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자치활동의 토양이 메말라가고 있다. 불만에 찬 학생들이 교문을 넘어 거리로 나서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진은 ‘21세기 청소년 공동체 희망’이 학생독립운동 기념일을 맞아 주최한 행사에 나온 학생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학교 강요에 교문지도 떠맡으며
정작 학생회 요구는 관철 못해
학생들 시선도 곱잖아 ‘이중고’
정작 학생회 요구는 관철 못해
학생들 시선도 곱잖아 ‘이중고’
학생자치활동에 대한 학교의 인식은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학생들이 반발하는 일을 학생회를 앞세워 강행하거나 학생 대표 기구로서의 학생회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 구태가 여전하다.
최근 ㅇ고 학생회는 ‘공수 인사 캠페인’을 벌였다가 학생들의 큰 불만을 샀다. 공수(拱手) 인사는 배에 두 손을 얹고 허리를 굽히는 ‘공손한’ 방식이다. 게다가 ‘사랑합니다’라는 인사말까지 정하면서 학생들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학생들의 불만에 대해 학생회장 ㅈ양은 억울해했다. 이 캠페인이 학교장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거 왜 하나 싶었지만 교장선생님의 의지가 워낙 확고해서 어쩔 수가 없었다”며 “솔직히 하다 보니 좋은 점도 있는 것 같아서 학생회 차원에서 밀어붙이고 있지만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불만은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ㄷ고 학생회는 학생부장이 교문 지도에 참여하라고 하는 바람에 곤란을 겪었다. 경고를 세 차례 주고 누적되면 벌칙을 받는 식으로 교문 지도 방식을 바꿨지만 학생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교문 지도는 아무래도 강압적으로 이뤄지기 마련인데 교사들이 추천하는 선도부를 따로 구성해서 하면 될 일이지 학생들이 뽑은 학생회가 하는 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학생회장 ㅇ군은 말했다. 학생회의 구실에 어긋나는 일을 요구하는 학교에 대해 학생회장이 달리 저항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필요에 의해 학생회를 이용하면서도 학생회의 정당한 요구에는 귀를 닫는 게 학교다. 특히 최근 서울권의 고교는 ‘고교선택제’라는 명분을 걸고 학생회가 학생을 대표해 행사하는 권리를 제한하는 일이 많다.
서울 ㅈ여고 학생회는 정성스레 준비한 축제를 외부에 개방하지 못했다. 대학 진학 실적이 그리 좋지 않은 마당에 축제를 떠들썩하게 하면 ‘노는 학교’로 찍힐 수 있다는 학교의 우려 때문이었다. 학생회장 ㅇ양은 “외부 개방을 안 해서 결국 축제가 폐지된 학교의 사례와 개방했을 때 생길 수 있는 문제점에 대한 대안까지 마련해 간담회를 했는데 선생님들은 요지부동이었다”고 말했다. 서울의 ㄷ고는 축구대회를 골대 하나로 치렀다. 다른 학교에서 골대를 빌리기로 합의가 된 상태였지만 학교장이 허락하지 않았다. 학교장은 축제가 커지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
사실 학생회의 지위는 초라할 수밖에 없다.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초중등학교의 운영에 대한 모든 사항을 법으로 규정한 초중등교육법에도 학생회에 대한 언급이 없다. 제17조에 “학생자치활동은 권장·보호되며 그 조직 및 운영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은 학칙으로 정한다”고 나와 있을 뿐이다. 김창수 영신고 교사는 “교육부가 낸 학생회칙 기본시안을 보면 학생회는 학생 자치활동이 아니라 학생 특별활동”이라며 “현재로서 학생회는 학생 자치 기구도 아니고 대표 기구는 더더욱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순영 전 민주노동당 의원은 지난 2006년 학생회의 존립 근거를 명시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관련 내용이 빠진 채 통과됐다.
이수광 이우학교 교감은 “내신성적이 좋지 않은데도 학생회 활동을 한 경험 덕에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종종 있다”며 “학생회 활동이 기획능력을 키울 수 있는 또다른 학습이라고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진명선 기자 ed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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