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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블로그] 논술에도 난이도가 있다

등록 2009-03-13 14:07

논술은 대학수학능력시험, 즉 대학에서 수학할 능력이 있는가에 대한 평가 시험인 것이다. 그런데 이 논술에는 피겨스케이팅시합에서와 마찬가지로 난이도가 존재한다. 실패할 위험이 큰 고난이도의 기술을 구사해서 성공하면 아주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지만 만약 실패할라치면 시도하지 아니함만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반면에 성공할 확률은 높으나 난이도가 약해서 아무리 잘 써도 상대적으로 고난이도의 기술을 구사한 사람에 비해 낮은 점수를 적게 받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자신이 있다면 고난이도를 택해서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잡는 것이고, 자신이 없으면 보다 낮은 난이도를 선택해서 크게 만족하지는 못하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점수를 얻는 것에 만족해야 할 때가 있다. 따라서 문제가 주어졌을 때 그것을 받아보고 난 후 난이도의 정도를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령, 인간에 대해서 쓴다고 가정해보자. 인간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의 문제 제기 없이 그냥 일방적으로 쓰는 것 보다는 종교적 측면, 심리학적 측면, 철학적 측면 등을 고려한 다음 보다 넓은 관점들로부터 자기가 쓰고자 목적하는 방향으로 유도해서 세밀하게 기술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글은 긴장감이 유지하면서 자신만의 창의적 관점을 돋보이게 해야하는 난점을 안고 있다. 이러한 난점을 시행착오 없이 주어진 시간 안에 치밀하게 분석하고 종합하여 매우 능란하게 풀어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앗차 하는 순간에 실패할 확률이 높은 난이도를 선택한 것이다. 흔히 '용두사미'의 글이 되어 후회할 수도 있다.

또한 인간의 이성에 대해서 쓴다고 가정해보자. 칸트는 '이성'이라는 주제만을 가지고 그 유명한 3대 비판서를 썼다. 그만큼 '이성'이라는 단어는 함부로 풀어내기 어려운 난제 중의 난제이다. 따라서 '인간은 이성적 존재'라는 철학적 접근을 섣부르게 시도하다가는 철저히 부서지는 아픔을 당하기 십상이다. 이럴 때는 자신의 일상 경험의 실례를 들면서 가볍게 접근해서 창의적 결론에 도출하는 평이한 서술이 오히려 효과적인 논술이 될 수 있다. 이 말은 곧 100점 맞으려고 무리하다가 실패해서 70점 맞는 것보다는 90점 맞으려고 애써서 80점 맞는 게 더 낫다는 말이다.

최고급의 난이도든 상대적으로 조금 낮는 고급의 난이도든 창의적 발상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은 공통이다. 그런데 학원에서 논술을 배운 학생들에게는 아주 아주 곤란한 점이 있다. 입장을 바꿔서 각자가 채점자가 되어보자. 앞에서 A라는 학생에게 높은 점수를 주었는데 나중에 B학생과 C학생의 글에서 A의 글과 유사하거나 같은 예문을 발견하거나, 비슷한 논조에서 비슷한 결론이 도출된 것을 발견했다고 가정하자. 이런 경우는 B와 C는 물론이고 되돌아가서 A마저도 낮은 점수로 수정된 점수를 얻게 될 것이다. 학원은 논술의 기술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인간논술기계 제조공장인 셈이다. 따라서 학원에서 논술을 익히는 것은 지양되어야 할 일이다.


나는 혼자서 한 번에 900장의 논술답안지를 채점해본 경험이 있다. 이 경험으로부터 느낀 것은, 하나의 주제에 대해서 참으로 다양한 시각이 존재하고 난이도도 다양하고 기술 방식이 또한 서로 다르며 결론으로 도출되는 과정이 흥미진진하다는 점이었다. 요즘의 논술시험은 지문 위주의 이해력 테스트가 많은데 초창기에는 지문의 이해보다는 짧은 논제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기술방식을 보고자 했었다. 내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앞으로의 논술시험은 지금의 지문의 정확한 이해를 요구하는 유형에서 벗어나 초기의 창의적 발상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되돌아갈 것으로 예측한다.

흔히 논술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채점에서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의심받지만 프랑스나 독일에서처럼 점차 개선되리라 믿는다. 그리고 난이도가 개발되어 점수의 세밀한 차이를 가려낼 날도 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논술에도 난이도가 있다는 것이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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