역교육청에서 다룰 사안이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전국초등국어교사모임의 한 교사는 “쓰기 교육이 아니라 활용 교육이라면 영어를 다 같이 배우는 것보다 한자를 다 같이 배우는 게 낫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라면서도 “다른 지역교육청이 우르르 쫓아할 위험이 있는 만큼 시작부터 초등학교 교육과정의 목표와 전체적인 내용을 고려한 접근이 이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진명선 기자 ed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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