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미달자 17명→0명 ‘둔갑’
“채점 너무 깐깐…다시하라”
“채점 너무 깐깐…다시하라”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가 일부 조작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일제고사 자체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한 번의 시험 결과로 전국 지역을 줄 세우고 교육청과 학교에 책임을 묻는 정책의 부작용이 첫 해부터 표면화하고 있는 것이다. 각 지역 교육청과 학교들은 점수를 부풀려 기초학력 미달 학생 수를 줄이려고 직접 통계 수치에 손을 대거나 교사에게 재채점을 요구하는 등 갖가지 방법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 원자료 재분류형 부산시교육청은 지난해 12월19일 일선 학교에 공문을 보내 “각 학교에서 학생들의 성취수준을 4단계로 나눠 인원수를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결과를 통보받은 뒤인 12월31일 갑자기‘업무연락’을 보내 “6학년 전체 학생들이 쓴 정답을 옮겨 적은 원자료(엑셀 파일)를 보내라”고 통보했다. 이에 대해 ㄷ초등학교 한 교사는 “지역 교육청에 이유를 묻자 담당 장학사가 ‘교육과학기술부가 채점한 표집학교와 견줘, 교사들이 직접 채점한 학교의 경우 기초학력 미달자가 2~3배 많다. 미달자가 많으면 담임교사가 무능한 것으로 낙인찍힐 우려가 있으니 협조해 달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사실상 기초학력 미달자 수를 줄이겠다는 의도를 내비친 것이다. 이에 대해 부산 시교육청은 “점 하나만 잘못 찍어도 ‘미달자’로 집계되는 등 문제가 많아 다시 작업을 하기로 한 것일 뿐”이라며“미달자 수를 줄인 것은 절대 아니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전국교직원 노동조합 부산지부 강용근 정책실장은 “예상보다 미달자 수가 많이 나오자 학생들의 성적 원자료를 다시 작업을 해 미달자를 줄인 것으로 의심된다”며 의혹 해소를 위한 철저한 조사를 촉구했다.
■ 데이터 만지기형 20일 공개된 대구시 ㅍ초등학교의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 통계도 의혹투성이다. 기초학력 미달 학생이 5개 과목에 걸쳐 17명에 이르렀으나 한 명도 없는 것으로 처리됐으며, 미달 학생 숫자 외에도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가 전반적으로 높게 보이도록 수치가 부풀려져 있었다. 사회과목에서 보통학력 이상 학생 수는 113명이었으나 166명으로 53명이나 부풀려졌고, 121명에 불과한 영어의 ‘보통학력 이상 학생 수도 162명으로 39명이나 더 늘려서 보고했다. 반면 한 단계 낮은 기초학력 학생 수는 사회과목의 경우 51명에서 2명으로, 영어과목은 41명에서 6명으로 축소됐다. 이에 대해 대구 시교육청은“여러 사정으로 통계처리가 늦어져 평가결과를 확보 못한 담당 교사가 다른 교내 자료를 활용해 임의로 작성한 것”이라고 조사결과를 밝혔지만, 성적 조작 의혹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 재채점 요구형 부산의 한 중학교에서는 지난해 12월께 과목별로 담당교사가 채점을 완전히 마무리하고, 교육청에서 프로그램을 가져와 4단계의 성취수준별 분류도 끝냈으나 뒤늦게 재채첨을 했다. 방학 중에 교감이 5개 과목 교사를 불러내 “주관식 채점이 너무 깐깐하게 점수를 매겨 너무 낮게 나왔으니 융통성 있게 하라”며 사실상 점수를 높여 채점하도록 지시했다. 한 교사는 “다시 채점을 하면서 정답과 비슷하게 쓴 답은 맞는 것으로 해줬다”며 “5개 과목에서 모두 재채점이 이뤄졌고, 교장·교감이 직접 나서서 다시 채점한 과목도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대구/박영률, 유선희 기자 ylp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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