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방과 지역아동센터에 다니는 아동ㆍ청소년의 교육 지원에 발벗고 나선 기업이 많다. 사진은 에스케이가 지원하는 청소년 전용 공부방에 선정된 ‘무지개빛 청개구리’의 음악 동아리 공연 모습. 무지개빛 청개구리 제공
[커버스토리] ‘무지개빛 청개구리’ 출신 김태곤씨
사회복지사 꿈 위해 아동복지학과 입학
몇번 오다 마는 자원봉사자에 쓴소리도 동그란 얼굴에 분홍빛 안경 덕인지 표정이 무척 다채롭다. “형법은 어기지 않고 청소년보호법만 살짝 위반하는 수준에서 방황했다”는 말로 자신의 청소년기를 반추하는 솜씨만 봐도 보통내기가 아니다. 김태곤(21·사진)씨, 그를 키운 건 팔할이 ‘무지개빛 청개구리’(이하 무청)다. 태곤씨가 무청을 만난 건 1999년 초교 5학년 때다. 그때는 이름이 달랐다. 송파꿈나무공부방이었다. 그러다 2004년에 무청이 됐다. 에스케이와 부스러기사랑나눔회가 청소년 전용 지역아동센터를 선정해 지원한다는 사업에 공모해 당선되면서부터다. “공모 제안서를 작성할 때 청소년 공부방의 필요성에 대한 글을 제가 썼어요. 이 곳을 내가 만들었다는 자부심이 있죠.” 태곤씨는 무청을 만들었고 무청은 태곤씨를 키웠다. 밥도 먹이고 공부도 가르치고 다양한 성장의 기회도 마련해 줬다. “우리는 정말 수시로 바깥 나들이를 했어요. 정강이까지 쌓인 눈을 헤치고 광교산 정상을 정복했을 때의 느낌은 아직도 생생해요. 자원봉사자들이 오면 우리 아이들의 밝은 성격에 깜짝 놀라는데요, 이런 성취와 성공의 경험이 다 저력이 된 거죠.”
무청은 또 그를 꿈꾸게 했다.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에 대한 열망이 생겼다. 복실이(이윤복 시설장)와 방글이(엄미경 교사) 부부의 한결같은 지지와 꾸준한 관심을 받으며 어느새 그들처럼 살고 싶어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고 2 겨울방학, “공부를 해야겠다”고 하자 바로 그 다음 주부터 전담 자원봉사 과외교사가 붙었다. 찍기만 하던 수학은 풀게 됐고, 푼 문제는 맞힐 정도가 됐다. 영어는 알파벳 말고는 아는 게 없었는데 독해가 가능해졌다. 무청이 물심양면으로 도운 덕에 태곤씨는 대학생이 됐다. 그는 동원대 아동복지학과 07학번이다.
“5시부터 10시까지 무청에 꼭 가야 하는 바람에 나쁜 짓을 할 시간이 없었죠. 제 주변에는 감옥 가고 퇴학당한 친구들도 좀 있었는데 제가 그렇게 안 된 건 항상 갈 곳이 있기 때문이었어요.” 태곤씨가 소외 계층 청소년을 위한 청소년 공부방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다. 소외 계층 청소년에 대한 투자를 늘리면 나중에는 범죄도 없어지고 법 없이 사는 일도 가능할지 모른다는 게 1년 남짓 아동복지학을 공부한 그의 결론이다.
그가 별 다섯개짜리라며 강조한 마지막 한마디는 자원봉사자에 대한 당부였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1년 오는 게 나아요. 처음에 불타올라서 일주일 내내 오다가 갑자기 연락을 끊는 자원봉사자 선생님들은 정말 공부방 아이들한테 큰 상처를 남겨요. 그런 분들은 차라리 그냥 애들 만나지 말고 청소나 해주세요.” 새해, 공부방과 관련한 자원봉사를 계획한 모든 이들이 귀담아들어야 할 말이다. 진명선 기자
몇번 오다 마는 자원봉사자에 쓴소리도 동그란 얼굴에 분홍빛 안경 덕인지 표정이 무척 다채롭다. “형법은 어기지 않고 청소년보호법만 살짝 위반하는 수준에서 방황했다”는 말로 자신의 청소년기를 반추하는 솜씨만 봐도 보통내기가 아니다. 김태곤(21·사진)씨, 그를 키운 건 팔할이 ‘무지개빛 청개구리’(이하 무청)다. 태곤씨가 무청을 만난 건 1999년 초교 5학년 때다. 그때는 이름이 달랐다. 송파꿈나무공부방이었다. 그러다 2004년에 무청이 됐다. 에스케이와 부스러기사랑나눔회가 청소년 전용 지역아동센터를 선정해 지원한다는 사업에 공모해 당선되면서부터다. “공모 제안서를 작성할 때 청소년 공부방의 필요성에 대한 글을 제가 썼어요. 이 곳을 내가 만들었다는 자부심이 있죠.” 태곤씨는 무청을 만들었고 무청은 태곤씨를 키웠다. 밥도 먹이고 공부도 가르치고 다양한 성장의 기회도 마련해 줬다. “우리는 정말 수시로 바깥 나들이를 했어요. 정강이까지 쌓인 눈을 헤치고 광교산 정상을 정복했을 때의 느낌은 아직도 생생해요. 자원봉사자들이 오면 우리 아이들의 밝은 성격에 깜짝 놀라는데요, 이런 성취와 성공의 경험이 다 저력이 된 거죠.”
김태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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