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숙의 학부모코칭
고현숙의 학부모코칭 /
십 년 전 큰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는 내가 꽤 긴장이 되어서, <첫아이 학교 보내기>라는 책까지 사다 정독을 했다. 하지만 책에서 가르쳐준 정보가 별 도움이 되지 않았는데, 학용품은 아이 수준에게 맞는 것, 옷은 활동하기 편한 것이 좋다는 식의 상식적인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무얼 몰라서 불안한 건지, 뭘 알아야 하는지를 내가 몰랐던 데 있다.
그 뒤 숙명여대 이소희 교수님으로부터, 유대인들은 아이가 처음 유치원이나 학교를 가면 아이들에게 “배우는 것은 꿀처럼 달아요”라고 가르친다는 말을 들었다. 일종의 노래처럼 리듬감 있는 그 말을 계속 반복하면서 아이들이 학교는 즐거운 곳, 배우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라는 마음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꿀처럼 단것이라! 배우는 즐거움을 어쩌면 이렇게 잘 표현했을까? 무엇이 배움을 달게 만들까? 여러 가지 답이 가능하겠지만, 우선 호기심 때문이라고 답하고 싶다. 궁금하고 알고 싶을 때, 눈이 환해지는 것처럼 알게 되는 그 느낌은 얼마나 시원한가? 아마 배 맛처럼 달고 시원할 거다.
노파심에 처음 학교 가는 아이들에게 “학교 가면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 돼!” “잘못하면 혼나.”라고 알게 모르게 두려움을 심어주는 우리 부모들의 태도와, ‘배우는 건 꿀처럼 달아요!’는 선명하게 대비되었다. 물론 학년이 올라갈수록 배우는 것, 공부하는 것을 고행으로 만들어 버리는 현실이 문제인 건 분명하다. 그래도 처음 학교 가는 순간부터 두려움 속에서 틀리지 말아야 하고, 지적받지 말아야 하고, 힘든 것 참으려는 의지를 굳게 하는 그런 대상이 공부라는 건 너무 불행한 일이다. 그 단맛을 느껴 볼 새도 없이…. 어쩔 수 없이 시험 보이고 평가하고 서열을 매길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어떻든 그것은 더 잘 배우게 하려는 수단일 뿐인데, 본말이 뒤바뀌어도 한참 뒤바뀐 것이다.
지방에서 농사지으며 키운 5남매를 모두 서울 의대 등 최상위권 대학에 입학시켰다고 화제가 되고 책을 펴낸 이가 있는데, 그게 <꿩 새끼를 몰며 크는 아이들>이란 책을 쓴 황보태조씨다. 이분은 아이들이 배움을 즐기게 하는 면에선 고수다. 맏이가 학교 가기 전에 한글을 깨치게 할 때는 구멍가게를 할 때였다고 한다. 아이들이 한창 종이 인형을 오리고 옷 입히는 놀이에 빠져 있는 시기였는데, 아이가 인형에 ‘라리공주’라고 이름을 붙이면, 라면 박스와 과자 봉지에 있는 그 글자를 가르쳐주고 따라 그리게 하면서 한글을 저절로 깨치게 했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즐겁게 배우게 할까가 그의 육아법의 핵심이다. 한자를 공부할 때도 지루해하지 않고 즐겁게 익히게 하려고 고민한 그는 “한번 배운 건 깨끗하게 잊어버려라. 그게 정상이고 좋은 거다.”라고 했단다. 왜? 한 번 배운 걸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아등바등할수록 공부는 스트레스가 되고, 진도는 안 나가면서 ‘난 머리가 나빠’라며 자책하게 되니까.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 한번 배우면 지나가고 나중에 부담 없이 공부하기를 반복하면서 점점 자기 것이 되어가도록 했다는 것이다.
처음 학교 가고 진급하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배움의 단맛을 느끼게 해 줄 수 있을까? 아니, 나부터 배움의 그 단맛을 다시 회복하고 싶은 아침이다.
고현숙 한국코칭센터 대표 helen@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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