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학교 ‘기노쿠니 어린이학교’의 호리 신이치로 교장
일 대안학교 ‘기노쿠니’ 호리 신이치로 교장 인터뷰
수업시간·교과내용 확대보다 체험학습이 중요
집짓기·농장가꾸기 등 삶과 직결된 교육 효과적
수업시간·교과내용 확대보다 체험학습이 중요
집짓기·농장가꾸기 등 삶과 직결된 교육 효과적
“교과서에 있는 내용을 얼마나 흡수했는지가 학력의 척도가 될 수는 없습니다. ‘진짜 학력’은 감성과 사회적 소통능력이 뒷받침될 때 나옵니다.”
요즘 어느 때보다 학생들의 학력 저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경쟁력 있는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겠다며 곳곳에 국제중·고가 설립되고 있고, 초등학생들의 학력 신장을 위해 전국 단위 일제고사도 10년 만에 부활했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학생들의 삶에 진짜 필요한 학력을 키울 수 있을까?
‘일본의 서머힐’이라 불리는 대안학교 ‘기노쿠니 어린이학교’의 호리 신이치로(사진) 교장이 지난달 29일 한국을 찾아 학부모들에게 ‘진짜 학력’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17년째 이 학교를 이끌고 있는 호리 교장은 “많은 학교들이 암기 위주의 학력 개념에 치우치면서 되레 아이들의 생각하는 힘을 뺏고 있다”며 “아이의 발달과정 전체를 아우르는 넓은 의미의 학력 개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학창 시절부터 영국의 대안학교 ‘서머힐’의 교육방식을 일본에서 실천해 보고 싶었다는 호리 교장은 학력 발달에 있어 감성과 사회성이 무엇보다 중시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학교가 성적으로만 학생을 평가하다 보니 학생들이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적에만 치중하다 보니 정작 문제해결 능력은 떨어지는 경우도 흔하고요. 학생들이 함께 힘을 모아 공동의 목표를 이뤄가는 경험을 갖는 것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기노쿠니 학교에서 체험학습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교사와 학생들이 목공 작업을 통해 집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 농장을 가꾸기도 한다. 호리 교장은 “의식주 등 삶과 직결된 내용에 대한 학습이 학생들의 흥미를 이끌어내는 데도 더없이 효과적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사회에 진출해서도 성공할 수 있을까? 호리 교장은 ‘그렇다’고 단언한다. 그는 “기노쿠니에서 상급학교로 진학한 학생들을 조사해 보면, 대체로 성적이 상당히 좋았고 중간 아래로 떨어진 경우는 거의 없었다”며 “스스로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연습이 아이의 경쟁력을 길러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호리 교장은 최근 일본이나 한국의 학력 저하론자들의 주장이 힘을 얻으면서 진행되는 수업 시수 확대, 교과서 내용 증대 등의 흐름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시했다. 주입식 일변도의 교육은 학생들의 사고력을 저하시킬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는 “해마다 수백명이 기노쿠니를 보러 오는데, 그중에는 간디학교, 민들레학교 등 한국 학생들도 많다”며 “앞으로도 한국 학생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면서 좋은 아이디어들을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정민영 기자 minyoung@hani.co.kr
기노쿠니 학교는 일본의 ‘서머힐’…프로젝트형 수업 진행
기노쿠니 어린이학교는 영국 서머힐 학교와 철학자 듀이의 교육론을 결합해 1992년 만들어진 일본의 대안학교다. 하시모토시의 작은 산골마을에 자리잡은 이 학교는 국어·수학·과학 등 주요 교과목이 따로 편제되어 있지 않으며 수업의 대부분이 프로젝트 형태로 진행되는 것이 특징이다. 학년 구분도 없으며, 학생들의 관심분야에 따라 반이 편성된다. 한 학년에 15명 정도씩 전체 학생 수가 90명 정도 되는 작은 규모로, 학생들은 교사에게 호칭을 붙이지 않고 ‘∼씨’로 부른다.
학생들의 개성과 자기결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만큼, 수업도 교사가 주도하기보다는 학생들 사이의 토론 형식으로 진행되고 집짓기, 요리 등 실생활과 연관된 체험학습도 중요하게 다뤄진다. 학교 규정들도 학생과 교사들이 모두 참여하는 회의를 통해 결정되는데 교사는 보조적인 역할에 그치도록 하고 있다. 처음에는 초등학교 하나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초등학교 두 곳, 중학교 두 곳, 고등학교 한 곳으로 늘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각 나라에서 해마다 수백명이 기노쿠니 학교를 방문해 새로운 교육실험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정민영 기자
정민영 기자 minyoung@hani.co.kr
일본 기노쿠니 어린이학교 학생들이 직접 지은 돌집을 손질하고 있다. 도서출판 민들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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