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를 배우는 게 어휘력과 독해력을 키우는 데 필수적이라는 주장이 일고 있다. 이에 대해 국어 실력은 다양한 언어환경을 고려해 총체적으로 접근할 문제지 한자 교육으로 해결할 사안이 아니라는 반론도 팽팽하다.
“글자만 암기 말고 활용법 같이 익히면 도움”
“어휘력 달리는 건 어휘교육 방향이 바뀐 탓”
“어휘력 달리는 건 어휘교육 방향이 바뀐 탓”
전문가들 한자교육 효용 논란
“가내수공업은 한자를 풀이해 보면 집 안에서 손으로 만드는 일이라는 뜻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지?”
속초 중앙초등학교 김은행 교사(<초등학교 단어의 비밀> 저자)는 교과 내용을 설명하기 앞서 그날 배우는 주요 개념들을 한자로 풀이해 준다. 그는 “4학년 수업을 맡은 뒤 첫 수업에서 국어 교과서를 편 뒤에 모르는 낱말에 동그라미를 치라고 했더니 조사와 서술어를 뺀 나머지, 특히 한자조합어는 모르는 단어 투성이더라”고 말했다. 특히 전국 단위 시험을 치를 때면 문제에 나온 낱말의 뜻을 묻기 위해 여기저기 손을 드는 학생들이 많다고 한다.
초등학생들의 국어 실력에 대한 교사들의 고민이 깊다. 교사들이 어떤 식으로든 한자를 가르치는 것은 이런 현실에 대한 자구책이다. 우리말의 70%가 한자어로 이뤄져 있어 아이들에게 한자에 대해 어떤 형태든 이해를 시켜야 한다고 일부 교사들이 생각하는 것도 이런 현실과 무관치 않다.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한자어는 많다. 국립국어원이 2003년에 낸 <초등학교 교과서 한자어 및 한자 분석 연구>라는 보고서를 보면 전체 초등 교과서에서 한자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55%에 이른다. 1학년 교과서에 나오는 한자어는 850여자에 그치지만 3학년이 되면 3200여자로 껑충 뛴다.
그러다 보니 초등학생 학부모들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한자 실력이 곧 공부의 토대를 이룬다고 믿는다. 초등학생을 중심으로 한자 열풍이 부는 이유이기도 하다. 강원향 장원교육 한자파트 주임은 “공부를 잘하려면 한자를 알아야 한다는 인식이 학부모들 사이에서 널리 퍼져 있다”며 “초등학교 입학 전에는 영어를 시키느라 여력이 없던 부모들도 초등학교 1학년이 되면 한자 학습지를 찾기도 한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우리서당 관계자는 “자녀가 공부를 못하는 이유가 한자로 이뤄진 어려운 낱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 있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이 자녀와 함께 서당을 찾는 일이 종종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자에 대한 이해가 학습에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결정적이지는 않다고 증언하는 교사도 있다. 우지영 서울 신당초 교사는 “초교 4학년을 맡았을 때 1년 동안 급수시험 5급에 배정된 한자 150자를 함께 공부했는데 날이 갈수록 그 결과가 쌓이면서 수업할 때 수월하긴 했다”면서도 “하지만 4학년이 되면 한자를 아는 아이나 모르는 아이나 교과 내용을 힘들어 하기는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또한 지금처럼 한자를 배우고 가르쳐서는 국어 실력을 키울 수 없다는 데 많은 이들이 공감한다. 급수시험을 대비하면서 낱글자를 깨치는 식은 곤란하다는 지적이다. 진재교 성균관대 한문교육과 교수는 “영어를 가르치면서 영어 단어만 외우면 어휘력이나 독해력이 늘겠냐”며 “낱글자를 주입식으로 암기하는 방식으로는 한자가 담고 있는 뜻과 어휘를 만드는 원리 등을 알 수 없다”고 했다. 강원향 주임도 “엄마들은 흔히 하루에 한자 몇자를 쓰고 외우면 한자 공부가 끝난 것으로 아는데 그렇게 해서는 어휘력이 늘지 않는다”며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쓰이는지 등 활용법을 익히지 않으면 금세 잊고 만다”고 말했다. 더욱이 학생들의 국어 실력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한자를 배우는 것이 국어의 어휘력을 키운다는 데 대해서는 견해가 갈린다. 김여주 한국한문교육학회 회장(성신여대 한문교육과 교수)은 “외국에서 들어온 것 가운데 한자가 가장 한국화된 것이라고 본다”며 “한글전용의 필요성 때문에 한자가 배제돼 온 측면이 있지만 역사적으로 한자는 국어의 일부이므로 한자를 가르치는 게 곧 국어 실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어 어휘력은 한자 교육이 아닌 어휘력 교육 자체의 문제라는 지적도 강하다. 임천택 부산교대 교수(국어교육과)는 “과거에는 받아쓰기나 사전을 찾는 활동 등으로 국어교과 안에 어휘만 따로 가르치도록 교과과정이 편성돼 있었다”며 “현재 우리 학생들의 국어 실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문맥 속에서 어휘를 추론하는 방식으로 어휘 교육의 방향이 바뀐 탓이 크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더욱 근본적으로는 초등학교 교과서 자체에 대한 검토도 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한자어를 쓰지 않고 우리말을 풀어 이해를 돕고, 한자어를 사용하더라도 아이들의 수준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교과서가 어른들의 어휘로 너무 어렵다는 얘기도 만만치 않게 나온다. 진명선 기자 edu@hani.co.kr
초등 교과서에 가장 많이 나오는 한자어 16위
또한 지금처럼 한자를 배우고 가르쳐서는 국어 실력을 키울 수 없다는 데 많은 이들이 공감한다. 급수시험을 대비하면서 낱글자를 깨치는 식은 곤란하다는 지적이다. 진재교 성균관대 한문교육과 교수는 “영어를 가르치면서 영어 단어만 외우면 어휘력이나 독해력이 늘겠냐”며 “낱글자를 주입식으로 암기하는 방식으로는 한자가 담고 있는 뜻과 어휘를 만드는 원리 등을 알 수 없다”고 했다. 강원향 주임도 “엄마들은 흔히 하루에 한자 몇자를 쓰고 외우면 한자 공부가 끝난 것으로 아는데 그렇게 해서는 어휘력이 늘지 않는다”며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쓰이는지 등 활용법을 익히지 않으면 금세 잊고 만다”고 말했다. 더욱이 학생들의 국어 실력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한자를 배우는 것이 국어의 어휘력을 키운다는 데 대해서는 견해가 갈린다. 김여주 한국한문교육학회 회장(성신여대 한문교육과 교수)은 “외국에서 들어온 것 가운데 한자가 가장 한국화된 것이라고 본다”며 “한글전용의 필요성 때문에 한자가 배제돼 온 측면이 있지만 역사적으로 한자는 국어의 일부이므로 한자를 가르치는 게 곧 국어 실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어 어휘력은 한자 교육이 아닌 어휘력 교육 자체의 문제라는 지적도 강하다. 임천택 부산교대 교수(국어교육과)는 “과거에는 받아쓰기나 사전을 찾는 활동 등으로 국어교과 안에 어휘만 따로 가르치도록 교과과정이 편성돼 있었다”며 “현재 우리 학생들의 국어 실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문맥 속에서 어휘를 추론하는 방식으로 어휘 교육의 방향이 바뀐 탓이 크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더욱 근본적으로는 초등학교 교과서 자체에 대한 검토도 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한자어를 쓰지 않고 우리말을 풀어 이해를 돕고, 한자어를 사용하더라도 아이들의 수준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교과서가 어른들의 어휘로 너무 어렵다는 얘기도 만만치 않게 나온다. 진명선 기자 ed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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