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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교통·도시 발달에 따른 생활·의식의 변화

등록 2009-03-08 17:09수정 2009-03-08 17:10

1906년 ‘일-러 전쟁 화보’에 실린 일본군 철도대대의 경의선 철로 부설 작업. 서울 신촌 와우산 부근에서 흰옷 입은 공병대대가 철길을 놓던 중 찍은 사진이다.  <한겨레> 자료사진
1906년 ‘일-러 전쟁 화보’에 실린 일본군 철도대대의 경의선 철로 부설 작업. 서울 신촌 와우산 부근에서 흰옷 입은 공병대대가 철길을 놓던 중 찍은 사진이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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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읽기 / 논점 1. 근대 교통의 발달에 따른 생활의 변화

1. 철도 교통의 발달과 특색

철도 교통은 1899년 경인선이 개통된 이후 경부선, 경의선, 호남선, 경원선 등이 개통되어 1930년대에 X자형의 기본 철도망이 구성되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이루어진 이러한 철도망의 건설은 주로 우리나라 자원의 수탈을 위해 내륙의 주요 도시나 농업 중심지, 또는 북부 산간 자원 산지와 항구를 연결하는 데 집중되었다. 해방 이후 꾸준히 새로운 노선이 추가되고 복선화, 전철화, 장비의 현대화 등 시설 개선이 이루어져 왔다. 그 결과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철도가 국내 운송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며 산업 발달에 크게 기여하였다.

2. 근대 이전과 이후의 도시 발달

조선 시대에는 수도가 한양으로 정해졌는데, 풍수지리설의 영향과 교통·방어에 유리한 분지라고 하는 지형적인 조건, 국토의 중앙이라는 점 등이 고려된 결정이었다. 또 지방에는 행정·군사 기능을 갖춘 도시뿐만 아니라 상업 도시들이 출현하였으며, 정기 시장이 개설되면서 기존의 지방 행정 도시에 상업적 기능이 부가되었다. 이러한 정기 시장은 경제적 기능뿐만 아니라 정보가 교환되고 확산되게 하는 중심적 기능을 수행하였다.

우리나라의 근대 도시 발달은 일제 식민지 정책 아래에서 그들에게 필요한 자원 개발과 대륙 침략을 위한 수단으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서구의 근대 도시와는 달리 원료를 반출하고 제품을 수입하는 항만, 철도 교통의 중심지에 도시들이 발달하였다. 예를 들면, 부산, 인천, 원산 등과 같은 대일 무역 항구와 군산, 목포와 같은 호남 지방의 쌀 집산지 및 반출항, 대전, 익산, 천안, 신의주와 같은 신설 철도 도시가 있다. 또한, 일제의 한반도 병참기지화 정책에 따라 지하자원과 동력자원이 풍부한 북부 지방에 함흥, 청진과 같은 신흥 광공업 도시가 출현했다.

-고등학교 <한국지리> (교학사)


교과 심화

일제 강점기의 철도 부설 목적

일제는 한반도를 식민지로 지배하면서 항만 건설, 철도 부설, 도로 개설, 광산 및 산림 개발, 하천 개수, 발전소 건설 등 여러 분야에 걸쳐 근대적인 ‘개발’ 사업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것은 주민의 복리와 우리나라의 발전을 위해서가 아니라, 식민지 통치를 위한 수탈의 수단이었고, 대륙침략의 병참기지로 활용하기 위한 기초작업이었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개발’의 개념으로 파악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한국 근대화의 기초가 일제하에서 이루어졌다고 하는 주장도 있으나, 그것은 일의 겉모양만을 들어 논리를 왜곡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중략)

철도 부설과 광산 개발은 제국주의 열강이 식민지를 수탈할 때 사용하는 전통적인 수단이었고, 일제의 한반도 지배도 그 예외가 아니었다. 경인선에 이어 경부선(1905)·경의선(1906)·경원선(1914)·호남선(1914) 등이 건설되어 간선철도망이 구축되었고, 지선망의 확충이 뒤따랐다. 도로에 있어서도 철도와 마찬가지로 대륙진출을 위한 소위 대륙노선을 중심으로 군사 및 치안과 자원수탈을 위한 전국적 망을 형성시켜갔다. 이런 모든 사회간접자본의 확충이 외형상 국토공간을 조직화하고, 생산력을 제고하는 데 기여한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본의 이익을 위한 수단이었을 뿐 오히려 박해를 가하는 것이었다. (중략)

일제는 1940년에 국토계획요강, 1942년에 대동아국토계획대강소안 및 황해·발해지역 국토계획요강안 그리고 1943년에 중앙계획소안(中央計劃素案)·동요강안(同要綱案)을 연이어 작성하여, 일본과 조선·만주·대만·중국 일원을 포함하는 동북아지역에 대해 원대한 개발계획을 수립했다. 이런 계획들이 비록 실천에 옮겨지지는 못했지만, 오늘날 한국 국토구조를 상징하는 이른바 X자형 축의 기본골격이 상당부분 일제하에서 형성되었다는 것은 일본의 대륙지배에 대한 야심이 얼마나 집요하고 구체적인 것인가를 보여준다. -“국토종합개발” 한국 브리태니커 온라인


논제 해결

공간구조가 지역주민 삶에 끼치는 영향

다음 제시문과 지도를 바탕으로 철도가 경부선과 남한강 주변에 살던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을지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서술하시오. (서울대 모의논술)

(가) 주어진 자료는 김정호가 1857년에 그린 ‘동여도’의 일부이다. 노란색 원은 조선시대 군현의 중심지(읍치 : 邑治)이다. 청색 선은 정선부터 서울까지 이어지는 남한강으로 조선시대 강원도와 충청북도 지역의 화물을 수송했던 주요 교통로이다. 붉은색은 서울에서 강릉을 거쳐 평해까지 이어지는 관동로(제3로)와 서울에서 부산까지 이어지는 제4로의 일부를 그린 것이다. 진한 회색은 경부 철도의 일부로서 조선시대 교통로와 비교하기 위해 ‘동여도’ 위에 개략적으로 그려 넣었다.

김정호가 그린 ‘동여도’
김정호가 그린 ‘동여도’

(나) 조선 후기에 들어 포구가 새로운 상업 중심지가 되었다. 포구의 상거래는 장시보다 규모가 훨씬 컸다. 종래의 포구는 세곡이나 소작료를 운송하는 기지의 역할을 했으나, 18세기에 이르러 상업의 중심지로 성장하였다. 포구를 거점으로 선상, 객주, 여각 등이 활발한 상행위를 하였다. 선상은 선박을 이용해서 각 지방의 물품을 구입해 와 포구에서 처분하였는데 운송업에 종사하다가 거상으로 성장한 경강상인이 대표적인 선상이었다. 그들은 한강을 근거지로 하여 미곡, 소금, 어물 등을 거래하였다. 한편, 객주나 여각은 각 지방의 선상이 물화를 싣고 포구에 들어오면 그 상품의 매매를 중계하고, 부수적으로 운송, 보관, 숙박, 금융 등의 영업도 하였다. 객주와 여각은 지방의 큰 장시에도 있었다. -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

(다) 일본은 대륙 침략을 위해 우리나라의 남북을 연결할 철도 부설에 주력하여, 결국 서울과 부산, 서울과 의주, 서울과 인천을 잇는 철도 부설권을 모두 확보하였다. 이 가운데 특히 경부선은 우리의 근대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일본 자본가들은 ‘경부철도주식회사’를 설립하여 1898년 ‘경부철도합동’을 체결하고 1905년 경부선을 개통시켰다. 경부선의 시발점과 종점은 한강-낙동강 수로와 동일하다. 혹자는 경부선과 한강-낙동강 수로의 경유지가 다르기 때문에 경부선이 남한강 수운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경부선이 개통되면서 한강-낙동강 수로의 좌측 배후지가 잠식당하게 되었다.

더구나 일제는 경부선을 주축으로 하여 한강-낙동강 수로 방향으로 분기하는 동서횡단철도를 잇달아 건설하였다. 예를 들어 1925년 천안에서 안성까지 철도를 부설하고, 뒤이어 이 철도를 청미천 유역 곡창지대의 중심지인 장호원까지 연장시켰다. 1928년에는 조치원과 충주 사이에 철도를 놓아 남한강 유역 중심도시인 충주를 경부선과 직접 연결시켰다. 또한 1930~31년 수원-이천-여주를 잇는 수려선이 개통되어 경기 내륙 최대 곡창이 경부선과 직결되었으며, 1939~41년 청량리-양평-원주를 잇는 중앙선이 완공되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내륙 수로의 기능은 마비되었다.

(라) 철도의 개통은 한반도에서 근대적 공간 구조를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전에는 원거리 대량 운송이 수운에만 의존하였지만, 철도가 개통됨으로써 원거리 대량 운송이 수운과 철도 운송이라는 두 부분으로 나뉘게 된 것이다. 특히 철도가 한반도 내륙을 관통하게 됨으로써 원거리 대량 운송이 수운을 따라 돌아가던 단점을 극복하게 되었고 그 결과 화물 수송에 일대 변혁이 일어났다.

예를 들어 한강 상류지역은 경부선이 개통됨으로써 경상도 북부 지역과의 교환관계를 상실하였는데, 그로 인해 한강 상류 수운은 순전히 지역 물자의 교환이라는 역할로 축소되었다. 한강 중류 지역은 경부선이 경기도 서쪽으로 치우쳐 개통되었기 때문에 이들 지역보다는 영향을 덜 받았다.

하지만 한강 중류 지역도 경부선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다. 경부선이 서해안 해운의 상당 부분을 대체하였기 때문에 서해안 해운 지역과 남한강 수운 지역의 경계선이 경부선과 남한강 수운 지역의 경계선으로 바뀌었다. 이런 이유로 기존에 남한강 수운에 속했던 지역 중 일부가 경부선의 영향권으로 편입되었을 것이다.


◎ 해결 방향

교통의 발달이 지역 주민들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게 되는지에 대한 추론 능력을 평가하는 역사지리적 논제이다. 조선시대의 취락과 내륙 수운, 도로교통 등을 표기하고 있는 동여도와 제시문 (가), (나)를 통해 조선시대의 교통이 내륙 수운 체계인 조운제도에 영향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특히, 남한강 중상류 지역의 경우에는 영남 지방의 조세미(세곡)가 운송되는 통로 구실을 하였다. 충주나 여주, 이천 등의 하항 취락이 발달하게 된 원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의 철도 부설이 추풍령을 통과하게 되면서 영남 지방의 물자나 인력 수송이 경부선을 중심으로 이뤄지게 됐다. 이에 따라 기존의 하항 취락이 쇠퇴하게 되고, 철도와 더불어 발달한 공업의 영향으로 도시로의 전입이 증가했다. 또한 남한강의 수운 기능이 농산물로부터 임산물, 광산물로 바뀌었다. 일제의 식민지 착취 정책에 의해 강원 남부 지역의 삼림과 풍부한 지하자원이 대량으로 반출됐기 때문이다. 이런 논제는 지리적 사실들을 적절한 교과적 근거와 함께 세부 항목으로 구분해 서술하기를 요구하는 사실 논제 유형에 해당한다.


◎ 자료 검색

경강상인(京江商人)

육로가 발전하지 못한 조선시대에는 수로가 교통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한양을 수도로 정할 때도 한강이 남쪽으로 끼고 흐르는 수로 교통의 중심지라는 점이 크게 작용하였다. 한강을 이용한 운송과 상업은 조선 후기에 한양이 20만을 넘는 대도시로 발전하면서 한층 발전했다. 이러한 발전을 주도했던 사람들이 바로 경강을 근거지로 활동하였던 경강상인들이었다. 경강은 한강 가운데에서도 한성부가 주관하는 광진(廣津)에서 양화진(楊花津)까지의 한양 남부를 끼고 흐르는 부분을 말한다. 경강변의 용산·마포·뚝섬·두모포 등지가 바로 경강상인의 근거지로서 상업기지가 되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우리나라 내륙수운의 발달

우리 선인들은 ‘치수(治水)는 경국지대도(經國之大道)’라 했다. 그래서 옛날부터 일찍이 하천을 개수해서 축제하고 물을 저류하고 수로를 개척해서 보장(甫場)을 정비하여 소중하게 이용해 왔다. 한강은 고려 성종 때부터 구한말 경인철도가 개통될 때까지 팔도의 화물이 황포돛배에 실려 서강·마포·뚝섬나루로 운반되던 중요한 수상교통로였다. 하루에 마포에만 드나드는 황포돛배만 해도 100~200척이나 되었다 하니 적지 않은 규모였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수도권과 태백권 간의 화물 및 골재수송은 물론 발전, 용수공급, 관광, 지역개발을 포함한 다목적 개발사업으로서 한강주운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한강은 ‘한강종합개발사업’이 완료됨으로써 신곡수중보에서 팔당 나루까지 약 51㎞의 구간에 주운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 http://www.water.or.kr


◎ 관점 넓히기

‘한반도 대운하’ 사업 중에 어느 정도 구체적인 내용이 담겨 있는 경부운하를 들여다보면 문제투성이다. 서울~부산 간의 그 넓은 바닷길도 실제 운항해 본 회사가 수지가 맞지 않아서 문을 닫았는데 수많은 댐을 만들고 다리를 허물고 산에 터널을 뚫어야 하는 운하가 무슨 경제성이 있겠는가? 서울에서 나가는 화물은 87%가 인천과 경기도로 가는 화물이고 부산에서 나가는 화물도 비슷하다.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화물이 있다고 하더라도 배에 실을 화물은 주로 석탄이나 철광석이나 시멘트같이 부피가 큰 것들인데 그런 화물이 경부 간에는 거의 없다.(중략)

낙동강의 위천 상류는 갈수기에 평균 수심이 54㎝밖에 안 된다. 이런 강의 수심을 6m 이상으로 올려놓으면 물이 흐르지를 않고, 열흘 정도면 바다로 빠지던 물이 100일 이상 수로에 고이게 된다. 지금 중국의 태호가 녹조로 뒤덮이면서 수돗물에서 역겨운 비린내가 나고 양쯔강 하류에 큰 혼란이 벌어지고 있는데, ‘낙동호’도 이럴 가능성은 너무나 충분하다. 강이라는 것은 이리 구불 저리 구불 흐르면서 웅덩이와 여울이 생기고 물살이 빠른 데와 느린 데, 돌과 자갈과 모래와 펄이 깔린 곳과 수초가 자라는 곳이 따로 있고 그에 따라 각종 수중생물들이 제각기 살 곳을 찾고 물도 정화된다. 그런데 이 모든 구간을 깊은 웅덩이로 만들어 놓으면 많은 생물들은 살 수가 없고 물은 썩는다.

또 이 운하는 큰 홍수 피해를 일으킬 것이다. 지금 한강이나 낙동강 본류에는 댐을 만들 수 있는 곳은 다 만들었다. 만들지 않은 곳은 홍수 범람을 막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운하의 수심을 6m 이상으로 유지하자면 댐의 하류 부분은 수심이 12m 이상 되는데 강의 수위가 오른 만큼 홍수는 범람하기 마련이다.

국토는 대통령의 소유가 아니다. 이런 정당성이 없는 사업에 온 국력을 쏟아부을 것이 아니라 지식수준이 높은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에게 고급 일자리를 만들어 줄 수 있는 그런 차원 높은 발전 계획을 세워야 할 때다.

-김정욱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한겨레>, 2008년 1월5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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