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교육

모두가 ‘빈곤’해지는 ‘경쟁 패러다임’

등록 2008-11-30 19:40

고현숙의 학부모코칭
고현숙의 학부모코칭
고현숙의 학부모코칭 /

미국에서 세 자녀를 키운 분의 경험담이다. 유학생으로 갔다가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고, 부부가 일하면서 훌륭한 성인으로 잘 성장시켰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힘든 생활에서도 초등학교 아들이 공부를 잘하는 게 큰 기쁨이었다. 수학성적도 뛰어나고 과학도 잘해서 선생님이 칭찬 글을 보내오고, 상도 받아왔다. 하루는 이 엄마가 학교에 자원봉사를 갔다가, 아들의 반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단다. “얘들아, 너희 친구들 중에서 누가 제일 똑똑하다고 생각하니?” 아이들로부터 아들 이름이 나오기를 내심 바라면서 던진 이 질문에 아이들은 이렇게 대답하더라는 것이다.

“마이크는 역사에 대해 모르는 게 없어요. 린다는 노래를 잘해요.” “엘리는 게임을 하면 항상 이겨요. 똑똑해요.” 옆에서 듣던 다른 아이는 “제임스라는 친구 아세요? 걔는 엄청 웃겨주는데요, 천재예요!”라고. 엄마는 속으로 많이 부끄러웠다고 한다. 어린아이들이 생각하는 게 자기보다 훨씬 훌륭하더라는 거다. 다양한 장점을 볼 수 있고, 한 사람만이 아닌 모두 인정받을 수 있다는 그 사고방식이 부러웠다.

리더십 전문가인 스티븐 코비 박사는 경쟁 패러다임과 이를 강요하는 조직 시스템에 문제를 제기한다. 경쟁에서 이긴 사람에게 상을 주는 이른바 ‘미인대회 패러다임’이 전체 조직을 위해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협력할 때 오히려 조직이나 사회에 더 나은 대안이 나온다는 것이다. 극한 경쟁이 전체에게 득이 되는 경우는 스포츠 분야 정도라고 말한다.

경쟁을 부추기는 마음, 혹은 경쟁 문화에 길들여져서 나오는 마음으로 ‘빈곤의 심리’라는 게 있다. ‘이 세상에 좋은 것은 매우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남이 가져가면 그만큼 내 몫이 줄어든다’고 느끼는 심리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은 정확하게 빈곤의 심리를 나타낸다. 잘나가는 동창을 보면 괜히 우울해지는 것, 동료가 인정받으면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는 것, 투자로 돈 벌었다는 이웃을 보면 마음이 급해지는 것 등등. 모두 빈곤의 심리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빈곤의 심리를 가진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은근한 두려움을 조장하며 그걸 전수한다. “빨리 가서 좋은 자리 차지해야지. 네 자리가 없으면 어떡할래!” “바보야, 노트 필기한 걸 친구한테 그냥 주면 어떡하니? 네가 얼마나 노력한 건데 ….” “쯧쯧… 순진하기는! 네가 이용당하는 거라고.” 이런 분위기에서 노트 빌려 달라는 반 친구의 부탁을 당당하게 거절하는 아이들이 나오고, 성공의 사다리를 오르려면 남을 무시하고 밟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상황적 영리함을 배우는 것이다.

빈곤의 심리의 반대말은 ‘풍요의 심리’다. 세상에 좋은 것은 많고 풍요로워서, 남이 성공하고 인정받아도 내 몫은 남아 있다고 보는 패러다임이다. 남을 질시하는 좁은 마음으로는 크게 성공할 수 없다. 리더십을 키울 수 없다. 아이들을 리더로 키우려면 빈곤의 심리에 사로잡혀 작은 경쟁의 틀에서 세상과 사람을 보도록 하면 안 된다. 더 큰 이슈, 더 큰 기여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게 하자. ‘네가 친구를 어떻게 도울 수 있느냐’고 물어보는 부모가 자녀를 리더로 키우는 것이다.

고현숙 한국코칭센터 대표 helen@eklc.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