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미있는 느티나무 도서관은 협동조합의 형태로 운영된다. 조합원이 상품을 공동생산하고 투명하게 거래한다는 협동조합의 사전적 의미를 따른다면, 도서관은 자녀 교육에 대한 지혜와 실천을 생산하고 교류하는 곳이다. 사진은 느티나무 도서관을 운영하는 황성희, 배용미, 이승희, 최난경, 유인숙씨. 고양/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엄마강사’들 독서지도 등 나서니
아이들도 마음껏 자기표현 ‘훨훨’
“사교육 불안감 없는 건 아니지만
자주 만나면서 원칙 지켜갑니다”
아이들도 마음껏 자기표현 ‘훨훨’
“사교육 불안감 없는 건 아니지만
자주 만나면서 원칙 지켜갑니다”
새 학기를 앞두고 학부모의 불안을 부추기는 일이 잇따른다. 자기주도학습에 대한 소신과 원칙을 지키던 학부모도 흔들리기 십상이다. 불안한 학부모는 대개 사교육비 지출을 늘리는 데서 해법을 찾는다. 그런데 이승희(42ㆍ경기 고양시)씨의 해법은 다르다. 그의 보루는 학원이 아니라 도서관이다. 그는 자기가 사는 동네에 ‘재미있는 느티나무 도서관(cafe.daum.net/funnytree)’을 세웠다. 도서관은 경기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의 한 건물 6층에 지난 1월5일 문을 열었다.
재미있는 느티나무 도서관을 자녀 교육의 보루로 삼은 것은 이씨 가족 뿐만이 아니다. 같은 생각을 지닌 열 가족이 도서관 설립에 함께 참여했다. 모두 열 한 가족이 200만원씩 출자해 도서관 이름을 딴 조합을 만든 것이다. 도서관은 출자금을 낸 조합원이 조합 운영에도 직접 참여하는 협동조합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자녀를 위해 겨울방학 단기 어학연수 대신 도서관 조합 설립을 선택한 이들이 찾은 해법은 무엇일까.
지난 16일 오후, 재미있는 느티나무 도서관에서는 초등 고학년의 ‘한국사 교실’과 예비 중3을 위한 문학 수업이 잇따라 열렸다. 강사는 다름아닌 도서관 설립회원인 유인숙(43)씨였다. 도서관 입구에서 7000여권에 가까운 장서의 대출과 반납을 맡고 있는 도서관 관장 이승희씨도 설립회원이다. 유씨와 이씨는 도서관 운영위원이기도 하다. 배용미(40)씨, 최난경(43)씨, 황성희(42)씨와 더불어 다섯 명이서 도서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한다. 지난 14일에는 설립회원 11가구가 힘을 모아 도서관 개관식을 치렀다. 실평수 10평 남짓한 도서관을 위해 이들은 무엇이든 함께하고 있었다. 이들한테 도서관은 ‘연대의 공간’이다.
이들의 연대는 거창해 보이지만 매우 일상적이다. 함께 자녀를 키우면서 얻는 현실의 이득이 그렇다. 김병삼(43)씨는 종종 아내 배용미(40)씨와 데이트를 할 때 동료 조합원 가정에 도움을 청한다. “요즘 세상에 애들 맡기는 게 어디 쉽나요. 친척집에 맡기는 것도 서로 꺼리잖아요. 그런데 부모들이 다같이 애들을 키운다고 생각하니까 이럴 때 편하더라고요. 옛날에 이집 저집 어울려 살던 시골 마을이랑 같은 거죠.” 초등학교 교사인 황성희(42)씨는 조합 덕에 직장맘이 겪는 자녀 교육의 설움을 거의 못 느끼고 살았다. “전업주부들은 직장맘이 무임승차 하는 게 싫어서 안끼워준다고도 하잖아요. 그런데 조합은 저녁시간이나 주말을 이용해 직장맘도 똑같은 몫으로 참여해요. 그러니까 괜한 부채감에 시달릴 필요가 없죠.” 사적인 모임보다 책임과 권리가 뚜렷한 조합이 외려 심리적인 부담을 줄인 셈이다.
자녀들이 참여하는 도서관 프로그램을 엄마들이 진행하면서 누리는 부수적인 효과도 꽤 크다. 엄마와 이모랑 수다 떨 듯 하는 수업에서 아이들은 마음껏 자기를 표현할 기회를 누린다. 문학 수업을 듣는 최예나(15)양은 “편안한 분위기에서 수업을 하니까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할 수도 있고 수업을 마치면 속이 다 시원해지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흉금을 트는 아이들한테서 강사 엄마들은 자녀 교육의 힌트를 공유한다. 문학과 역사 수업을 맡고 있는 유인숙씨는 “부모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거나 부모와 소통이 필요한 고민을 할 때, 내가 자녀와 부모 사이에 다리 구실을 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각자 경력이 다른 엄마들이 함께 모여 만든 도서관 프로그램은 웬만한 문화센터 부럽지 않다. 독서지도사, 신문활용교육 강사, 북아트 강사 등의 경력을 지닌 최난경(43)씨와 한국사 지도사와 논술 지도를 꾸준히 해 온 유인숙씨, 생태 수업에 관심이 많은 이승희씨가 각자 관심있는 분야의 강의를 할 뿐인데 아이들은 굉장한 교육의 기회를 누릴 수 있다. 최근 자녀 교육을 위해 이런 저런 전문가 과정을 이수하는 학부모들이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들도 사교육을 한다. 그러나 여느 부모들처럼 부모 자신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이들은 불안하고 혼란스러울 때 도서관에서 함께 자녀를 키우는 동반자를 찾는다. “왜 불안하지 않겠어요. 고교등급제다 일제고사다 하면 똑같이 불안하죠. 하지만 우리아이들이 정말 행복한 교육이 무언지를 끊임없이 토론하고 확인할 수 있으니까 상대적으로 영향을 덜 받아요. 이웃집 엄마 만나면 안된다고 하는데 저희는 오히려 엄마들을 만나야 해요.” 배용미(40)씨의 말이다. 자녀들이 크면서 할 일이 줄어든 아빠들은 올해부터 ‘책바람’이라는 독서모임을 꾸려서 기댈 곳을 만들었다.
조합원은 아니지만 방과후 학교 보육교사로 일하는 김영주(43)씨는 좀 더 일찍 이런 교육을 알지 못한 게 후회스럽다고 했다. “아들이 이제 고2가 되는데 만날 야자하고 학교에서 시키는 대로만 공부하는 걸 보면 좀 답답해요. 이 아이들은 어린데도 자기 의사 표현이 분명한데 우리 아들은 너무 순한 것 같기도 하고요.” 그는 “친구들은 뭔가를 시켜야 하는데 나는 뭐든지 스스로 할 수 있다”고 믿는 최진혁(12)군과 같은 조합의 아이들한테서 인재의 싹을 보는 것이다. 그래도 조합의 부모들은 여전히 경쟁만 강조하는 교육정책이 두렵다. 이들이 사는 고양시의 분위기는 좀 덜 경쟁적인 것이 다행이지만 앞으로가 걱정이다. “책 읽히고 공부하는 즐거움을 깨치는 것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잖아요. 아직까지 그런 일은 없지만 혹시나 성적이 잘 안나와서 아이들이 힘들어하지 않을까 걱정되는 부분이 있어요. 우리랑 같은 고민을 하는 학부모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점점 더 간절해지네요.” 16일, 교과부는 지난 10월 치렀던 전국 단위 학업성취도 평가의 결과를 공개했다. 도서관을 찾은 학부모한테 3월에 있을 ‘엄마 독서 모임’에 오라고 재차 말하는 이승희 관장의 읍소가 절박했던 이유일까. 진명선 기자 edu@hani.co.kr

재미있는 느티나무 도서관에서 열리는 수업은 엄마들이 각자의 경력과 관심사를 나누면서 이뤄진다. 사진은 아이들과 한국사 수업을 하는 유인숙씨.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조합원은 아니지만 방과후 학교 보육교사로 일하는 김영주(43)씨는 좀 더 일찍 이런 교육을 알지 못한 게 후회스럽다고 했다. “아들이 이제 고2가 되는데 만날 야자하고 학교에서 시키는 대로만 공부하는 걸 보면 좀 답답해요. 이 아이들은 어린데도 자기 의사 표현이 분명한데 우리 아들은 너무 순한 것 같기도 하고요.” 그는 “친구들은 뭔가를 시켜야 하는데 나는 뭐든지 스스로 할 수 있다”고 믿는 최진혁(12)군과 같은 조합의 아이들한테서 인재의 싹을 보는 것이다. 그래도 조합의 부모들은 여전히 경쟁만 강조하는 교육정책이 두렵다. 이들이 사는 고양시의 분위기는 좀 덜 경쟁적인 것이 다행이지만 앞으로가 걱정이다. “책 읽히고 공부하는 즐거움을 깨치는 것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잖아요. 아직까지 그런 일은 없지만 혹시나 성적이 잘 안나와서 아이들이 힘들어하지 않을까 걱정되는 부분이 있어요. 우리랑 같은 고민을 하는 학부모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점점 더 간절해지네요.” 16일, 교과부는 지난 10월 치렀던 전국 단위 학업성취도 평가의 결과를 공개했다. 도서관을 찾은 학부모한테 3월에 있을 ‘엄마 독서 모임’에 오라고 재차 말하는 이승희 관장의 읍소가 절박했던 이유일까. 진명선 기자 ed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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