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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포기는 금물…작은 가능성 믿어보세요”

등록 2008-11-30 20:49

김승찬(서울과학고 2학년)군이 마인드맵처럼 논문을 쓰게 된 과정을 그림으로 그려가며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다.
김승찬(서울과학고 2학년)군이 마인드맵처럼 논문을 쓰게 된 과정을 그림으로 그려가며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다.
창의적 문제해결능력
창의적 인재가 말한다 / 국제학술지 논문 실은 서울과학고 김승찬 군

‘질문하고 생각하기’ 습관화
할아버지 심장질환 지켜보며
자기장-신경세포 연구 성과

움직이는 모형을 좋아하는 초등학교 5학년 남자아이가 있었다. 어느날, 무선 자동차 모형으로 놀다가 질문이 생겼다. “더 멀리 가게 할 수는 없을까?” 안테나의 원리를 찾아보던 아이는 직접 안테나를 만들기로 했다. 곧 집에 있던 우산을 뼈대로 안테나가 탄생했다. “철사를 꽂아 작동해보니 자동차가 더 멀리 가더라고요. 사실 무선비행기가 갖고 싶었는데 그거 대신 멀리 가는 자동차를 갖게 됐죠.”(웃음)

올해 17살이 된 이 아이의 이름은 지난 9월 <신경과학 연구방법 저널>(Journal of Neuroscience Methods)에 실렸다. ‘자석을 이용한 인간 신경세포 돌기의 방향성 유도에 대한 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이 학술지에 실린 것이다. 학술지는 미국 과학정보연구소(ISI)가 “과학적으로 인용할 가치가 있다”고 인증하는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 Scientific Citation Index)급으로 분류된다.

논문의 저자는 서울과학고 2학년 김승찬군. “그림을 그리면서 설명해도 될까요?” 공책을 펼쳐놓고 얘기를 시작했다. 생각나는 것들을 글로 적거나 마인드맵처럼 그림으로 구조화해 정리하는 건 일종의 취미다. “일부러 하는 건 아니고요. 사실 자습시간에 공부가 잘 안 되거나 심심할 때 해보는 거예요.”

“뇌에 전기 자극을 주면 자기장에 따라 신경세포가 활성화하고, 돌기가 일정한 방향으로 배열된다.” 이 가설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거슬러 올라가면 이 가설에는 사연이 있다. “할아버지가 심장계 질환을 앓으셨거든요. 그때 알츠하이머, 파킨슨병 등 노인성질환에 대해 생각하다가 신경세포나 혈관세포에 관심을 두게 됐습니다.” 마침 그 시기에 읽었던 책의 한 대목이 실마리를 제공해주기도 했다. “전기장에 전극을 주면 전극 쪽으로 움직인다”는 대목이다. “전기장에 대한 건 이미 밝혀진 건데 자기장에 의해서 움직인다는 건 아직 없더라고요. 그래서 자기장을 신경세포에 처리하면 돌기 등에서 어떤 반응이 나올까라는 문제를 만들어보고, 그걸 풀기 시작한 거죠.”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 보고….” 논문 주제를 학교 ‘과제연구’(과학고에서 약 한 학기 동안 관심 분야를 주제로 놓고 연구하는 것)로 내놓고 실험을 했던 김군은 작년 5월에 집중적으로 실시했던 실험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문제를 풀면서 나올 수 있는 다양한 해답의 가능성을 놓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김군이 말하는 문제해결력은 이렇게 ‘가능성’이란 단어를 열쇳말로 삼고 있다. “사방으로 뻗어나오는 생각의 가지들을 놓고 거기에 답하는 걸 많이 해보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이건 왜 안 될까? 이것도 되지 않을까?’와 같이 의문을 품고 그 가능성을 믿어보는 거죠. 사실 문제해결력이란 정답을 찾는 능력이 아니라 더 나은 답을 찾는 거잖아요. 내가 가진 지식 100% 가운데 어떤 문제를 풀게 해주는 지식이 80% 정도라고 한다면 그것만 써서는 안 되죠. 혹시 버리게 될지 모르는 나머지 20%의 다른 지식 속에 새로운 답이나 뚜렷한 답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김군은 “가능성을 남겨놓고 그걸 믿어보려는 ‘열린 생각’이 중요한 것 같다”며 “여기에 더해서 집착력, 끈기 같은 것도 필요하다”고 했다.


논문은 이렇게 다양한 가지로 뻗어 나온 질문에 답한 결과였다. 지난해 5월, 자석처리, 현미경 촬영 등 집중실험을 하는 과정에서 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규칙성 없이 사방으로 뻗어 있던 신경세포들은 자석을 처리한 뒤 규칙성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물론 이 실험으로 단번에 논문을 완성한 건 아니다. 저널 쪽에서 실험의 정확도를 알아보기 위해 몇 가지 다른 방법을 더 권했다. 또 영문 내용이 정확하지 않아 약 네 번에 걸쳐 논문을 수정하기도 했다. 연구 구상을 시작한 지난해 3월부터 1년여가 지난 올해 7월2일, “논문 게재를 허락한다”는 최종 확답이 왔다. “워낙 감격스러운 날이라 날짜도 잊지 않고 있어요. 잘 모르지만 아마 신경돌기를 일정한 방향으로 만들 수 있으니까 신경돌기 사이의 연결이 끊겨서 생기는 질환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거예요.”

“‘영재’라는 소리를 자주 듣지 않느냐”는 질문에 김군은 고개를 저었다. “아이큐도 높지 않고, 그냥 평범한 아이였어요. 어린 시절에는 엄청난 개구쟁이였고요. 특별한 능력이 있는 건 아니고 어릴 때 부모님이 일상적으로 도움을 주신 게 아닌가 싶어요. 어떤 그림을 보면서 그것이 뭘 말하는지 질문을 던지는 ‘카드 넘기기 놀이’를 많이 했던 기억이 있어요.”

내년 2월에 조기졸업을 하게 될 김군의 꿈은 대체에너지 연구를 하는 것이다. “중학교 1학년 때 영화 <투모로우>를 보고 이 분야에 ‘필’이 꽂혔다”고 한다. 다른 때보다 시간적 여유가 생긴 요즘 김군이 빠져 있는 것 하나는 톨스토이 우화집. 우화집을 읽으면서 과제를 스스로 내보고 그것을 풀고 있는 것이다. 그는 “창의적 인재요? 잡생각이 많은 사람이 아닐까요?”라며 멋쩍게 웃어 보였다.

“톨스토이 우화 읽어 보셨어요? 초등학교 때 선물 받았던 책인데 요즘 다시 보게 됐어요. 우화집을 읽으면서 짧은 우화들이 각각 어떤 교훈을 말해주는지를 짤막하게 써보는 문제를 내보고 그걸 풀고 있는 중이죠. 우화 속에서 다양한 것들을 찾아낼 수 있을 거 같은데 그게 되게 어렵네요.”

글ㆍ사진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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