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교육

‘고교등급제 명분’ 이젠 사라졌건만…

등록 2009-02-15 19:14

고려대 수시모집과 관련해 터진 문제의 본질은 고교등급제일까, 입시사고일까. 고려대가 침묵하고 있는 가운데 의혹이 자꾸만 커지고 있다. 사진은 고려대의 해명을 요구하는 고려대 총학생회 학생들. 
 이정아 기자 <A href="mailto:leej@hani.co.kr">leej@hani.co.kr</A>
고려대 수시모집과 관련해 터진 문제의 본질은 고교등급제일까, 입시사고일까. 고려대가 침묵하고 있는 가운데 의혹이 자꾸만 커지고 있다. 사진은 고려대의 해명을 요구하는 고려대 총학생회 학생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커버스토리]
내신 상대평가제 시행으로 부풀리기 더이상은 불가능
비교과영역 신뢰도까지 ‘업’…“대학들, 고교내신 인정해야”
2004년 10월, 연세대는 고교의 내신 부풀리기 행태가 심각하다며 수시 1학기 지원자의 내신 분석 자료를 공개했다. 모든 과목에서 ‘수’를 받은 지원자가 전체의 15%에 이르고, 37개 학교의 39개 과목에서 전교 1등이 100명이 넘는 등 학교 내신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게 요지였다. 공정하게 입학 전형을 해야 하는 대학으로서 고교등급제를 적용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가 섰던 때였다. 고교등급제가 다시 문제가 된 지금은 어떨까. 여전히 고교 내신이 문제일까?

현장의 교사들은 “이제 내신은 제도적으로 부풀리기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2008학년도 새 입시제도가 시행되고 난 뒤 내신에도 상대평가제가 도입됐기 때문이다. 바로 등급제다. 지난해 고3을 지도한 김재훈 청주여고 교사는 “2004년에야 수우미양가 절대평가였기 때문에 학교에서 의도적으로 수를 주려고 시험을 쉽게 내는 일이 있었지만 상대평가로 바뀌고 난 다음에는 석차백분율이 나오기 때문에 시험이 쉽더라도 1등부터 꼴등까지가 갈린다”고 말했다.

게다가 내신에 적용되는 등급 체계는 1등이 많이 나오면 1등급을 받을 수 없도록 돼 있어 교사들은 시험 난이도 조절에 각별히 신경을 쓰는 분위기다. 김동춘 대전 대성고 교사는 “수능의 등급 체계는 전국 학생의 20%에 해당하는 학생들이 만점을 받아도 전부 1등급을 받을 수 있다”며 “그러나 내신은 전교생의 20%가 만점을 받으면 3등급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서울대 지역균형선발 전형에 지원하는 학생들은 거의 모든 과목에서 1등급을 받아야 합격이 가능하므로 시험을 출제하는 교사들의 부담은 크다.

등급제가 시행되면서 학교생활기록부에 표준편차와 전체 평균 점수가 기록된 것도 내신의 신뢰도를 높이는 장치다. 표준편차는 학생들의 수준이 균질한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잣대로, 실력이 비슷한 학생들이 모인 외고 등의 표준편차는 매우 작다. 따라서 진학담당 교사들은 표준편차와 학교의 평균점수를 함께 보면 학교 전체의 수준은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고 본다. 이미 연세대는 표준편차와 평균점수를 활용한 지점수(Z점수=원점수-평균점수/표준편차)로 학생부 성적을 환산해 반영한다. 박권우 인천 숭덕여고 교사는 “같은 전교 1등이라고 하더라도 표준편차가 큰 학교의 학생은 작은 학교의 학생보다 1.5점까지 손해가 난다”며 “시험 문제 난이도 조절 등을 통해 내신의 신뢰도를 높이는 게 교사들한테는 입시 전략의 한 부분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수년 전 대학들이 내세웠던 고교등급제 적용의 명분은 사라진 셈이다.

내신의 비교과 영역에 대한 신뢰를 높이기 위한 시도도 활발하다. 대전 대성고는 활동의 결과물을 제출하는 동아리에 대해 인증서를 발급한다. 천편일률적인 동아리 활동 가운데에서도 학교가 인증한 동아리 활동을 대학이 눈여겨볼 것이란 판단에서다. 대전 대성고는 학생부나 자기소개서를 제출할 때 학교의 동아리 관리 운영 방침에 대한 안내서도 함께 첨부한다. 김동춘 교사는 “자기소개서나 비교과 활동을 중시하는 대입의 흐름에 맞춰 고안한 입시 전략”이라며 “고교는 고교 내신을 대학이 신뢰할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대학이 여전히 고교 내신을 홀대한다는 점이다. 김동춘 교사는 “대학들도 이제 내신을 인정해 줘야 하는데 내신 반영 비율을 축소할 궁리만 한다”며 “대학 자율화가 진정 고교 교육 정상화에 기여하려면 꼼수 쓰지 말고 일단 내신 반영 비율부터 조정하라”고 말했다.

지난해 고3이었던 서울의 이아무개(19)군이 이번 고려대 문제에 분노하는 이유도 인문계고의 내신을 무력화한 데 따른 것이다. 그는 “고1 때는 <일품수학>이라는 고난도 수학 문제집에서 학교 시험 문제가 나왔다. 내신이 중요하다고 해서 선생님들이 내신 성적에 변별력을 주려고 중간·기말고사도 수능처럼 봤는데 왜 특목고 내신보다 낮게 취급돼야 하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려대 사태’ 핵심은 당락 뒤바뀐 것”

교사들 “고교등급제보다 전형과정 치명적 실수 우선 밝혀야”

‘고려대는 고교등급제를 적용하지 않았다?’

최근 불거진 고려대 문제의 본질은 고교등급제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 ㅇ여고의 최아무개 교사는 “고교등급제로 논란을 몰아가면 고려대에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주는 것밖에 안 된다”며 “전형 과정에 치명적인 실수가 있었는지를 알아내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일부 진학담당 교사들은 이번 문제가 고교등급제와는 무관하다고 본다. 최 교사는 “이론적으로 고교등급제는 전국의 모든 고교를 등급으로 구분한 뒤에 상위 그룹에 가산점을 주는 방식으로 이뤄지는데, 지금 전국의 2000개가 넘는 고교를 그런 식으로 등급화할 여력이 있는 대학은 없다”며 “특목고와 인문계고를 간편하게 나눠서 등급을 매겼다고 볼 수도 있지만 권영길 의원의 자료를 보면 우리 학교보다 못한 외고도 많다”고 말했다. 얼마 전 권영길 의원이 고려대의 2009학년도 수시 2-2 일반전형 1단계 통과자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부산·대구·인천·경기·경북·경남 지역의 외고는 외고 평균 합격률인 58.39%에 못 미친다. 대구 지역의 외고는 합격률이 22%에 그쳤다.

서울 ㅅ고의 이아무개 교사는 “같은 학교에서도 비교과 영역에 별 차이가 없는데도 내신 등급이 더 높은 학생이 떨어지고 낮은 학생이 붙었다”며 “이게 훨씬 이상한데 왜 이런 사실은 제쳐두고 일부 상위권 외고 학생들이 많이 붙었다는 것만 부각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문제가 된 고려대 수시모집에서 교과와 비교과 영역 모두 앞서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 사이에 당락이 뒤바뀐 사례는 많다. 서울의 한 여고에서는 같은 단과대학에 지원한 네 명의 학생 가운데 내신 등급이 가장 높고 비교과도 우수한 학생만 떨어졌다(한겨레 2월 5일치 기사). 지난해 고려대 정경대학에 지원했던 이아무개(19)군은 “나는 2.1등급으로 떨어졌는데 친구는 2.8등급인데도 붙었다”며 “고교등급제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진학담당 교사들 사이에는 이번 고려대 문제를 내신 성적을 무력화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사고’로 이해하는 분위기가 있다. ㄷ고 김아무개 교사는 “서울에 있는 상위권 대학들은 대개 내신 반영 비율을 낮추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한다”며 “이번 고려대 문제는 내신 무력화 시도가 극단적으로 드러난 사례”라고 말했다. 최 교사는 “고려대는 3단계에 걸쳐 입학 사정을 했는데 마지막 단계가 학교간 격차를 보정하는 과정이라고 알고 있다”며 “여기서 문제가 생긴 것으로 보이는데 고려대가 이 부분을 해명하지 않아 의혹이 커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교사들이 침묵하는 이유에 대해 ㅊ여고 김아무개 교사는 “합격한 학생도 제자고 불합격한 학생도 제자인데 교사로서 문제제기를 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진명선 기자 edu@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